이것은 도시락인가 가정식인가. 8찬, 9찬, 12찬을 보았니!
한국 편의점 손님 중에는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잘못 돌리는 손님들이 꽤 많다. 안에 있는 반찬 용기를 꺼내고 돌려야 하는 제품인데 통째로 돌리는 손님이 있고, 소스를 나중에 부어야 하는 도시락인데 먼저 붓고 돌리다 전자레인지 내부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는 당황스런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는 손님도 있다. 조리법과 주의사항이 포장지에 분명 적혀 있는데 읽어보지 않고 레인지에 스윽 집어넣는다. 따뜻한 콩나물을 먹는다고 소화기관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고, 소스 잔해물이야 구시렁거리며 닦아내면 되는 거니까, 카운터에서 멀찍이 떨어진 전자레인지까지 달려가 “손님, 이 제품은 반찬 용기를 꺼내시고, 소스는 나중에 부어 주시고……” 설명하기 귀찮아 내버려 둔다. 슈퍼모델급 손님이 아닌 이상 거들지 않고, 그저 멀리서 예정된 비극을 지켜보고 있을 뿐.
명절이 되면 편의점 프랜차이즈마다 도시락 전쟁을 벌인다. 재작년 추석 한정판으로 나온 도시락은 ‘전주식 한상 도시락’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8가지 반찬을 담았다. 팔각 용기에 각종 나물과 부침, 고기가 가득하고, 가운데에 버섯우엉밥을 넣었다.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데 가격은 무려(!) 4,500원. 이웃에서 경쟁하는 편의점의 도시락도 만만찮다. 보기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 불고기 볶음을 큼지막하게 전면에 내세우고 7가지 반찬을 호위무사처럼 오밀조밀 배치하여 ‘횡성한우불고기’라는 이름으로 5,000원. 그야말로 ‘호텔식’ 도시락을 이런 가격에 먹을 수 있다니 황송할 지경인데 이듬해에는 9찬 도시락이 등장했고, 경쟁사는 지난해의 패배를 설욕하고 싶었는지 11찬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올해는 13찬이나 15찬쯤 나오려나?
한국 편의점 도시락이 맛이 없다고들 하지만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 편의점 도시락 사진을 보여주면 눈이 휘둥그레지며 ‘스고이!’를 외친다. 예의상 칭찬해주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반찬 너덧 가지뿐인 일본 도시락에 견주어 놀랄 수밖에 없다. 아예 반찬이 없는 덮밥류 도시락이나 도리아, 그라탕 같은 간편식이 일본에서는 더 많이 팔린다. 외형상 화려함에 있어 한국 편의점 도시락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를 압도한다.
한국 편의점 도시락은 세상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도시락으로 꼽힌다. 반찬을 풍성하게 곁들이는 한국인의 식사습관은 편의점 도시락을 개발하는데 주요한 장애요인 가운데 하나다. 이 반찬은 차갑게, 저 반찬은 따뜻하게, 일반적인 식습관이 있는데, 이건 꺼내고, 저건 그대로 두고,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국 편의점 도시락 개발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극한직업이 아닐 수 없다.
2008년 일본 편의점에 ‘욘사마 도시락’이 등장했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일본에 널리 알려진 배용준 씨의 인기는 당시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였는데, 그가 한창 인기 있을 때 일본 도쿄에 ‘고시레’라는 이름의 한정식집을 운영한 적이 있다. 그 식당과 세븐일레븐이 협력하여 출시한 도시락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맛”이라고 보여주려는 듯 8각 용기에 16가지 밥과 반찬을 담아 예약 판매만 진행했다. 가격은 2천5백 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