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페 Dec 10. 2019

피타고라스, 음악이론의 싹을 틔우다

Old man Jazz : ep. 0 [재즈의 탄생과 음악적관점 1/2]

Old man Jazz : ep. 0 [항구도시 뉴올리언스]

<PC로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전 글 보러 가기 ▼]

 재즈의 발생을 음악적인 시각에서 접근했을 때, 재즈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국내의 저명한 재즈평론가 남무성 님의 말을 빌리면 초기의 재즈는 아프리카계 미국 흑인들의 노동요 + 블루스 + 렉타임 + 행진곡의 요소들이 적절하게 결합된 음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 이게 끝이다. 굳이 앞뒤로 말을 덧 붙일 필요도 없이 초기 재즈의 형태적 특징을 가장 직관적이고 이상적으로 설명한 표현이다. 뭔가 좀 더 장황해야 이 글이 좀 있어 보일 텐데 이미 완벽에 가까운 정의가 내려진 상태라 딱히 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난 확인 가능한 사실을 바탕으로 짱구를 굴려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내용들을 기술해볼까 한다. 나 스스로도 이 글을 완성시킬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이 글을 써야겠다고 욕심을 내는 이유는 재즈라는 장르의 특성 때문이다.


 현재 초기 재즈에 내려진 정의와 가치들은 모두 시간이 지난 후 학술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당시 미국의 사회상과 확인 가능한 기사, 평론들을 토대로 하여 내린 경향이 짙다. 이는 다른 분야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문제는 당시의 재즈가 갖고 있던 태생적 한계다. 재즈는 당시 미국 사회의 하류층이었던 흑인들에 의해 발생한 음악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재즈는 유럽의 전통음악인 클래식과는 학문적으로 출발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전문적이고 편견 없이 쓰여야 할 당시의 평론들은 인종주의와 계열주의에 빠져 한쪽으로 치우친 편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TV가 대중에게 보급되기 이전의 음악들은 대부분 클럽과 술집 같은 유흥가에서 소규모의 공연으로 소비가 이뤄져 왔기 때문에 "누가 ~했다더라" 식으로 이야기에 살이 덧붙여지며 과장되거나 사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한 가지 사실을 두고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지표가 적어 견해가 갈리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그래서 재즈라는 고유명사의 어원이 어디서 온 건지 그 누구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고, 재즈의 발생 시기에 대한 명확한 척도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굉장히 주관적인 시각에서 재즈가 어떻게 발전을 해왔는지 보려고 한다. 다른 책, 혹은 글에서 봤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많을 테지만, 흔히 '정설'로 통하는 견해에 대해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적 기질이 다분한 나는 기존의 내용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내용들이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사실관계에 관해서만큼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기 때문에 너무 근거 없고 허무맹랑한 글을 볼 것이라는 걱정은 잠시 넣어둬도 좋을 듯싶다. 아무튼 이 정도면 분량 늘리기는 성공적인 것 같고, 본격적으로 남무성이 말한 초기 재즈의 음악적 특징들을 파헤쳐보자.


가제

분명 재즈는 다른 음악에 비해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음악이 맞다. 그래서 재즈를 정의하는 요소로서 몇 가지 음악적 특징을 이용하였는데, 이번 글에선 음악을 재즈스럽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특징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 보려고 한다. 그중 첫 번째가 Improvisation, 음악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즉흥성'이다. 이를 알기 위해 클래식 주자의 악보와 재즈 주자의 악보를 비교해보자.


왼쪽은 클래식곡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2번'의 악보고 오른쪽은 재즈 스탠더드 'Autumn leaves'의 악보다. 서로 다른 곡이긴 하지만 맥락은 같다. 재즈 악보는 간단하게 멜로디와 코드 정도만 기보 되어있는 반면, 클래식 악보는 어느 세기로 연주할지, 어느 부분에서 끊어 칠지, 보이싱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상세하게 기보 되어있다.

▪︎보이싱이란? 코드의 구성음을 배치하는 방법을 말한다. 같은 코드라도 어떤 구성음을 생략하고, 누르는지 혹은 어느 자리에서 누르는지에 따라 연주의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곡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저 두 곡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는 가정하에, 클래식 주자와 재즈 주자에게 오로지 악보만 보며 연주를 해보라고 한다면 과연 두 연주자는 연주를 해낼 수 있을까. 클래식 주자의 악보엔 연주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시 기호들이 섬세하게 기보 되어있기 때문에 악보상에 그려진 대로만 연주한다면 수백, 수천번 연습한 사람처럼 정확하게 연주할 수 있다. 반면에 재즈 주자는 악보에 코드와 멜로디 말고는 그 어떤 지시 기호도 기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연주를 해낼 수 있다. 그렇다. 해낼 수 있다. 그것도 아주 무지막지하게. 높은 확률로 원작자가 의도한 곡과는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연주자의 기량에 따라 더욱 듣기 좋은 음악이 될 수도, 그저 그런 음악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까? 이는 근본적으로 클래식과 재즈가 서로 다른 곳에 지향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이론의 발전은 역사적으로 사변적인 이론과 실제적인 이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변적인 이론은 경험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이성이 판단의 주체가 되는 것을 의미하고 실제적인 이론은 말 그대로 실제, 현실에 적용했을 때 어떠한가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사변적인 성향의 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뒷받침해줄 논리적인 근거를 필요로 했고, 음악과 음 체계의 질서 안에서 인간과 우주의 본질, 조화와 같은 의미와 수학적 규칙을 찾으려 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사변적 이론들은 마치 '세상만사는 이미 결정되어있다'라고 주장하는 결정론적인 성격을 띤, 융통성은 딱히 없는듯한 그런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런 사변적인 이론들이 근세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음악이론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주류들의 이론이었음은 분명했다.


 사변적 이론의 기원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로부터 시작되었다. 만물을 수로 풀어낼  있다고 믿은 피타고라스는 음악 안에도 수학적 규칙들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부터 조금은 재미가 없을, 다소 이론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조화수열의 발견

피타고라스는 음악을 연구하기 위해 하프를 직접 연주하면서 아주 잘 어울리는 소리를 내는 특정 상황들을 찾아냈다. 아래를 기억하자.

1. 현을 반으로 자른 후 튕기면 기존의 음보다는 높지만 아주 조화로운 소리가 난다.
2. 현을 2/3만큼 남긴 후 튕기면 기존의 음과는 다른 소리를 내지만 이 역시 꽤 조화로운 소리가 난다.

위의 사실을 바탕으로 현을 길이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길이의 비는 1, 2/3, 1/2가 된다. 아직까진 이 숫자의 나열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내긴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지를 발휘하여 이 수들을 역으로 뒤집어 볼 것이다. (1, 3/2, 2)가 나왔다. 좀 더 보기 쉽게 나열하면 (1, 1.5, 2)가 된다. 어? 뭔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충격이 왔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공계 쪽 진로를 진지하게 고려해보는 게 좋겠다. 나처럼 수와 연이 없는 사람은 1, 2/3, 1/2를 뒤집었을 때 숫자들이 튀어나와 춤을 춘다고 해도 큰 흥미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 피타고라스는 이 숫자의 나열이 만물을 수로 풀어낼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단서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바로 등차수열이다.

▪︎등차수열이란? 인접한 수의 차이가 동일한 수의 나열 Ex) 1, 3, 5, 7... 13 or 7, 14, 21, 28... 42



가장 잘 어울리는 소리를 내는 현들을 현 길이가 긴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나온, 겉보기엔 아무런 규칙도 없어 보이던 수들이 역수를 취하니 등차수열이 되는 수열. 피타고라스는 이것을 음의 조화를 이룬다고 하여 '조화수열'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이 수열의 발견은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나에겐 매력적으로 들리진 않았다. 하지만 피타고라스는 수에 미친ㄴㅗㅁ사람이었다. 아래의 내용들을 기억하자.

소리는 진동이다. 진폭은 소리의 크기를, 진동수는 소리의 높낮이를, 파형의 모양은 음색을 결정짓는다. 이 셋 중 하나만이라도 달라진다면 소리는 달라진다.


그렇다면 같은 재질에 길이만 다른 두 현을 튕길 때 어떤 차이가 생길까,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정상파를 배웠다면 같은 재질에 길이만 다른 두 현에 동일한 장력이 가해졌을 때 파동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파동의 속도=진동수 x 파장>, 그러므로 우리는 진동수와 파장이 서로 반비례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간혹 파장과 파동을 반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파동은 매질을 통해 진동이 퍼져나가는 현상 자체를 말하고, 파장은 이 진동이 퍼져나간 거리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진동수와 파장에 관여하는 현의 성질은 어떤 것일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긴 고무줄과 짧은 고무줄을 튕겼을 때 짧은 고무줄이 더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는 것을 우리는 어릴 적 경험으로 알고 있다. 소리의 높낮이를 결정하는 건 진동수인데도 불구하고 소리의 높낮이가 고무줄의 길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보며 우리는 현의 길이가 진동수와 반비례의 관계인 파장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장을 의미하는 현의 길이가 조화수열을 이룬다는 것은 곧 역수에 해당하는 진동수가 등차수열을 이룬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정보들을 통해 우린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현의 길이가 조화수열을 이룰 때, 그 음정들은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배음 현상

이렇게 피타고라스는 음의 관계에서 조화 수열이라는 새로운 규칙을 찾았다. 하지만 조화수열의 발견만으로 음악이론의 기원을 설명하기엔 많이 부족해 보인다. 조금만 더 자세하게 파고들어 보기로 하자.


잠깐 현대의 음악이론에 초점을 맞춰보자. 음정이란 음(音) 간의 거리를 의미하며 음정을 측정하는 단위는 '도'라고 정의된다. 또한 음간의 거리를 정확히 하기 위해 앞에 완전, 장, 단과 같은 음의 성질도 같이 표기한다. 이 안에 완전 1도, 4도, 5도, 8도라고 불리는 4개의 음정이 있다. 이 음의 간격들은 보편적으로 아주 잘 어울리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완전하게 어울리는 소리'라는 의미로 완전 음정이라고 부른다. 근데 '잘 어울린다'라는 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표현이라 누군가 "나는 2도, 3도, 6도, 7도가 더 잘 어울리는데?"라고 하면 "어.. 그래.."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본인이 그렇게 느낀다는데 뭐,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학문인데 그렇게 줏대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당연히 "완전하게 어울리는 소리"엔 배음이라는 분명한 기준이 존재한다.


피아노로 C(도) 건반을 눌렀을 때 우리는 C음을 들을 수 있다. 이때 피아노에서는 오로지 C음의 소리만 발생할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래를 보자.

기본음의 모든 배음을 나열한 "배음렬", X 표시는 5선보안에 정확하게 기입할 수 없는 미분음들이다.

실제로 낮은 C음을 눌렀을 때 발생하는 들을 수 있는 모든 여음을 순서대로 나열한 배음렬이다. 가장 왼쪽에 있는 낮은 도 뒤로 쌓이는 모든 음들을 '배음'이라고 하며, 우리에게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니듯 자연적으로 발생한 모든 소리엔 배음현상이 항상 따라다닌다.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듣는 소리에 배음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음들이 동시에 울리고 있었다니, 낮은 도의 배음렬엔 높은 도와 솔(G), 그리고 미(E)도 포함되어있다. 말마따나 '소리'라는 현상에서 배음이 항상 나타난다면, 피아노의 낮은 도를 쳤을 때 낮은 도인지 높은 도인지, 솔인지 미인지 구분할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각각의 소리가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지 구분할 수 있다. 어떻게? 우리가 들은 그 소리가 제일 처음, 가장 강한 에너지도 울리는 완벽한 진동이기 때문이다. 이를 '기음'이라고 한다.

*배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같은 간격을 유지하며 기음의 위치만 달라진다.


소리는 진동이다. 정확하게는 진동으로부터 발생된 파동이지만 이해하기 쉽게 그냥 진동이라고 생각하자. 제일 처음, 가장 강하게 울린 진동이 기음, 이 기음은 진동한 후 빠르게 소실되고 잔여 에너지들이 연속적으로 진동 > 소실 > 진동 > 소실의 과정을 거치며 무수히 많은 배음 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착시현상처럼 가장 처음, 가장 완벽한 형태로 울린 기음을 목적음으로 인식한다. 즉, 기음을 통해 우린 듣는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다. *고무공을 높은 곳에 떨어뜨리는 것을 상상해보면 이해가 쉽다.


기음의 역할은 알겠고, 그렇다면 배음은? 앞선 설명에서 눈치를 챘다면 당신은 엄청 잇파이 대단한 센스를 갖고 있음이 틀림없겠다. 위에 굵게 표시한 문장들을 잘 살펴보자. [순서대로, 진동 > 소실], 기음이 소실됨과 동시에 진동 에너지의 총량은 줄어든다. 이는 첫 번째 배음이 두 번째 배음보다 크게 들리고, 두 번째 배음이 세 번째 배음보다 크게 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순서대로 정리해놓은  배음렬이다. 바로 이것이 배음이 부리는 마법의 핵심이다.


앞서 말했듯 배음렬은  제일 왼쪽에 있는 기음에 가까울수록 크게 들리고, 오른쪽으로 멀어질수록 배음의 소리가 작아져 잘 들리지 않게 된다. 바로 여기서 기음과 배음의 거리에 따라 협화음(잘 어울리는 음)이 될지 불협화음(잘 어울리지 않는음)이 될지가 나뉘게 된다. 아직은 이해가 잘 안 될 수 있다.


그럼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위해 [C와 G], [C와 D#]으로 생각해보자. 제일 왼쪽 1번은 C, 기음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두 칸 넘어가면 숫자 3G가 있다. C는 배음으로 G의 기음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협화음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G는 전체 배음에서 기음과 굉장히 가까운 편이기 때문에 협화음중에서도 아주 잘 어울리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왜? C를 눌렀을 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배음안에는 이미 G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C와 D#으로 생각해보자. C의 배음렬에는 D#(레#)이란 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C와 D#은 불협화음이다. 이제 대충 음과 음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딱 한 번만 더 아래의 배음렬을 보자.



가장 왼쪽에 있는 기음은 '낮은 도', 그다음에 나타나는 첫 번째 배음은 기음보다 한 옥타브가 높은 '도', 그다음은 '솔', 그리고 그다음엔 다시 '도', 각각의 음은 위에 적어 넣은 것처럼 8도, 5도, 4도의 간격을 이루고 있다. 익숙한가? 그렇다. 어느 한 음을 울렸을 때 발생하는 배음들, 그중 가장 크게 들리는 한 개의 기음과 세 개의 배음, 그 음의 간격들을 두고 우리는 '완전하게 어울린다'라고 하여 완전 음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피타고라스 음률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와  C(도) 음으로 이야기해보자. C음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은 무엇일까. 당연히 C음이다. 아무리 조화롭다고 하더라도 완벽하게 똑같은 두 소리만큼 잘 어울릴 수는 없다. 이 경우 현의 길이는 동일함으로 주파수(=진동수)의 비는 1:1이며 이건 음정(음[音] 간의 거리)으로 따지면 완전 1도에 해당한다.


그다음으로 잘 어울리는 음은 무엇일까, 마찬가지로 C음이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자기 자신과 똑같은 C음은 아니고 같은 음이지만 높낮이가 다른 C음, C'(높은 도)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C'의 현의 길이는 C의 절반에 해당하며 파장의 비는 1:2, 주파수는 역으로 2:1이 된다. 이를 우리는 라틴어로 "8번째"를 의미하는 OCTAVUS에서 따와 옥타브라고 부르며, 음정으로는 완전 8도에 해당한다.


그다음으로 잘 어울리는 음은? G(솔) 음이다. C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음이면서 C음과 가장 조화로운 소리를 낸다. 이 G음의 현의 길이는 C음의 현의 길이의 2/3에 해당하며 파장의 비는 2:3, 주파수는 역으로 3:2가 된다. 마찬가지로 음정으로는 완전 5도에 해당한다. 


그렇다, 바로 앞에서 설명한 배음현상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앞에서 설명했던 배음현상을 최초로 발견하여 이론화 한 인물이 바로 피타고라스다. 배음의 발견으로 '조화로움'이라는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개념 안에 자연의 일정한 규칙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한 피타고라스는 음높이의 상대적인 관계를 수학적으로 규정하려고 했고, 그렇게 완성된 게 바로 최초의 음률, 피타고라스 음률이다.


피타고라스 음률의 원리는 이렇다. 우선 옥타브 관계에 있는 음들은 모두 같은 음으로 봤다. 엄밀히 따지면 C와 C'는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가지고 있는 별개의 음이지만 인간의 귀가 옥타브 관계에 있는 음들은 같은 음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어느 위치에 있건 도는 도로 취급하자는 것이다. 이는 지금의 개념과도 같다. 이렇게 되면 피타고라스가 찾은 세 개의 음 C, G, C'중에서 전혀 다른 소리를 내는 음은 G음이 유일해진다. 피타고라스는 이 G의 간격(완전 5도)을 이용하여 C와 C'사이에 수학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음의 계단을 쌓기 시작했다. 아래의 발그림을 참고하며 보자.


계산의 편의를 위해 C의 주파수를 1이라고 가정하자. 완전 5도의 주파수 비는 3:2로, C를 기준으로 완전 5도씩 음을 쌓는다고 가정할 때, C의 완전 5도인 G의 주파수는 1 X 3/2로 1.5가 된다. 마찬가지로 G의 완전 5도를 찾으려면 3/2를 곱해주면 된다. 3/2 X 3/2 = 9/4 즉, 2.25가 되는데 이 경우엔 한 옥타브가 넘어가기 때문에 X 1/2을 하여 옥타브를 떨어트려준다.  그렇게 되면 9/8이 되고 이는 D가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계속해서 완전 5도씩 쌓아 가다 보면 최종적으로 12개의 음이 완성되는데, 이 12개의 음이 완전 화음에서 출발한 하나의 음계(Scale)가 된다. 이게 최초의 음률이자 음악이론의 첫걸음이 된 피타고라스 음률이다.

*12개의 음이 만들어진 순서 : C-G-D-A-E-B-Gb-Db-Ab-Eb-Bb-F


세월이 세월인지라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사실 음률에 관한 피타고라스의 저서는 그 어느 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피타고라스가 대장장이의 망치질 소리를 듣고 음률을 발견했다는 신빙성 떨어지는 동화 같은 이야기들이 정설처럼 퍼져있기도 하다. 당연히 이 글의 내용들도 정확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피타고라스학파 이론가이자 철학자였던 보에티우스에 의해 음악 안에 과학적 형식과 수학적 질서가 내재되어있다고 생각한 피타고라스의 견해는 중세의 음악이론가들에게 물리게 되었고, 피타고라스의 음률을 시작으로 18세기 초, 근세까지 음악이론은 사변적 관점에서 발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중세는 음악이 자유로운 창의성의 형식이 아니라 정확한 과학의 형식이자 수학적 이론을 적용시킨 형식이라는 견해를 고대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래서 음악의 이론이 음악 자체보다 더 완벽한 것 같았다. 음악은 그저 이론을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고대의 음악은 빈약했지만, 그 이론은 장대했다. 음악뿐만 아니라 우주의 조화에 관한 이론이기를 열망했던 것이다. 예술과 이론 모두를 "음악"이라고 했다. 음악에 대한 중세의 존경심은 엄격하게 말해서 실제에 적용될 수도 있었던 이론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 브와디스와프 타타르키비츠 <타타르키비츠 미학사 : 중세 미학> 中


하지만 이론만으로는 음악이 완성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사변적 이론의 한계는 분명했다. 일례로 사변적 이론의 토대가 된 피타고라스 음률(순정률)조차도 실제 음악에 적용할 때 울프노트를 발생시킨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울프 노트 : 악기의 불량, 잘못된 조율과 같은 이유로 발생하는 불쾌하고 이질감이 드는 음 울프노트에 대해선 간단하게만 짚고 넘어가자.


앞서 말했듯 피타고라스는 완전 5도씩 쌓는 방법으로 한 옥타브 안에 12개의 음을 찾아냈다. 그리고 한 옥타브는 정확하게 2배의 주파수를 가진다. 즉, C의 주파수를 1이라고 가정했을 때 C-G-D-A-E-B-Gb-Db-Ab-Eb-Bb-F 이후에 올 C'는 목적음인 C의 주파수의 2배인 2가 되어야 하지만 피타고라스에서는 C'가 2.027의 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0.027은 약 1/8음 정도로 미세한 차이임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1/12음까지 사용하는 미분음 음악이 있는 걸 감안했을 때, 귀가 좋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 차이를 인지 가능한 수치라는 점과, 옥타브가 올라갈수록 음의 차이는 극명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결국 피타고라스의 음률에 맞춰 조율된 악기로는 조옮김이 이뤄지는 곡 자체를 연주할 수 없었고,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옥타브 사이의 음정이 동일한 간격을 가질 수 있도록 한 옥타브를 열 두 개의 반음정으로 나누는 방법이다. 이게 현재 우리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평균율의 등장이다. 평균율은 순정률만큼 아름답고 조화롭게 들리진 않지만, 조성 이동이 자유로워 훨씬 다양한 음악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일부 클래식 악단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음악에 평균율이 사용되고 있다.

*이론으로만 구상되었던 평균율을 실제 연주에 적용시킨 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 발표된 1801년이다.


사변적 이론의 고질적인 문제점과 한계가 바로 이런 실용적인 측면에서 많이 발생했다. 아무래도 과거의 음악이론의 발전이 요셉 소뵈르(Joseph Sauveur), 조한 케플러(Johann Kepler), 모리츠 홉트 먼(Moritz Hauptmann)과 같은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와 같은 지식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실제로 연주하고 적용하는 음악가들조차 수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모순음에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게 영향을 끼친 것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음악이론들이 실용적이지 않았다고 해서 그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이론이 품고 있던 의미와 그들이 지향했던 음악상은 그 자체로 존엄하고 고귀했기 때문이다.






Fine 19.12.10




                                                   참고 저서

              "타타르키비츠 미학사 : 중세 미학"

                       Authors: W. 타타르키비츠


참고자료

Pythagoras: music, geometry and mathematics

매거진의 이전글 문화의 도시 뉴올리언스, 그 안에서 현대음악이 태어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