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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묘한집사 Jul 19. 2021

살당보민 살아진다게

제주에서

아침에 눈을 떠니

창밖은 마치 초가을처럼 하늘색 물감 풀어 놓은 듯한 하늘과 그림 같은 흰 구름.. 살랑이는 바람…

창문을 활짝 열고 고양님들과 신선한 아침 내음을 맡는다.


기나긴 장마 끝에 요즘 날씨는 변덕부리는 꼬마 같다. 한순간 햇빛이 쨍하다가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소나기를 한바탕 쏟아 붇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햇빛 한바가지…

정말 종 잡을 수 없는 날씨이다.


이런 날은 편백나무 숲으로 가야지….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1100도로 올라가는길 오른쪽에 서귀포자연휴양림이 있다.

아랫동네와는 다르게 이곳은 한여름에도 모기도 없고 엄청 시원하다. 산책 코스도 잘 되어 있고 특히 야영장 근처에 쭉쭉 뻗은 편백나무숲과 데크가 있다.

이곳에 의자를 펴고 나무에 다리를 올리고 하늘을 보고 있으면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인가 싶다.



요즘은 생각이 많다….

어제 한 강의를 듣는데 제주 삼춘들은 이런말을 한다고 했다.

일제찬탈과 6.25…. 4.3을 고스란히 삶으로 살아오신 분들은 “살당보민 살아진다게~” 말을 …눈앞에서 자식이, 남편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고 오열하며 살아온 시간들에서 산다는 것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었을까…..


살다보면 다 살아진다….


아무리 어려운 일에 부딪쳐도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참으로 소박하다. 아니 소박을 너머 절절한 소리없는 절규가 무채색처럼 스며들어서일거 같다.


살아오면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반복적인 물음을 던진 적이 있었다.

결론이 없는 답을 찾아 헤매고 여행을 가고 살아가기 위해 직장을 다니고… 그리곤 가끔씩 하늘을 본다.

어젯밤 티비 드라마를 보다가 옛감정이 생각났다.

세 부부가 살다가 이혼에 직면하는 이야기 인데 세.  부부 모두 자식이 있건 없건 여자 문제로 헤어지기도 하고 억지로 살기도 하고 서로 자신의 아픔과 실수를 이야기하며 긴 다툼을 벌여가는 이야기.. 막장드라마라고 하지만 펼쳐지는 과정에서의 예리한 감정선 들이 보인다.

나의 인생에서도 몇번이나 반복 되었던 과정들..

한사람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또 헤어지는 몇번의 반복을 통해서 마지막 결론은 이제 이 반복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공이라는 물질과 명성을 얻었고 나는 자식과 자유라는 소중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자식이 있기 때문에 가정을 지켜가야 한다는 것은 여자에게 너무 가혹한 형벌 같았다. 그 시간들이 너무나 힘들고 아팠다.

물론 자식에겐 너무 미안하고 할말이 없다.

이 또한 가슴 한구석 생채기로 남아 있다.


가족이라는 것은 서로간의 이해와 배려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신뢰가 깨져 버린다면 한쪽에서 아픔의 시간을 지독하게 감수해나가야 한다.

아이를 위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지만 마음에 맺힌 엉어리는 아마도 평생 상처의 흔적으로 남게 되기 때문에 그냥 마음에 묻어 두고 참아내기에는 살다보면 다 살아질것 같지 않았다.



그러면서 만나게 된 것이 여행이다.


내 나이 사십에서 오십사이 거의 10년간 방학때면 아이와 함께 혹은 혼자서 제주와 인도로 네팔, 티벳, 태국, 캄보디아, 일본, 중국 윈난성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나에게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숨통이었다. 버스로 히말리야를 넘으며 진정한 자유를 느꼈고 슬리퍼와 배낭하나로 인도 짜이를 마시며 새로운 곳으로의 탐험이 너무 재미있었다.


아마도 그시기에 내 인생의 역마살이 발동했었나 보다 ㅎㅎㅎ

그때의 나의 꿈은 생활여행자가 되는 것이었다.

노마드적인 삶…

그래서 제주에서의 삶을 선택하게 되었나 보다…


지금은 고양님 가족 부양하느라 집을 못 비우지만 제주의 삶은 언제나 여행하는 삶이다


“살당보민 살아진다게~”


갑자기 쏟아지던 빗방울이 멈추고

편백나무들 사이로 햇살과 바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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