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영님은 어떻게 영상 쪽 일을 계속하셨어요?“
최근에 알게 된 두 분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다. 5분 내외 영상조차 끝까지 보지 못할 만큼 사람들은 지루한 걸 싫어한다. 쉽게 질리고, 대체되고, 퇴보하고, 사라지는 시대. 어떤 분야에서건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인기 직종마저 신조어처럼 유행을 타다가 소리 소문 없이 없어지고 있다.
한 우물 파는 사람이 드문 지금, 나는 어쩌다 11년 동안 이 일을 계속하게 되었을까.
사실 운 좋게 타이밍이 잘 맞았을 뿐이었다. 고3 때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성적에 맞춰 지방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1년 선배의 권유로 영상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때 처음 영상 제작이란 걸 하게 됐다. 취업을 염두한 게 아니라 의식의 흐름대로 행동했다. 재밌을 것 같았고, 실제로 제작과정을 겪어보니 재미있었고, 그래서 계속하게 됐다.
4학년 학기를 마치고 교수님의 제안으로 한 케이블 방송사에 취직하게 됐다. 졸업식을 앞두고 사회생활을 곧바로 시작하게 된 것도 순전히 운때가 맞았기 때문이었다. 월급이 100만 원도 안 되던 곳이었지만 전공을 살려 직장생활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제로 베이스인 나를 불러주신 사수 피디님에게 감사했다.
편집이 서투르고 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어떤 날, 종편 감독님에게 혼이 났다. 서러움이 북받쳐서 화장실에 앉아 엉엉 울었다.
또 어떤 날은 녹화가 한창이라 스튜디오와 사무실을 몇십 번이고 뛰어다녔다. 온몸이 금세 땀에 절여졌다. 잠깐 앉을 틈도 없이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2만보는 거뜬히 넘었다.
어떤 날은 혼자 인터뷰이 3명을 각각 연달아 촬영했다. 6시간 넘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고, 카메라를 만졌다. 그날은 집에 돌아와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는데 하루에 얼마나 많은 분들을 촬영할 수 있는지 실험하고 싶어서 한 일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미련한 짓이었다. 그래도 그날의 퇴근길은 뿌듯한 마음이 가득했다.
쉬운 길이 아니었는데도 한 길만 팠던 이유를 대자면, 나는 이렇게밖에 말할 방법이 없다. 재미있었고, 계속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고, 돌아보니 걸어온 길이 후회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 일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라고.
전에 다니던 회사의 대표님께서 내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셨을 때, 즉흥적으로 대답한 적이 있다.
“저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 싶어요.”
그 대답을 했던 내 모습을 떠올려 본다. 즉흥이었던 것치고는 꽤 좋은 꿈같다. 꿈이 뭐냐는 질문을 누군가가 묻는다면, 살을 조금 보태서 말하고 싶다. 저는 죽을 때까지 영상일을 하고 싶어요, 라고 말이다. 운 좋게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니... 야근하고 집에 가는 이 시간 갑자기 행복에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