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후 그 모든 시작에서 무너지는 사람들에게
2018년 12월 26일 아침, 엄마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암 진단과 함께, 약 7개월 간의 투병 끝에 엄마는 만 오십을 코앞에 두고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3주 전에 한 회사의 공채에 합격한 나는, 장례가 끝나고 남은 정리를 마치기가 무섭게 연수원에 들어가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애도도 미뤄졌다.
엄마가 떠나고 두 번째로 엄마 생일을 맞은 날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던 소고기 미역국을 처음으로 끓이기로 했다. 요리를 미뤄뒀었다. 엄마가 잘 드시던 것은 일부러 찾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엄마 생각이 날 것이 뻔했다. 그러다 그날은 꼭 엄마에게 마음으로나마 미역국을 보내고 싶어서, 사태살을 폭폭 삶았다. 엄마는 기름이 뜨는 걸 싫어하지, 하면서. 마지막으로 간을 하려고 마트에서 사온 국간장을 꺼내 간을 했다.
조금 덜어 맛을 봤다. 엄마가 담근, 장독에서 뜬 국간장이 아니라, 조미료 코너 국간장으로 간을 한 미역국에서는 식당에서 파는 듯한 들척지근한 맛이 느껴졌다. 눈이 맵고, 코가 시큰했다. 나는 마치 엄마가 있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았다가, 국간장에까지 스민 엄마를 무방비 상태로 발견하고는 엉엉 울고 말았다. 그러다가 엄마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강하게 살아라.'
울음을 그치고 미역국에 밥을 말아 남김 없이 먹었다.
내가 살아온 삶에서 ‘시작’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대부분의 문맥은 설레고 간지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없는 삶의 ‘시작’은 달랐다. 이 시작은 설레기보다도, 한결같이 버거웠다. 미역국을 끓여서 먹기 시작하는 순간, 어느 봄의 시작에 엄마가 생전 심어둔 꽃이 핀 걸 본 순간, 나는 잘 지내다가도 갑작스레, 그 셀 수 없는 모든 시작에게 마음을 얻어맞는 중이다.
언제까지 엄마 없는 이 삶의 낯선 시작을 마주할 것인지, 전혀 계산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살면서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수많은 ‘낯선 국간장’을 마주할 것이다. 하지만 눈물을 그치고 미역국 한 그릇을 뚝딱 비운 것처럼, 엄마가 내게 남긴 변치 않는 말을 떠올리며 눈물을 멈출 줄도 아는 단단한 인간이고 싶다. 엄마가 돌아가신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던지는 엄마에 관한 악의 없는 질문에도, 이제는 분위기가 삭막해질까 대답을 얼버무리는 것 대신, 엄마가 계시지 않아 슬픈 것을 알려주고 싶다. 엄마 없이도 웃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런 순간이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싶다. 그리고 먼 훗날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내가 엄마가 말한대로 강하게, 열심히 잘 살다 왔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그리움과 아픔은 평생을 함께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이 익숙한 그 궤도에 머물며, 내가 그 때 그 시작점에서만큼은 꽤 힘들었다, 덤덤하게 말하고 싶다.
20년을 마무리하며, 사랑하는 엄마가 이제는 편안하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