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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아녜스 Nov 02. 2018

#3 무너지지 않겠다고

매를 맞는 기분이었다

엄마와 나는 병원에서 나흘 정도를 머물렀다. 엄마는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주치의와 함께 다니던 레지던트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엄마 앞에서 현 상황에 대해 필터링 없이 말하기 일쑤였다. 나는 매일 아침 주치의 무리가 회진을 돌 때,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주치의 없이 레지던트만 혼자 왔을 때는 필터링 없는 그 말을 나 혼자 다 들어야 했다. 나는 아침마다 매를 맞는 기분이었다.


한번은 이른 아침에 레지던트가 와서 또 심각한 이야기를 내뱉고 가길래 그 말을 들으며 멍해져있었다. 점심 식사를 하는 중에 회진을 돌러 왔다.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라며 무언가 말을 시작하려는 주치의에게, 난 또 무슨 매를 맞게 될지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나서, ‘그러면 식사 끝나고 오시면 안 돼요?’라며 빽 화를 내버렸다. 의사는 머쓱해하며 아 별다른 말은 아니구요.. 식사 잘 하시라고요 라며 병실을 나갔다.


엄마는 그 슬픈 말들을 들으며 좌절하고, 나는 다시 일으켜 세우려 노력하고, 엄마는 그런 내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긍정적으로 계시려 부단히 스스로를 달래셨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는 희망을 보기도, 그 희망이 너무 밝아서 지금의 현실에 눈물짓기도 했다.


길게 이어지는 금식에 엄마는 많이 지쳤다. 입원 후 체중도 많이 줄었다. 한번은 CT 상에서 소뇌에 뭐가 보인다며 밤 늦게 급히 MRI를 찍어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 결과를 기다리던 밤이 참 길었다. 나는 보호자용 침대에 누워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했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이 들어도 눈을 뜨면 나는 병실에 있었다.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나도 그랬는데 엄마는 오죽했을까.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진단을 듣는 며칠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오갔다. 그 사람들을 보며 엄마가 참 따뜻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더 커졌다. 사람들은 엄마 앞에서 많이 울었다. 나는 엄마 앞에서 울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 병원에서 절대 울지 않았다. 다만 엄마가 잠든 사이 병원 계단에서 엄마 앞에서 운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다. 다시는 엄마 앞에서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 말을 하는 때, 그 장소에서 나는 울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눈물에 엄마가 간신히 굳게 먹은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내 눈물도 마찬가지였다. 병원 계단에서 여러 번 울며, 절대 앞으로 무너지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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