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독일 교환학생
독일로 교환학생 가면서 슈바르츠발트는 꼭 가보고 싶었다. 유럽의 역사에서 숲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특히 독일은 현재 국토의 30%이상이 산림으로 이루어졌을 만큼 숲이 많고, 현대의 벌목을 고려할때 과거에는 훨씬 더 숲이 많았을 것이다. 수렵민족인 게르만족은 가을철 떨어진 도토리를 먹여 키운 돼지로 햄, 소세지 등을 만들어 긴 겨울을 지냈다. 그리고 숲은 과거 서유럽을 차지하고 있었던 게르만족, 켈트족의 고대 종교와도 관련이 깊다. '그림으로 보는 황금가지'라는 책에서는 고대 종교의 발원지로서 책 전체에서 숲속에서의 종교 생활을 다루고 있다.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설악산, 한라산과 같이 대표적인 산을 등반한다. 이는 우리나라 토지의 80%가 산인만큼 역사적으로나 현대 생활 속에서 산이 가지는 비중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전래동화들 중에서 산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매우 많다. 선녀와 나무꾼도 있고 뭐 산호랑이가 아이를 물고 갔다거나 산 속에서 몇 년동안 수련을 거쳐 도사가 됐다거나 등등... 독일에서의 숲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마찬가지로 크고 그만큼 외국인의 입장에서 숲은 꼭 가봐야한다고 생각했다. 유럽의 전래동화를 떠올려 보면 유난히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마녀를 만나고, 요정을 만나고, 숲 속의 오두막 집에 거주하는 내용들이 많다. 다양한 숲과 국립공원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헨젤과 그레텔의 배경이 되었던 검은숲, 슈바르츠발트를 다녀왔다.
슈바르츠발트는 독일 남쪽에 상당히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프라이부르크에 거점을 잡고 움직이기로 했다. 프라이부르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태도시이다. 프라이부르크는 도시가 숲에 둘러싸인 듯한 모습이고 도시 곳곳에 가로수가 심어져있어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프라이부르크에서 기차를 타면 검은숲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티티제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티티제에서 검은숲 하이킹을 위해 숲속에 들어가면 왜 검은숲이라고 불리는지, 그 숲의 장엄함을 느낄수 있다.
이런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있던 모습은 걸으면서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로 길을 표시할수 밖에 없었겠구나 싶었다. 우리나라, 그리고 독일의 다른 지역과 달리 이 지역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얇은 몸통에 키는 크고 잔가지가 많이 뻗쳐있는 형태였다. 그 뾰족뾰족하게 수없이 뻗어있는 나뭇가지들은 위협을 가져다주기 충분했다. 중간중간 다른 나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인위적으로 나무를 베어서 단위면적당 나무의 숫자를 조절한 흔적들이 보였다. 과거에는 아마 더 빽빽하고 위협적으로 나무들이 솟아있지 않았을까 싶다.
빽빽한 검은숲을 지나다보면 광활한 언덕이 등장한다. 이런 곳이 왜 잘 안알려져 있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하늘, 나무, 풀밭, 산의 조화는 완벽했다. 언덕은 데구르르 굴러내려가고 싶을 정도로 완만하게 광활했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숲은 이 안에 존재하는 것들의 모든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줄 것만 같았으며 중간중간 있는 주택들은 그래도 사람이 살만한 안전한 곳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구름은 산과 맞닿을 것처럼 붙어있었고 '푸른 하늘'은 '푸른 초원'과 그 표현의 유사성이 괜히 나온게 아닌것처럼 잘 어울렸다. 이런 조화로움이 바로 자연이 주는 안락함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런 풍경 속에서 관광객은 나와 같이 온 승현이 단 두명밖에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이 이 공간이 박물관, 관광지로 조성된 인위적 공간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자연적 풍경이라는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단순히 대자연이 아니라 여기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주택에 누워서 책을읽고 계시는 주민들을 보면서 과거에도 숲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지냈겠구나 유추해볼 수 있었다.
소들이 사람에 호기심을 느껴서 다가온다. 이런 소들을 보고, 염소에게 먹이를 주는 것만으로도 한국에서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거나 긴 줄을 서야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국인'의 시각에서초조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뒤를 돌아봤지만 농장 주인의 기척도 보이지 않았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사람은 우리 두명 뿐이였다. 사람에 상처입은 적이 없는지 계속해서 다가오는 소와 염소들, 한국에서 가축을 볼때는 아 언젠가 우리 입으로 들어가겠지 하고 분명 동정심이 포함된 시선을 보냈었는데, 여기서는 정말 이 친구들이 잡아먹힐까? 동료가 인간들에게 잡아먹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인간에 호의적이고, 이렇게 자연에 어울리고 평화로울 수 있을까? 이렇게 넓은 들판에서 뛰노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슬픔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친구들에게 그런 동정심을 가지는 것조차 미안해지는 느낌이였다.
이런 숲길을 뚫고 지나가면 오른쪽과 같은 경관이 펼쳐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주인공이 이렇게 미지의 숲길을 계속해서 통과하는 장면이 있었고,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도 미지의 통로를 통과하면 완전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울창한 숲길을 몸을 숙여 통과해 보이는 광활한 티티제는 작가들이 동화적 영감을 얻기에 충분해 보였다.
마지막에 티티제를 떠나기 전 버스정류장에 잠깐 앉아있었는데 옆에 쉬고 있던 고양이가 가지말라는듯이 품에 파고들어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꿈같은 동화마을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유혹이였을까. 하마타면 그 유혹에 넘어가서 현실세계로 못돌아올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