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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바 Jul 06. 2024

영수의 시각1

폭력적인 첫사랑

영수는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 매력을 뽐내지 않아도 됐다.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준수했고 운동도 잘했다. 그때는 운동이라고 해봤자 빨리 달리기 정도밖에 없었지만 그게 어딘가. 친구들은 굳이 영수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생겼다. 자연스레 반장을 하고 자연스레 이성친구에게 편지를 받고 자연스레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전학을 가고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눈이 안좋아져 가끔씩 끼던 안경을 매일 껴야했고, 키가 크는 속도에 비해 살이 찌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영수의 이전 모습을 알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영수는 그저 통통한 안경낀 전학생이였다. 애초에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아도 항상 친구들이 다가와줬던 영수는 아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법을 몰랐고, 남자들 세상의 다음 운동인 '축구'에 어울리지 못했다. 이제 영수에게 남은 것은 하나뿐이였다. 공부. 영수는 전학 오기전에, 타인에게 받았던 관심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치만 새로운 것을 시도할 용기는 없었고 기존에 가졌던 것들중에 주변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이라 확신한 '공부'에 매진했다. 공부를 잘하자 이전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관심을 받고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러나 가슴 한켠에는 모든걸 다 잘하고 모든 친구들이 부러워했던 그때의 자신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영수는 노력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공부로 주목을 받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영수는 점점 더 노력했다. 공부를 제외하고 그렇게 특출날 게 없었던 그 때, 아무리 노력해도 영수는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고등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영수에게 있어서 이미 개성은 학업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결과가 좋지 않을때 운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결과가 쌓일수록 그에게 점점 핑계가 되어갔다.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은 내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영수는 착하고 성실한 아이라는 색깔없는 특징 속에서 묵묵히 노력하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고등학생의 마지막 결과물마저 영수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주변에는 영수의 결과에 대해 모두 아쉽다, 너가 그정도 대학밖에 가지 못하다니 말도 안된다, 더 좋은 일이 있을거야, 대학 별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렇게 잘해주다가 대학 결과를 보고 연락을 끊은 학원들이 보였다. 영수는 결심했다. 남들이 다 열심히 할때가 아니라 남들이 안할때도 열심히 하면은 달라지지 않을까. 


영수는 더 노력했다. 영수는 운이 좋게도 외적으로 크게 경제적으로나, 건강상에 위험이 없었고, 영수 스스로만 더 열심히 한다면 학점, 취업준비, 연애, 아르바이트, 공부 모두 별 문제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이였다. 현실을 열심히 사는 영수에게 연애는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노력해온 삶에서 벗어난 휴식이였고, 피난처였다. 다른 동성 남자아이들에 비해 영수는 연애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딱히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연애를 할 기회는 항상 존재했고, 바르고 건실한 이미지와 외모, 그리고 차분한 성격 덕분에 영수에게 잘해주고, 많이 좋아해주는 착한 사람들과 연애를 할 수 있었다. 영수가 자기의 일을 잘 해나가고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20대 초반에는 어른스러운 사람이였으며 사랑을 받는게 어렵지 않았다. 어른스럽고 주변에서 볼때 '철이 빨리든' 영수를 연애상대방들은 자연스럽게 믿고 신뢰했다. 영수의 개성은 20대초중반에도 역시 학업과 노력으로 대체되어갔고 그 결과 영수는 원하는 직장에 취업을 성공했다. 그리고 첫눈에 반한 우리와의 연애가 시작됐다. 


이제 영수는 노력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스스로도 자신의 일에 너무 노력했음을 아는 영수는 하고싶은 일이 많았다. 놀러도 가고싶고 주변사람도 챙기고 싶었고 취미생활도 하고 싶었다. 다 잘하고, 주변의 관심을 독점했던 어린 '리즈' 시절 영수를 계속 마음 한켠에서 선망하고 있었던 영수는 드디어 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영수는 우리를 많이 좋아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여자친구에게 그정도 마음을 내어줄 여유도 없었던 영수에게 좋아하는 감정은 많이 어색했다. 분명 비교도 안되게 좋아하지만 이것이 내가 생긴 여유에 대한 반작용인지, 정말 이 사람에 대한 사랑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영수는 감정을 다루는게 어색했다. 학창시절에 남자아이들의 세상은 단순했고, 자기할일만 잘하고 아이들과는 뛰어놀기만 하면 그만이였다. 친구들은 감정을 나누는 친구들이라기 보다는 같이 노는 친구들이였다. 당연히 감정중에 가장 복잡한 사랑의 영역에서 영수는 사랑하는 걸 표현하는데 서툴었다. 지금까지 내 할 일을 잘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들어주고 가끔씩 어른스러운 조언을 건네는 편안한 관계를 연애라고 생각했던 영수는 기존의 방식대로 연애를 시작했다. 사랑하는 데에 무슨 이유가 있겠냐는 말은 원인을 탐구하는 영수에겐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영수는 활자로 정의할 수 없는 이유들로 우리를 더 많이 사랑하고 좋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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