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가는 대중적 주류문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나와 졸업 후 다녔던 첫 직장은 식품 브랜드와 패키지를 주력으로 하는 디자인 에이전시였다. 다녔던 회사는 능력이 꽤 있던 회사였고, 실장님들의 실력 또한 출중하여 메이저 식품회사에서 많이 의뢰가 들어올 만큼 좋은 회사였다. 지금의 글쓴이를 만든 기반도 전부 이 회사에서의 경험들이 모여 이뤄낸 것들이었다. 모든 하청업체 또는 에이전시 들이 그렇듯이 ‘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양’으로 수입을 얻듯이 우리 회사 또한 일의 양이 많았다. 여러 브랜드의 일이 들어오다 보니 식품브랜드의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고, 나 또한 그래픽 패키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졌다. 일을 많이 하다보니 식품 쪽의 트렌드에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술 또한 맛도 중요했지만, 디자인이나 마케팅적으로 왜 잘 팔릴까 하는 궁금증이 더 많이 생겼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던 중 다니던 회사와 친분이 가까운 분이 수제맥주를 제조하는 양조장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고 브루어리의 아이덴티티를 잡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수제맥주가 크게 히트를 치던 시기, 첫 출시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고 실제로 맥덕들의 기대를 받으며 커가고 있었지만, 경영측과의 불화로 인해 헤드브루어가 퇴사하며 점점 나락의 길을 걸었다.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양조사업에 잠시나마 참여했던 입장으로서 경영과 실무가 서로 배려하며 같은 목표를 지향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 시기에 난 맥주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저 이름만 알았던 에일과 라거의 차이. 상면발효와 하면발효의 차이로 인한 양조장 설비차이. 중소양조장에서는 왜 라거를 만들지 못하는가? 등의 기본적인 것들을 많이 듣고 배웠던 것 같다.
수제맥주 인기의 시작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주류세와 판매유통에 대한 법이 변화하면서 였다. 라인으로 연결이 되어야만 팔 수 있었던 수제맥주는 케그로 이동이 됨에 따라 전국적 유통이 가능해졌다. 1세대 수제맥주 브랜드들은 전국 각지에 브루어리 펍 체인점을 운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그동안 서민들의 술이었던 '라거'에서 '에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물론 라거가 익숙했던 소비자들은 처음에 에일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인디카 IPA'를 통해 어느정도 에일 맥주가 익숙하며, 새로운 문화에 호기심이 많던 MZ세대들은 쉽게 받아들이기 시작하였고 이 세대들을 통해 수제맥주 문화는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관심이 많아지다 보니 자신들의 맥주를 좀더 대중화 시켜야겠다는 목표를 가진 이들이 '대량생산'에 대해 의지를 갖게 되었고, 투자를 받았지만 그래도 대량생산을 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이 부족했던 수제 맥주 브루어리들은 OEM을 생각하게 된다.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은 쉽게 설명하면 '위탁생산'이라고 생각하면 편리하다. 위탁생산이 좋은 점은 이미 시설이 충분한 곳에 맡겨 초기 시설투자비용을 아끼고 유통망을 확장 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제품제작에 대한 노하우 유출이 크며, 자칫 타사에서 유사한 제품이 나올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이런 대량생산에 눈을 돌린 수제맥주 경영자들은 수익성을 위해 대형맥주회사에 OEM을 맡겼다. 이렇게 되면서 초반의 생산때에는 상대적으로 비쌌던 수제맥주들도 어느덧 '만원에 4캔'으로 대중화된 주류에 한 부류가 되었다.
이렇듯 수제맥주가 대중화 되면서 사람들은 술에 투자 할 수 있는 소비비용이 늘었다. 브루어리 펍에 가면 한잔당 6000~7000원 하던 술을 마시다 보니 저절로 술에 대한 가치가 상승하였고, 이는 조금의 기대비용으로 저가 와인을 살 수 있는 거리에 다다른 것이다. 결국 '수제맥주의 인기'는 고급주류로 속했던 '와인'과 소비자들을 가깝게 만들어 주는 '브릿지'역할을 한 셈이다.
초반의 와인시장은 오늘날처럼 다양화 되어있지 않았다. 최근 대형마트에서 분기별로 실시하는 '와인장터' 행사도 없었으며, 대형마트 내에서도 다른 주류코너보다 작은 진열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시기가 아마 지금부터 10년전의 풍경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난 어렸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는 시기였지만, 생각해보면 와인이라는 것 자체의 이미지는 가격이 비싼 술, 특별한 날에만 마실 수 있는 그런 술이었다. 그리고 마트에서도 가격 평준화를 시켜 저렴한 와인은 만원, 조금 비싼 와인은 2만원. 이런 식으로 가격대를 맞춰서 판매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와인과 친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대중을 위해서 가격이 있는 와인 보다는 저렴한 와인의 유통을 통해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들게 하려는 전략이었고, 실제로는 떨떠름한 레드와인보다는 저렴하고 달달한 와인들이 많이 판매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들면 ‘칼로 로시’나 ‘모건데이비드’ 같은 콩코드 와인이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와인들은 대용량에 만원정도 밖에 안되는 엄청나게 저렴한 와인들이었고, 사실 와인이라고 칭하기에는 너무 단맛이 많이 나는 어떻게 보면 와인이라고 칭하기도 힘든 와인들이었다. 와인의 떨떠름한 맛이 익숙하지 않았던 한국인들에게는 오히려 디져트와인들이 잘 팔렸던 것이다. 이렇게 가격이 저렴한 와인들은 마트에서 많이 팔렸고, 와인의 주류가 저가와인일 때에 수제맥주라는 것이 나오며 중저가 와인들과의 가격적인 다리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해 수제맥주에서 와인의 세계로 넘어간 이들은 점층적으로 와인의 세계를 탐닉하기 시작하였고, 저가 와인에서 중저가, 그리고 중가와 고급까지 순차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와인을 어느정도 맛본 사람은 알겠지만, 소주 중에 증류주와 희석식소주가 다르고 맥주에서 에일과 라거의 맛이 다르듯, 와인은 품종마다 다르고 질감이 틀리며, 특히 어떤 땅에서 어떤 사람이 만들었냐에 따라서도 맛이 확연히 달라진다. 그저 '만원'차이. 그저 만원 차이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와인은 보통 저가와인에서 2~3만원 때의 와인으로 넘어갈 경우, 대부분 저가와인을 다시 구입해 마시지 않게 된다. 그저 초록색 지폐 한장이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을 크게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와인 시장은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며 확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