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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수있지 May 29. 2024

딸아이와 나 만나러 가기

아이와 대학교에 다녀왔다

지난 주말, 내가 다녔던 대학교 캠퍼스를 산책하고 왔다.

5월이 왜 계절의 여행이라고 불리는지 입증하듯,

햇볕은 따사롭고 바람은 적당히 시원했다.

이런 날은 대학교 캠퍼스가 딱이다.

사실 학교 근처에 있는 박물관도 겸사겸사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그 전날 보여줬던 박물관 사진 속의 실감 나는 동물 전시물에 겁을 먹은 딸아이 때문에 학교만 산책하고 왔다.




아직 학교의 개념도 정확히 모르는 딸을 데리고

도착하기 전부터 주변 지형을 남편에게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마 올 때마다 들어서 족히 세 번은 들었을 이야기인데도 나름 정성껏 반응해 주는 고마운 남편이다.

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더 신난 건 말할 것도 없다.

내리쬐는 햇빛은 연두의 나무들과 어울려 반짝이기 바빴고, 여전한 건물들은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며 그 자리를 우아하게 지키고 있었다.

역시, 우리 학교가 이쁘구나(사실 학교를 다닐 때는 이렇게까지 생각을 안 해봤다. 아,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겠지)


가이드처럼 내가 자주 있었던 곳을 찾아다니며 남편과 아이에게 또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주로 강의를 듣던 사회대가 있었던 건물, 공부한다는 핑계로 밤을 새우곤 했던 중앙도서관도 가보고 힐을 신고 공강시간마다 뛰어다녔던 이야기들을 하면서 힘든 줄 몰랐다. 더위에 약한 남편은 땀범벅이 되었지만 내가 너무 신나 보였는지 그런 나를 영상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는 딸아이는 그저 돗자리나 피고 앉아서 소풍 하자고 계속해서 졸랐다.(당연히 돗자리는 피지 않았다)




나는 왜 그렇게 신이 났을까

한참 현역으로 학교를 다닐 때에는 졸업생들이 학교에  한 번씩 찾아오는 걸 볼 때면 어떤 감정인지 궁금했다.

졸업반이 다가올수록 친구들과 “우리가 각자의 딸과 함께 학교에서 다시 만나면 기분이 정말 이상하겠다”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여대였기 때문에 딸이 더 의미가 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일종의 로망 같은 거다.


학교에 가니 모두 그대로였다. 나 또한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의 꿈 많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었던 대학생의 나와 만나는 느낌. 참 이상하지만 당연하게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 마음속에서 일렁였다.

현실에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에 침잠되어 있던 나에게 과거의 내가 ‘너 지금 뭐 하는 거야’라고 적힌 돌멩이를 던진 느낌.




나중에 딸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다시 학교에 같이 갔을 때,

지나가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엄마도 그렇게 푸르렀음을 한 번씩 생각해 주면 흐뭇하겠지.

‘우리 엄마가 어쩌다 저렇게 되었지, 난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 ‘가 아니라

‘역시 우리 엄마는 학생 때부터 멋졌겠구나 ‘라는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1,2년 뒤에 한번 더 가야겠다.

로망의 정점이었던 아이용 과잠을 사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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