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결론은
벌써 둘째 아이를 임신한 지 27주가 되었다
예정일 기준 계산으로는 D-88일이다
2월에 아이 임신을 확인하고 죽음의 입덧 기간을 보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빠르다
이 말은 곧,
첫째 아이가 온전히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아이가 유치원을 간지 5개월이 되어 적응기간도 끝났고 엄마들도 두 번 정도는 안면을 튼 사이가 됐다
아이들도 슬슬 서로의 집에 초대하면서 놀기 시작하는데
우리 아이도 이번에 다른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놀러 가게 되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둘째를 낳기 한 달 전부터 출산 후 100일 정도까지는 내가 집에 묶여있을 테니
그전에 아이에게 이런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생겼다.
나도 엄마들과 미리 친해놓으면 나중에 복귀하기(?)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있는 게 사실이다.
놀러 간 친구 집에는 장난감이며 책이며 놀거리가 정말 많았다.
남자아이인 친구는 레고는 물론, 넘버브릭스며 온갖 퍼즐, 교구, 갖가지 미술용품, 악기, 트램펄린까지.
키즈카페보다 더 많은 장난감들을 보면서 ‘아, 이러면 정말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같이 놀 맛이 나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이와 실컷 그 집에서 놀고 집에 돌아온 후
책장과 테이블, 소파만 있는 우리 집 거실이 괜스레 휑해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이겠지
아이 방에 달려있는 베란다에 꾸역꾸역 집어넣은 장난감들을 괜히 만지작 거리는 날이다
둘째를 곧 출산한다는 말에 둘째 미션까지 끝낸 친척이 이것저것 줄 것이 있다고 한다.
첫째 때는 그래도 아이에게 첫 물품들이니 새 거로 사주고 싶었고(일하는 엄마니 능력도 여유가 있어 가능했겠지만) 사실 이렇게 얻을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둘째는 그런 거 없다.
첫째 아이가 쓰던 장난감, 보던 전집 모두 잘 보관해두고 있으니
새 거를 새로 사준다는 개념이 아예 퇴색되어 버린 느낌이랄까.
그리고 전업주부가 되어버린 엄마에 첫째 아이 교육비까지 생각하면 이건 고민의 여지가 없다.
눈이 동그랗게 커져 너무 좋다고 가지러 가겠다고 했다.
받은 물품은 신생아 바구니 카시트, 아기 때부터 쓰는 카시트, 절충형 유모차다.
어머, 꽤 가격이 나가는 브랜드의 것들이다. 심지어 상태도 너무 좋다.
중고로 구했어도 첫째 아이의 패드학습 석 달 치는 가뿐히 넘었을 금액이다.
과일 한 박스와 장난감 한 박스를 선물로 줬어도 남는 장사다.
득템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동시에 뭔가 아쉬운 느낌이 마음속에 안개처럼 자욱해진다
이런 브랜드 유모차를 나는 왜 사주지 않았을까
둘째라도 이걸 타서 운이 좋다고 생각해야 하나
도대체 이건 무슨 감정이며 생각이란 말인가
오해를 풀자면(?) 돈이 없는 건 아니다
조금 더 브랜드나 장난감 종류에 욕심이 있었다면 계획해서 살 수 있다.
그저 우리 부부의 육아템 소비관은 가성비 위주로 사고
남는 돈으로 아이의 다른 부분을 채우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고
사실 단순한 장난감을 많이 사주는 것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가지고 노는 방법을 연구하는 괜찮은, '열린 장난감'을 사주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리는 것일까
혹시라도 다른 친구들이 누리는 것들을 내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일까
아니면 이것저것 다 해줄 수 있는 충분한 부를 가지고 있지 않은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같은 것일까
아마도 아이가 부러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다.
물론 아이는 그런 걸 표현한 적이 거의 없다.
실제로 그런 감정이 없었을 수도 있다.
늘 그렇듯 잘하고 있는 것보다 부족한 것을 먼저 생각하는 나쁜 버릇이 나와서 나를 괴롭히는 중인 거다.
내가 공부하고 끊임없이 고민해서 하고 있는 육아방식이 가끔 이렇게 흔들린다.
엄마인 내가 흔들리면 안 되는데.
아직 공부와 고민이 부족한가 보다.
우리 셋으로도 충분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그날이 조만간 끝나고
넷의 더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그때는 두 아이의 엄마로 조금은 더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될 수 있을까
일단 책을 조금 더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