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럴수있지 Jul 15. 2024

버블버블한 순간

너랑 설거지하기

남편이 야근해서 아이와 둘이 저녁식사를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우리 둘이 식사하고 저녁시간을 보내는 일이

독박육아이라는 생각으로 예전만큼 답답하지 않고 익숙하다

아이와 말이 통하고 대화라는 것을 하는 느낌이라서 그럴까 뭔가 심심하지 않게 되었다.


보통은 저녁식사를 하고 아이가 유튜브영어영상을 보고 있으면 나는 후다닥 설거지를 한다

아이가 잠들어 육퇴 하게 되면

나의 오늘 노동도 퇴근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상이라는 것이,

아무리 영어영상이어도 조금은 마음을 쿡쿡 찌르는 구석이 있다

아이가 꽤 산만한 모습을 보였던 날이면

이게 다 영상을 많이 보여줘서 그런가 라는 생각이

어김없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마치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존재랄까

당장 내 몸 편하자고 주지만 마음은 절대 편하지 않은 그런 존재말이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혼자 색칠놀이라도 하고 있으라고 준비해 주고

후다닥 얼마 없는 설거지를 끝낼 참이었다

“엄마, 나 엄마랑 설거지 같이 하고 싶어요 “

라는 아이다.

“네? 네? 엄마랑 같이 하고 싶어요~ 제발요 오~”

이게 제발까지 나올 이야기니.


그릇의 양이 많지 않은 오늘 같은 날엔

아이가 먼저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편이다.

나에게야 설거지가 집안일이고 노동이지만

아이에게는 놀이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자기가 먹은 그릇을 스스로 씻는 것도 집안일에 참여하면서 가족구성원으로의 책임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사실 무엇보다, 아이와 둘이 나란히 꼭 붙어 서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소꿉놀이하는 느낌이 좋다


아이 사이즈에 맞는 앞치마도 해주고

나도 예쁜 앞치마를 하나 고른다.

의자를 가져다 아이의 자리를 잡아주고

수세미 비누칠은 내가, 물로 헹구는 건 아이가 하는 걸로 역할 분담을 한다.

가위랑 칼이나 크기가 큰 것들은 먼저 다 정리해 두고 아이를 부른다.

달려오는 아이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이다.

귀여운 우리 딸.


거품을 묻혀 아이에게 주면 조심스럽게 물 온도를 체크하던 아이는 이제 능숙하게 물로 거품을 씻어낸다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도 잡아서 앞뒤로 요리보고 조리 본다.

다 됐다고 생각하면 건조대에 뒤집어 놓기까지 일사천리다.


그렇다고 실수가 없는 건 아니다.

혼자 할 때보다 더 매의 눈이 되어 아이의 손을 보다 보면

거품이 아직 남아있을 때가 있다.

“엄마가 보기에는 아직 거품이 있는 거 같은데?"

라고 말해주면

"내가 보기엔 없는 거 같은데????"

하고 이젠 귀여운 자기주장도 한다.

그러다 살펴보고는

“아이코, 실수했네! 엄마 미안!!"

쿨하게 인정까지 하는 5살 언니다.

"미안해할 일 아니야.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 “

라고 말해주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이가 갑자기 작은 창에 비치는 우리를 보더니 나에게 살포시 기댄다

애교 섞인 눈으로 쳐다보며 나에게 얼굴을 비빈다

이 순간이다.

너와 나의 오늘의 행복이다.

행복을 사진으로 찍으면 지금 이 순간 또한 하나의 행복이겠지

오늘 하루 있었던 마음의 때가 다 씻겨나가는 느낌.

거품보다 더 몽글해지는 엄마의 마음을 너는 아는지


로미야,

엄마랑 함께 평생 이렇게 지내자

나이가 들어서

아무 일 없는 일상에서도

서로를 애교스럽게 바라보기도 하고

옆에서 비비면서 그렇게 살자

우리의 행복으로 채우면서 그렇게 지내자.


작가의 이전글 엄마는 울지 않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