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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수있지 Jul 08. 2024

엄마는 울지 않아

아이와 응급실에 갔다

그날은 6월 1일 우리의 5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유럽느낌이 물씬 풍기는 공원에서 작은 텐트와 캠핑의자도 펴고 사진도 찍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예전 윈도우 배경화면 같은 하늘까지 완벽한 날씨였다. 그때까지는.



아빠와 텐트에 있던 아이가 더웠는지, 다시 캠핑의자에 앉겠다고 했다. 엄마와 같이 앉자했더니 기어코 싫다고 한다. 혼자 따로 앉겠다고 떼를 부린다.

아빠가 밖에 있을 때도 혼자 앉히기도 했고 지켜보는 어른도 많았다. 본인체격보다 너무 크지 않은 의자에 아이를 앉히고 과자를 주니 본인도 이 여유를 즐기는 듯 기분이 좋아 보인다. 살랑살랑 바람에 기분이 좋았는지 발 까딱까딱 장난을 하기 시작한다. 아이를 보며 “그러다가 뒤로 넘어져.  조심히 앉아있어야..”까지 말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뒤로 넘어간다.

몸통으로 한번 부딪치고 머리가 부딪친다


해외영상 보면 히어로처럼 아이를 구해주는 부모들도 많던데

나란 놈은 왜 아이를 받쳐주지 못했을까

아이는 까무러치게 울기 시작했다

넘어지는 과정을 봤기에 아이가 단순히 놀랐다고 생각해서 안아서 달래고 있는데

남편이 피가 난다며 소리를 지른다

아이의 머리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남편은 아이를 들쳐 안고 차로 뛰어가기 시작하고 나는 근처 소아과에 전화를 돌린다. 토요일 오후에 지금 갈 수 있는 곳은 대학병원 응급실이다. 하필이면 요즘 같은 때에 대학병원 응급실이다.


응급실에 달려가는 동안 의료인이 아닌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니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부모가 정신을 차리고 놀란 아이를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놀라면 두려워지고 

부모가 웃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부모가 괜찮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며 아이를 안심시키면 아이는 부모만 믿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상황을 괜찮은 것으로 만들어야한다


나는 손으로는 아이의 머리를 살포시 잡고 머릿속으로는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최선을 다해 아이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지금 엄마아빠랑 같이 엄청 큰 병원에 가고 있어. 머리가 아프지?? 다 고쳐주시는 멋진 선생님한테 보여드리면 안 아픈 연고를 발라주시면 금방 나을 거야. 엄마가 보니까 금방 괜찮아질 거 같아” 라며 토닥거린다.

아이의 울음이 잦아진다.

신호가 걸릴 때마다 남편은 뒤로 돌아보며 아이의 상처를 물어보고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아이는 다시 울기 시작한다. ‘큰일이 난 건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았다. 여보 제발..


임신한 후로는 처음으로 다섯 살 아이를 끌어안고 응급실로 뛰어들어간다. 응급처치를 해주는 선생님께 거의 무릎을 꿇어가며 아이 여기서 진료받을 수 있게 해 달라며 사정사정을 한다. 그분은 해주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안다. 의료진이 현장에 없는 걸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그게 또 나에겐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안에 선생님께 확인을 해보니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진짜 이 세상의 모든 신들께 감사드리며, 제가 그동안 선하게 살았나요, 앞으로는 더 착하게 살겠습니다

아이는 전문의 선생님이 보시고 단순 상처가 났다며, 소독해 주시고 감염에 우려가 있으니 의료용 스테이플러로 한번 집어주셨다. 연고를 잘 바르면 낫는다며, 4,5일 정도 머리 감지 않으면 된다고 간단한 처방을 내려주셨다. 세상의 모든 신님들, 저 정말 착하게 살게요


혹시 모르니 엑스레이 촬영을 하기로 하고 임신부인 나는 남편과 교대하고 응급실 밖으로 나왔다

생일선물로 받고 처음 입은 내 하얀 블라우스는 빨간 피로 여기저기 물들어있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전에 아주 놀란 일이 있어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이다가 친정엄마한테 아주 호되게 혼난 일이 있다. 성인 되고 그렇게 혼난 건 처음이었다.

내 아이 앞에서 눈물 보이는 거 아니라고. 저 아이한테는 네가 세상의 전부인데 네가 무너지는 모습은 보여주지 말라고. 

이젠 밖에서 나 혼자니까 울어도 되겠지

엄마에게 전화하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걱정을 끼쳐드렸는지 내 생각만 한 딸이지만 엄마에게 울분을 토해낸다

나라고 머리에서 피가 나는 딸을 보며 무서운 생각이 안 들었을까, 자지러지게 우는 딸을 보며 가슴에 피멍이 안 들었을까.

엄마, 나 너무 무서웠다고 엉엉 울었다.


이젠 엄마가 나를 안심시킨다.

괜찮다고. 요즘 같은 시국에 응급실 진료를 무사히 받고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셨으니 괜찮을 거라고.


너무나 다행히도 아이는 5일 후에 의료용 스테이플러도 뽑고 금방 나아서 수영장도 다녀왔다

아이들의 회복력은 정말 놀랍다

이 사건으로 우리 부부에게는 의자포비아가 생겨 아이기 어떤 의자는 정자세로 앉아있지 않으면 호랑이로 변신한다.


아이가 다쳤을 때, 엄마가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꼭 이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서 옆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잘잘못을 따지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정말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지금 엄마는 입으로만 걱정하는 게 아닌 온몸과 정신을 다해 이 상황을 해결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누구보다 내 새끼 걱정하고 미치겠는 사람은 엄마니까 그만 좀 하세요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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