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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수있지 Jul 01. 2024

눈물의 신데렐라라니

딸이 신데렐라를 보며 네 번 울었다

5살 딸아이가 요즘 빠져있는 캐릭터는 단연 디즈니 공주들이다.

눈 못 뜨는 아침, 디즈니 공주들의  OST면 눈이 번쩍이다.

영어로 된 노래도 이제 얼추 흉내를 내고 있는 걸 보니 우리가 얼마나 들은 건가 싶다.


지금의 내 속마음은 아이가 전형적인 공주 캐릭터에 안 빠졌으면 좋겠지만

(사실 사랑 때문에 자신을 포기한 인어공주나 온갖 구박을 받고 사는 신데렐라처럼 답답한 캐릭터도 없었다)

아이에게 지금부터 현실을 알려줄 필요는 없고

기본적인 스토리는 알고 있어야 또래 집단에서 배경지식 같은 것들이 밀리지 않을 수 있으니

가이드만 잘해주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마블 외에는 딱히 볼 게 없다고 생각했던 디즈니 만화를 볼 수 있는 OTT를 재구독하고

아이에게 처음으로 보고 싶은 만화가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신데렐라'가 당첨이다.


이왕 보는 거 오리지널로 봐야지

나도 책으로만 봤지 디즈니 오리지널 만화로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기대를 하고 아이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어랏, 1950년대에 만들어진 만화영화라니

아주 클래식하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생동감이 넘치는 만화에

신데렐라라는 캐릭터 자체도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는 캐릭터였다.

'그동안 큰 오해를 하고 있었군'이라며

나도 집중을 해서 보고 있던 중이었다.



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일이야

만화가 너무 무섭다며 멈추란다.

계모가 키우는 루시퍼라는 아주 못된 고양이가 신데렐라의 쥐 친구들을 괴롭히는 장면이 너무 무섭다는 게 이유였다.

허.. 그래 무서울 수 있지

그동안 고양이의 존재는 아이에게 귀엽게 손으로 얼굴을 비비는 '야옹이'정도였으니 그럴 수 있다.

어차피 이야기 대세에 큰 영향이 없는 부분이라

아이를 달래고 뒤로 넘겨가면서 보기 시작했다.


드디어 손자를 보고 싶었던 왕이(?) 왕자의 신붓감을 찾기 위해 왕궁의 무도회를 열어 아가씨들을 초대했다.

신데렐라가 본인도 갈 자격이 충분하다며 계모에게 맞서고 (신데렐라 나이스!)

약간은 생각 없는 동물친구들이 리폼해 준 드레스로 갈아입고 문을 나서려는데

언니들이 자신의 리본끈을 썼다며 신데렐라가 입고 있는 드레스를 찢는 게 아닌가

'와 진짜 못됐네,  꽤 자극적인데?'

라고 생각이 든 찰나, 아이가 또 울기 시작한다.

"엄마 신데렐라가 너무 불쌍해요 흑흑 안 볼래요 ㅠㅠ"

라며 리모컨으로 꺼버린다.

평소 같았으면 그래, 안 봐도 괜찮아라고 아이만 달래고 말았을 테지만

이렇게 끝나버리면 아이에게 신데렐라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로 남을까 라는 생각과

아이가 계속해서 힘든 상황을 회피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아이가 무서워하는 마음을 이해해 주고 달래준 후

"로미야, 그런데 우리는 이야기를 알고 있지?

신데렐라가 지금은 힘든 상황을 겪고 있지만,

결국에는 왕자님과 행복하게 지내고 언니들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아.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싶은데 너는 어떠니?"

라고 물어보았더니 보겠다고 끄덕인다.

기특하다 우리 딸.

손을 꼭 잡고 다시 보기 시작했다.


왕자가 신데렐라에게 반해서 춤을 출 때는 함께 춤을 추는 흉내도 내면서 즐겁게 보고,

유리구두가 벗겨져 도망갈 때는 어머어머 둘이 몰입하면서 드라마 보듯이 봤다.

12시 종이 울리면서 호박마차를 타고 집에 가는 중간에 마법이 풀리자

아이가 또 울기 시작한다.

마법이 풀려버린 신데렐라가 너무 불쌍한 우리 딸.

공감능력에다가 몰입력이 어마어마하다.

다행히 마법이 풀렸지만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웃는 신데렐라를 보며 다시 웃는 딸이다.


드디어 유리구두의 주인공을 찾는 사람들이 신데렐라의 집까지 왔다.

이번에도 위기를 넘긴 신데렐라가 스스로 신어보겠다고 이야기하면서(또 나이스)

신으려는 찰나, 계모가 왕궁에서 가져온 유리구두를 깨버린다

(계모가 요즘 막장드라마에 나오는 빌런 못지않다)

"엄마 어떡해요... 신데렐라 유리구두 없어지면 어떡해요..."

라며 아이는 네 번째 울음을 터뜨렸다.

어어, 이 부분은 엄마도 충격인데..

다행히 신데렐라에게 있던 나머지 한 짝의 유리구두로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이렇게 아이는 신데렐라를 보면서 네 번을 울었다.

귀엽기도 하지만 걱정요정인 엄마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런 만화도 이렇게 힘들어하면 아이가 자신의 작은 사회에서도 쉽지만은 않겠구나.


아이에게 마냥 좋은 감정만 주면서 키우는 것보다

가끔은 좌절과 비슷한 감정도 느낄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고 하더니 정말 인가보다.

아이가 부정적인 자극에 이렇게 약할 줄이야

물론 예뻐 죽겠는 내 새끼 온실 속의 화초처럼 좋은 것만 보고 좋은 말만 듣고 살았으면 좋겠지만

어디 사회가, 인생이, 사람들이 그럴 수 있을까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사회가 나가 잘 지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말을 항상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여린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들을 소화하고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육아의 다음 레벨 미션으로 넘어갈 시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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