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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수있지 Aug 23. 2024

여행이 가고 싶지 않아

시간은 있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2주 정도 휴가가 생겨서 여행을 가야 하는데

여행이 가고 싶지 않아 “

어느 날 친구가 한 말이다.

직장인들이 들으면 이게 무슨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리냐며

어이없어할 소리지만

나는 무슨 말인지 안다.

미묘한 이 감정을 느껴본 사람은 안다.


사실 여행이 어떤 여행이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여기서 말하는 여행은 가족여행이다.

내가 엄마로서 아이를 위주로, 주부로써 가족을 챙기며 다녀오는 그런 가족여행. 여기에 부모님까지 계시면 자녀 혹은 며느리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그런 여행.

이 여행에서 여행자로의 나는 찾기 쉽지 않다

물론 의식적으로라도 여행지에서 오롯이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참 쉽지가 않다.

나 같은 경우에는 꾸역꾸역 다음날 일찍 일어나 좋아하는 뷰를 보며 책을 몇 장 읽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여행은 피로감이 굉장하다.

가족들과의 시간은 너무 좋지만 행복한 시간 뒤에 있는 노동의 피로감이 꽤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에서, 일상생활에서 여가생활을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나는 이 친구에게 그럼 이번에는 온 가족이 길게 가는 여행보다 먼저 남편과 각자 하루 이틀씩 번갈아 여행을 다녀오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내 마음을 돌봐주고 숨을 돌리면서

주부가 아닌 나로만 존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비록 외출한 지 3시간 만에 아이가 보고 싶어 내가 먼저 영상통화를 걸지라도 말이다.


이건 매일같이 내 시간이 없다고 불만을 하는 남편도 그럴 거다. 한때는 남편에게 출퇴근 시간 동안 자유시간을 누리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얼마나 조악한 생각이었는지. 그 시간은 말 그대로 직장인이 출, 퇴근을 하는 시간이었을 뿐인데.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노는(?) 주부가 시간이 없으면 누가 시간이 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

맞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는 유치원 가고 난 후의 시간은 하루의 1/3 정도 되는 꽤 긴 시간이다.

물론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슨 약속이 있지 않은 이상

그 시간 또한 주부의 시간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빨래,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하고

집안일 중 챙겨야 할 것들에 대한 정리를 한다.

이번 주말에는 어디 좀 가줘야 하는데 하면서 놀러 갈 곳을 찾고

가계부를 정리하고

육아 책을 읽고

저녁식사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한다.

육체는 혼자 있는 시간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오롯이 나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닌 것이다.

‘내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조리원에서 무료로 해주는 산전 마사지를 다녀왔다.

정부의 출산 지원금이 늘어난 탓인지, 미친 물가 탓인지

조리원에서 받는 마사지의 금액이 첫째 때보다 아주 많이 올랐다.

흠칫 놀란 마음에 유료 산후마사지를 받을지 말지 아주 많은 고민을 한 상태에서 다녀왔다.

사실, 그 돈이면 우량주 몇 개를 더 사놓지라는 생각이 더 큰 상태였다.


마사지를 받으며 생각했다.

이게 얼마 만에 '나'만을 위해 소비되는 시간인가.

뭔가 나에게 미안한 느낌까지 들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팅팅 부어터진 내 몸에게 이 정도는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물들였다.

고민을 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흡족한 마음으로 마사지를 예약하고 왔다.




나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것을 먹고, 내 취향으로 도배된 공간에 가서 그 공간에 한껏 취해도 보고 하는 그런 시간 말이다.

사실 둘째 육아가 시작되면 이런 시간은 꿈에서만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전까지는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의식적으로라도

아이만 키우는 게 아니라

우리(나와 남편)도 돌봐줘야 한다

지치는 우리의 마음에도 한 번씩 영양제도 주고 토닥토닥 재워도 주고 해야 한다.

나라는 사람을 놓지 않고 있어야

힘들 때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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