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유경 Aug 18. 2018

<미스티> 김남주를 보며 떠올린  오유경 <시사투나잇>

리얼 방송 에피소드 1

올해 초 김남주가 열연했던 JTBC 드라마 <미스티>에 푹 빠져 지냈다.

 <미스티>뿐 아니라 방송계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는 빼놓지 않고 본다. 같은 업계 이야기가 펼쳐지다 보니 디테일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 왈가왈부하면서 정서적으로  몰입하게 된다.  <미스티>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대한민국 최고의 앵커 고혜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 멜로드라마였다. 드라마의 구성이 시작부터 끝까지 정교하게 짜여있고, 이야기 전개 역시 끝까지 예측불허의 긴장감이 유지됐다. 무엇보다 김남주가 맡았던 '고혜란 앵커'와 이경영이 맡았던 ' 장규석 국장' 신예 진기주가 맡았던 '차세대 앵커  한지원'의 캐릭터 설정은 나의 방송 생활 가운데 가장 요란하고 치열했던 2년을 떠오르게 했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왼쪽 자리'를 여성에게 내어 주었던 KBS <생방송 시사투나잇>, 나는 왼쪽자리에 앉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앵커였다.


전쟁 같았던 시간을 함께 보냈던 제작진은 지금도 가끔씩 만나서 술잔을 기울인다.

‘난 말이야 당신이 참 마음에 안 들었어. 피디가 취재해 온 내용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잖아. 그런데 이제 인정하고 선배라고 부를게. 오 선배 인정한다!’ 나보다 몇 살 위인 후배 피디가 입사 후 처음으로 선배라고 부르며 고백하듯 말했다.  


당시 한마디의 앵커멘트를 위해 하루 종일 사실을 확인하고 자료를 찾고 토론을 벌였다. 생방송 직전까지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시사투나잇>은 앵커가 매 뉴스 꼭지마다 의견을 덧붙이는 형식이었는데 피디의 취재물에 기초하여 책임피디, 작가 그리고 최종 전달자인 앵커가 함께 토론한 결과물이었다. 책임피디의 지휘에 따를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의견을 방송에서 전달하는 앵무새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 양심과 자아 그리고 제작진의 의견이 어느정도 좁혀질때 까지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다. 때로는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한바탕 격렬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신경전이 치열해지면 열이 올라 방송도 시작하기 전에 화장이 녹아내리기 일쑤였다.  나의 화면 속 이미지를 책임지는 코디네이터는 제발 조금만 일찍 내려와서 거울 좀 보고 가라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분첩 한번 두드리는 것보다 단어 하나라도 고쳐서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하는데 열중했다.


한 번은 논쟁이 너무 치열했던 나머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생방송 5분 전임을 알게 되었다.

회의장소는 9층이었고 생방송 스튜디오는 지하 1층, 무려 10층을 내려가야 하는데 자칫 생방송에 늦을 수도 있었다.  뛰어 내려가야하나  잠시 계산을 했지만 그러다가 계단에서 구르기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

그날따라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속도는 왜 그리 더디게 느껴지는 것인지 아무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애꿎은 버튼을 계속 눌러댔다.

‘다행히 늦지는 않겠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초조하게 숫자만 올려다보고 있는데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5층에서 엘리베이터 속도가 느려지면서  멈추는 것이다. 이미 자정을 넘긴 이 시간에 누가 대체 엘리베이터를 눌렀단 말인가.

‘빨리 닫아 ~~~~!’

엘리베이터 문이  빼꼼히 열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우리는 고함을 지르며 '문 닫힘' 단추를 마구 눌러댔다.

열린 문 틈으로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려던 누군가의 놀란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슬아슬하게 뉴스 스튜디오에 도착하여 마이크와 이니어까지 착용하고 준비를 마치니 생방송 30초 전.

무사히 타이틀과 시그널 음악이 나가고 천연덕스럽게 오프닝 멘트를 한 후에야 한숨을 몰아쉬며 부주의함을 자책했다. 내일부터는 무조건 생방송 시작 30분 전에 내려와서 준비해야지...

그렇게 치열한 하루하루가 쌓여갔다.


방송이 끝나면 새벽 1시. 피로가 몰려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방송이 끝나고 난 직 후 가장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정신이 맑고 컨디션이 좋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팀 사람들은 한결같이 집에 가도 새벽 4~5시까지는 잠들지 못하다가 동이 트는 시간이 되어서야 졸음이 몰려온다고 했다.

생방송의 긴장과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서 일 것이다.

방송이 끝나면 항상 팀원끼리 근처 단골 호프집에 들러 스트레스와 긴장을 풀었다.  팀워크가 너무 좋아서는 아니다. 새벽 1시에 무슨 대안이 있겠는가? 미우나 고우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을 리 없다.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KBS 뉴스라인> 기자들 역시 밤 11시 30분에 뉴스가 끝나면 같은 호프집에서 한 잔 하고 있다가 우리 팀이 몰려 들어가면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난다. <KBS 뉴스라인> 기자들과 <생방송 시사투나잇> 피디들은 마치 정규군과 비정규군이 만난 듯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데면데면 인사를 나누며 뒤풀이 바통터치를 하곤 했다.  


제작진이 하루를 마감하는 그 뒤풀이가 나에게는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었다. 이틀에 한 번씩 리포트를 제작하는 피디들은 방송을 마친 당일만큼은 다음날 생방송 부담이 없다 보니 뒤풀이 자리가 길어지기도 한다.  앵커는 매일 생방송이 있기 때문에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미션이다. 당장 잠이 오지 않는다고 기분을 내다가는 자칫 다음날 방송에 지장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시사투나잇>을 맡은 첫 1년 동안은 그 뒤풀이를 거른 적이 없다. 취재 피디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마음을 열어야 했고 뒤풀이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시간이자 장소였기 때문이다.

나는 피디도 기자도 시사 평론가도 교수도 아닌  '여자' '아나운서' 였기에 저널리스트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 진보적 상징에 머무는 인형 같은 존재일 수도 있었다.


주로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잔뼈가 굵은 우리 팀의 피디들은 KBS 내에서도 유독 무뚝뚝하고 심지와 고집이 있고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가면 동료로서 환하게 반겨주는 것은 고사하고 잠시 고개 돌려 가볍게 인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매일 자신들의 작품인 취재물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논쟁하며 때로는 다른 의견을 관철시키기도 하는 여자 아나운서가 달가울 리 없었다.


나는 매일 뒤풀이 자리에서 피디들과 어울려 호탕하게 폭탄주를 돌리고 마시며 대화에 참여했다.

취재물에 대한 뒷이야기, 앵커 코멘트에 대한 취재피디의 견해 등 비로소 내가 원하는 대화들이 오고 간다. 매일 밤 허심탄회한 자리에서 함께 섞여가니 어느 순간 마음이 열리고 신뢰가 쌓여갔다.  1년이 지난 후 나는 더 이상 '뒤풀이 전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믿음직한 일원으로 변해갔다. 그들의 세계에서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이 아닌 프로그램을 위해 함께 토론을 한 만한 '앵커'가 되어 있었다.


제작진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사이가 되어 있던 어느 날, 후배 피디 한 두 명이 모여 있다가 내가 들어오자 따끈한 뉴스를 전했다.  '선배 오늘 ooo 아나운서가 우리 팀에 인사 차 온대요. 시사제작 쪽 일을 하게 되나 봐. 저는 그 아나운서 팬이에요.'


아나운서실에서 당시 떠오르는 신예였던 미모의 ooo 아나운서 후배를 만났기에 며칠 전 들은 얘기도 있어서 물어보았다.

'시투팀에 갔었다며? 인사 잘 나누고 왔어?'

그러자 후배가 말했다.

'선배 저 상처받았어요. 어쩜 사람이 갔는데 아무도 인사를 안 하고 쳐다보지도 않아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해주었다.

'그래? 너한테 인사하는 피디가 아무도 없었어? 네 팬이라는 피디도 있었는데 이상하네? 그 친구들이 원래 그렇게 무뚝뚝해. 나한테도 그래.늘 섭섭한 부분이었어.'


 어느 날 피디들에게 물어 보았다.

‘ ooo 아나운서 팬이라더니 정작 사무실 들렀을 때 왜 아무도 인사를 안 한 거야?’

그러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예쁜 여자가 오니까 부끄러워서...’

농담만은 아니었다.

나한테도 혹시 비슷한 이유로 인사를 안 했던 거니?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헛웃음을 참았다.

화성 출신과 금성 출신의 차이인가? 그들은 그저 순진했고 나는 너무 비장했더란 말인가?


드라마 <미스티> 에서는 방송국 내에 은근한 성차별을 고혜란의 이야기에 녹여냈다. 

정국장   :  그래서 기회가 오면 가겠다고?
고혜란   :  안가면 여긴 희망있어요? 선배들은 <뉴스9>  앵커 맡고 보통 1년차에 국장 달았어요.  그런데 저는 7년차예요. 여전히 직급은 부장이구요. 왜? 여자니까.
정국장   :  나보도 뒷선으로 물러나라는 뜻으로 들리네
고혜란   :  그런뜻 아니란거 아시쟎아요. 방송국이 다른 곳보다 남녀 성차별 지수가 낮다고는 하지만  위로 올라갈 수록 남자 임원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도 인정하셔야죠. 밑에서는 무섭게 치고 올라오지 위에서는 여자라고 막지 그럼 저도 돌파구를 찾아야하지 않겠어요?    
드라마 <미스티> 7화


<생방송 시사투나잇>은 피디 저널리즘을 상징하는 뉴스로서 당시 시투팀은 약자의 편에서 기득권을 견제하며 분투했지만 나는 그 외에도 KBS 조직 내의 아나운서 역할의 한계, 여성이라는 성별의 한계와도 맞서 싸워야 했음이 떠올랐다.
드라마 <미스티>의 고혜란 때문에...

2006 <생방송 시사투나잇> 오유경 이상호 아나운서






KBS 아나운서 오유경

전 KBSKWAVE편집인/ KBSAVE 대표
























작가의 이전글 덩샤오핑이 구한 아나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