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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Jan 04. 2019

그해 여름

홍수가 지난 간 자리

사람을 상대로 눈에 보이는 물건을, 그것도 실시간에 현장에서 직접 파는 장사라는 일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그 공간에 오랜 시간 갇혀서 일해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주방장 겸 레스토랑 오너로서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손님들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가게 주인인 내가 손님을 기다려야 한다.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손님이 나를 못 찾고 내 부재를 확인할 경우 그들과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 반대로 언제 어느 때든 나와의 눈도장을 확인하며 관계를 쌓아가면 어느덧 그 손님은 우리의 레귤러 고객 명단에 올라간다.


상식적인 서론을 늘어놓은 이유는 나의 가게에서의 감금(?) 상태를 인내하고 버티는 것에 한계에 다다른 시간에 대한 얘기를 꺼내려하기 때문이다.   2001년에 시작한 식당을 2008년에 정리한 후 한 달도 채 안 되어 지금의 해산물 가게를 다시 인수해서 5년째를 맞고 있었던 2013년의 일이다.   현실은 현재에 입각해서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지나온 날들이나 다가올 시간을 늘어놓으면 현실은 보통 참담해지기도 한다.  매일매일이 힘들었던 나는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나온 대안이 통기타 동호회였다.   나의 감금상태가 풀리면 당장 하고 싶은 일들 중 하나가 음악 활동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활동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을 내 안으로 불러 모으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결론이 나왔다.


생각보다 쉽게 사람들이 모였고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노래들을 연주하고 부르고 연습했다.   부지런한 한국 사람들답게 우리는 발표회라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고 첫 콘서트의 장소로는 당연히 우리 가게가 선정되었다.   나를 수년간 붙잡아 두었던 내 피와 땀의 일터가 순식간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빛나는 무대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를 드디어 잡았던 것이다.   공연 날을 한 달여 앞두고부터는 매일매일 틈만 나면 무대와 관객으로 채워질 가게를 두리번거리며 나 홀로 시뮬레이션 상태에 빠지는 시간 들이었다.   더 이상 이곳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었고 세상과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 되었다.


재앙이 불어 닥친 것은 공연이 일주일 후로 다가온 어느 날이었다.   가게의 예약 손님들도 작년에 비해 많이 늘고 종업원들도 각각 안정을 찾고 있어 콘서트 생각으로 가득 찬 나의 부담도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다.   며칠 동안 계속된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캘거리 하면 겨울에 온 도시를 하얗게 뒤덮는 눈과 영하 20도를 밑도는 꽁꽁 얼어붙는 날씨로 유명하긴 하지만 비는 그다지 내리지 않는 도시였다.   여름이면 건조하고 뽀송한 날씨가 계속되는 것이 보통인 도시에 비가 며칠째 계속해서 퍼붓고 있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보우강 이 결국 범람하는 사태가 벌어진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지 못했던 나는 여느 때처럼 가게일 을 마치고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여기저기 길이 차단되어 있었고 교통이 많이 혼잡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기 시작하면서  였다.   로키산맥 쪽의 강의 상류에서부터 물이 불어나기 시작한 것이 빠른 속도로 내려오며 근처 마을들을 삼키고 있었다.   가게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운타운의 강가 하우스에서 자취를 하던 그녀는 대피명령을 받고 집을 나왔다고 했다.   겨우 옷가지만 몇 벌 챙겨 나온 그녀와 그녀의 룸메이트를 우리 집으로 일단 데리고 왔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다운타운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2층에 위치한 우리 가게는 직접적인 피해는 없어 보였지만 그 시각을 기해 다운타운의 모든 통행은 금지되었고 빌딩들은 정전이 되며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이틀 사흘 후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고 가게 공연도 계획대로 진행될 거라는 바보 같은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공연은커녕 가게를 들어가 볼 수도 없는 상황이 일주일 넘게 지속되었다.   그 이후 겨우 가게 출입을 허락받고 냉장고와 냉동고 안의 물건들을 거래처로 옮기고 수족관의 물고기들도 대피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홍수로 뒤덮인 시내는 좀처럼 회복 기미가 없었고 정전은 그 후로도 2주일간 지속되었다.   얼떨결에 우리 집으로 대피해 온 웨이트리스와 룸메이트의 뜬금없는 피난생활은 장기화되었고 나는 본의 아니게 긴 휴가에 돌입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내가 사는 앨버타주에 사상 유례없는 피해를 남긴 홍수는 2주일 정도가 지난 후에야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이곳저곳에서 복구작업이 시작되었다.    느닷없이 물 폭탄을 맞은 내 가게는 장기간 문을 닫은 탓에 재정적인 출혈이 심했다.   직접적인 물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지만 언제나 빠듯하게 운영되던 가게이다 보니 월 말에 메꾸어야 할 고정비 가 고민이었다.   동호회 사람들로부터 가게를 걱정해 주는 연락은 이어졌지만 아무도 콘서트에 대한 얘기를 감히(?) 꺼내지 않았다.   나 역시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 뿐 어떠한 기약도 전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운타운에 다시 불이 들어오고 가게 스위치를 킬 수 있었던 건 홍수가 시작된 지 3주 후였다.   대피시켰던 물건들을 가져다 놓고 이곳저곳을 쓸고 닦고 나니 언뜻 모든 것이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게의 설비들은 그렇게 호락호락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랜 시간 정전으로 온수탱크가 균열을 일으켰고 수도 파이프는 막혀 역류했으며 냉동고는 일정 온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 모든 트러블을 내가 가지고 있는 허접한 장비와 기술로 고칠 수 없다고 판단된 순간 결국 돈으로 밖엔 해결할 길이 없었다.   기술자를 부르고 막대한 수수료를 제공하여 어찌어찌 가게를 재가동시켰다.   1층에 위치한 많은 상점들이 직접적인 물피해로 오픈을 할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 그나마 우리 가게는 손님을 맞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홍수로 인한 피해는 그 직접적인 충격이 가신 후에도 계속되어 한동안 손님들의 발길도 뜸한 나날이 지속되었다.   


홍수만 아니었다면 여름 비수기를 앞두고 오르던 매상을 유지하며 여름휴가 계획도 세웠을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홍수만 아니었다면 내가 꿈꾸던 콘서트가 성황리에 열렸을 텐데… 누구에게도 하소연하기 힘든 현실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그때 우연히 보게 된 로컬 뉴스에서 홍수 피해에도 불구하고  1년에 한 번 열리는 캘거리 스탬피드 (세계 여름 카우보이 축제)를 감행한다는 시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스타디움과 그라운드를 삼킨 물을 빼내고 부대시설을 정비하며 어떻게 해서든 이 유서 깊은 세계인들의 축제를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나를 둘러싼 많은 문제들은 내가 주저앉아 걱정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도 그때 즈음이었다.   


장애물 이란 넘어서야 하는 울타리 일뿐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벽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게는 계속 유지돼야 하고 그것을 가동시키기 위한 어떤 것이던 정상적인 방법으로 시행되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모든 일은 시간이 지나면 그저 하나의 기억으로 남을 뿐, 실제로 몇 년이 지난 지금 그해 여름의 어려웠던 기억은 남아 있지만 그로 인한 피해가 지금의 내 가게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콘서트 날짜를 새롭게 정하고 연습을 재개했다.   드디어 발표회 당일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메운 가운데 성황리에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그날, 그 어려운 상황에서 강행했던 공연을 시작으로 지금껏 그 모습은 바뀌었지만  가게에서의 이벤트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2013년의 여름은 그렇게 모든 것이 혼재했던 계절이 되었다.   행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만들어 가는 것이지 그냥 편안하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크고 중요한 교훈을 얻게 해 준 고마운 여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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