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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Mar 27. 2019

예술적인 삶이란...

풍요로운 하루를 위해

언제부터인가 나는 완벽한 아침형 인간이 되어 있었다.     옛날에 아버지께서는 저녁 식사 후 9시 뉴스를 함께 보다가 뉴스가 절반도 지나지 않아서 어김없이 졸고 계셨다.   “앉아서 조시지 마시고 방에 들어가서 주무세요”라고 하면 약간은 미안한 기색으로 머쓱하게 방에 들어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부전자전 까지는 아니지만 요즘의 나는 아버지를 그대로 닮아있다.   분명 이 현상은 나이 탓이다.   그나마 가족들과 함께하는 저녁시간을 잃어버린 나는 그 대신 무언가에 또렷하게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새벽 시간을 얻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한 시간가량 무언가를 쓰는 시간을 갖는다.   언젠가부터 글쓰기가 재미있어 일기를 쓰던 산문을 쓰던 무언가를 꾸준히 기록해 나가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잘 써지는 날과 그렇지 못한 날이 있다.   순식간에 페이지가 넘어갈 때가 있고 한 문장을 쓰고 깜빡거리는 커서만 하염없이 보다가 일어설 때도 허다하다.   하지만 이 작업을 번뜩이는 영감이나 기분에 의존하지 않고 그저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지속하고 있다.   물론 이런 글쓰기가 마감 시간에 쫓기거나 어떤 보상이 뒤따르는 일이라면 그 집중도가 열 배는 더 강해질 것이다.   불행하게도 내게는 글 쓰기에 대한 동기부여를 일으킬 목표가 전무한 상태이다.   언젠가부터 에세이 하나가 완성되면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는 있지만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는 매우 극소수이다.   글쓰기 공간에서 접하는 수천 명의 독자들이 따르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글 쓰기를 그저 내 하루 일과의 한 가지 코너로 인식하면서부터는 글 쓰기 작업이 한결 쉬워졌고 재미도 가해졌다.   무엇보다도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일상의 풍요로움이 내게 주어지는 가장 큰 보상이다.   지나치기 쉬운 나의 사소한 생각이나 내 주변을 우연히 스치는 순간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 내가 투자하는 새벽시간에 살아 움직여 내 글쓰기 파일에 저장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닌 이런 작업이 내 오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는 확신이 든다.


하루에 한편, 나는 시를 음미한다.   이민을 오면서 가지고 온 유일한 시집인 기형도 님의 ‘입속의 검은 잎’ 이 그것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설을 보는 것 과는 물론 다르다.   시가 품고 있는 스토리와 이미지, 그리고 사운드를 즐기는 것이다.   따라서 시 한 편에는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가 있고 그 메시지는 형상화되고 또한 소리가 되어 전해진다.   기형도 시인 이외에도 수많은 시인들이 있고, 더 멋지고 아름다운 콘텐츠를 가지는 글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하겠지만 나의 하루를 풍요롭게 하는 시 읽기로서는 기형도 시인의 시 들을 그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접하는 것으로도 남음이 있다.


시와 마찬가지로 나는 요즘 한 편의 그림을 즐기는 호강도 누린다.   우연히 알게 된 ‘DAILY ART’라는 휴대폰 앱이 그것이다.   하루에 한 편의 그림을 보여주고 그 그림의 작가와 시대적 배경,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알려주는 고마운 앱이다.   물론 휴대폰으로 들여다보는 그림이라는 것이 실제로 전시회나 화랑에서 보는 것에 비할 수야 있겠냐 만은 살아있는 색체나 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대신에 내 마음대로 확대해 보고 뜯어보면서 작품 하나를 나름대로 해석해 보는 재미가 있다.   가끔은 내가 아는 화가의 작품도 실리지만 대부분은  18세기 19세기의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작품들이 많고, 그림 속의 사람들과 거리와 집들과 정물을 보면서 그 시대를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를 더한다.    이 앱의 부재에는 ‘YOUR DAILY DOSE OF ART’라고 쓰여 있다.   말 그대로 당신이 즐기는 예술의 하루 할당량이다.   하루 정량에 못 미치면 왠지 힘이 빠지고 그렇다고 넘치면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르는 정확히 하루에 한 장의 그림을 음미하는 것이 내게 처방된 량이라는 느낌이 묘하면서도 사뭇 진지하다.


내가 가진 아주 다행스러운 능력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특별히 따로 배운 적은 없어도 피아노와 기타 같은 악기를 조금씩 다룰 수 있다.    내게 있어 음악을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음악을 듣는 일과 음악을 하는 일,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내가 ‘일’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어떤 밥벌이도 되지 않는 ‘일’이다.     물론 한 달에 한번씩 가는 자원봉사에서 연주하는 것과 가게 오픈 마이크나 그밖에 행사의 스테이지에 오르는 것이 정해져 있는 일이라면 일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 음악을 하는 일은 나의 하루를 완성시키는 중요한 배 양분이다.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해놓은 타깃도 없지만 난 틈만 나면 음악에 몰입한다.   듣고 싶은 노래를 찾고 연주하고 싶은 곡들을 연습하고 뭔가 떠오르는 멜로디가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노래를 만들어 본다.   


예술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한마디로 순간의 행복을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가장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을 즐기기 위해 쌓아야 할 사전 지식 같은 것은 없다.   그림을 한편 감상하면서 그것이 내 눈을 끌고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지 그 화풍이 인상파인지 야수파 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핵심이 될 수 없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거나 예술활동을 하거나 그 몰입 시간이 깊어지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실을 대하는 시야도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예술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인생을 사유하는 능력이 깊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 어디에든 스며있다.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이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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