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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Nov 01. 2019

일본의 오모테나시

몇 개월 전의 일이다.   일본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침마다 테니스를 치러 다니셨다.   젊으셨을 때 위장 절개 수술을 받은 탓도 있지만 평생을 소식하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장수하는 일본인의 전형적인 타입이셨다.   그런 분이 90을 넘기시고부터 급속도로 몸이 쇄약해 지셨다.     결국 폐렴이 원인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 아내가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지 하루 만에 결국 유명을 달리하셨다.    나와 아내는 그 길로 다시 일본행 항공편을 예약했다.   에어 캐나다의 직항 편은 이미 만석이었던 관계로 미국 경유의 델타 항공 티켓을 어렵게 구했다.    일본에 도착하여 신칸센으로 서둘러 이동하면 장례식의 초야 (출관을 앞두고 가족 친지가 모여 치르는 첫 장례행사)에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짐을 챙길 겨를도 없이 그저 장례식 때 입을 정장과 구두 정도를 따로 슈트케이스에 넣었고 수화물로는 크기가 오버되었으므로 결국 짐은 체크인하고 탑승절차를 밟았다.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했다.   이곳 캘거리에서 시애틀로 향하는 항공기가 무슨 문제인지 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이미 승객과 승무원 모두가 탑승한 상태로 이륙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기장으로부터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항로상의 커뮤니케이션 통신에 무슨 문제가 있어 그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처음엔 10분, 그다음엔 20분, 그리고는 기장이 다시 방송을 통해 예상외로 시간이 좀 더 소요될 수 있으니 항공기 바깥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허용했다.   시애틀에서의 연결 편 시각과 현재 상황을 계산해본 결과 이대로 라면 아무래도 나리타 행 항공기를 놓칠 것 같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던 우리는 카운터의 승무원에게 차선책을 강구했다.    처음에 돌아온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현재로서는 모든 것이 불투명 하니 짐을 찾아 내일 다시 타거나 아니면 시애틀에 도착하여 그다음 날 같은 시간 항공편으로 가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했다.   아내는 어떻게 해서든 일본에 그날 갈 수 있는 방법을 간절하게 호소했고 다행히도 시애틀에서 같은 날 떠나는 델타 항공과는 협력회사가 아닌 전 일본 항공 ANA의 좌석을 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항공기가 당장 이륙하지 않으면 ANA 역시 갈아타기가 애매했다.   결국 우리를 애타게 했던 비행기는 두 시간의 지연 끝에 출발하였고 ANA의 보딩 시간을 30분 남기고 시애틀에 도착했다.   연결 시간이 짧아 체크인 한 가방이 무사히 ANA에 옮겨질까 걱정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몸을 옮겨 실는 것이 먼저였기에 우리는 하필이면 전혀 반대방향에 위치한 터미널의 게이트를 향해 사력을 다해 뛰었다.   이륙 준비를 마친 비행기는 라스트콜을 부르고 있었고 우리는 고함을 치며 달려가 좌석의 시트벨트에 우리 몸을 간신히 끼워 넣을 수 있었다.


일본을 향하는 기내에서 내내 짐이 걱정되었다.   캘거리에서 연결 편 예약을 할 때 직원에게 여러 번 당부를 해 놓기는 했지만 우리가 거의 기적적으로 비행기를 갈아탄 것을 생각하면 우리 짐이 협력 항공사도 아닌 다른 비행기에 그 짧은 시간에 옮겨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이 정도의 예외 상황은 언제나 발생할 것이고 짐을 옮겨 실는 시스템은 분명히 신속하게 작동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역시나 예상대로 우리 짐은 끝까지 벨트를 타고 나오지 않았다.   그 시각에 이미 장례식은 시작된 상태였고 지금 바로 뛰어 신칸센을 잡아 탄다고 해도 식이 거의 끝날 무렵이나 돼야 도착할 것 같았지만 짐가방도 없이 청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장인어른의 마지막 모습을 보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눈물 고인 모습이 역력한 아내를 달래며 ANA의 분실물 카운터로 향했다.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서류에 연락처와 캐나다로 돌아가는 일정 등을 기입했다.   이 상황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의미는 없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델타항공의 책임이었다.   항공기 출발이 지연된 것도 짐을 제시간에 옮기지 못한 것도 델타항공 측의 실수이고 ANA 항공은 사정이 딱한 우리들을 받아준 것 밖에는 잘못이 없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고바야시라는  ANA 항공 카운터 직원의 태도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해서 급하게 아버지의 장례에 참석하려 하는 우리 사정을 공감 어린 표정으로 들어준 고바야시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해 왔다.   그리고 식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정장과 신발 등은 우선 구입하면 나중에 항공사에서 비용을 부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겠다고 했다.   심지어 나리타 공항 내 상점들 중에 우리가 필요한 의류를 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의 약도와 그 이후 철도 연결 시간표까지 신속하게 알려 주었다.   우리가 부친 짐이 언제 도착하게 될지에 대해선 장담할 수 없지만 도착하는 즉시 아내의 친정집으로 택배를 해주기로 했다.


고바야시가 시킨 대로 우리는 상점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구입해 도쿄역으로 향하는 익스프레스 전철을 타고 신칸센으로 갈아타는 최단 시간의 이동에 성공했다.   그리고 물론 장례 행사에는 맞추기 힘들었지만 식이 끝나고 가족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는 얼굴을 내밀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장인어른의 가시는 길에 멀리 사는 자식이 달려와 예를 갖추는 의식이 가능했던 것만으로도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밤 동서와 조카들과 함께 장인어른이 모셔진 곳에서 함께 지내고 그다음 날 진행된 정식 장례 행사와 출관, 그리고 가족묘에 안치하는 모든 절차에 우리는 무사히 참석할 수 있었다.   30도를 웃도는 한여름 날씨에  급하게 구입한 의류가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지만 예를 갖추는 행사장에서는 아무 문제없이 활약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내는 고바야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행사에 무사히 참석할 수 있었는지 하는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하여 짐이 도착하였고 택배를 보낼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구입한 의류 등의 영수증은 언제든 시간이 되는대로 팩스로 보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짐의 운송과는 관계없이,  자신에게 도착한 가방을 조사해본 결과 가방 자체 몇 군데에서 결함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가방을 끄는 손잡이 부분이 부드럽지 않은 것과 바퀴와 연결된 부속이 느슨한 것, 그리고 무엇인가에 의해 충격을 받은 듯 가방 모서리가 약간 들어갔다는 얘기를 했다.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가방을 수리해서 보내주는 방법을 택하겠지만 해외 거주자 인 관계로 한 군데에 얼마씩 해서 손해를 배상해 주겠다고 했다.   영수증을 보내고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내의 통장에 의류 구입 전액과 가방 손상 배상 비용이 고스란히 입금되었다.   다음날 고바야시로부터 다시 전화를 받았고 그녀는 입금 확인을 부탁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한번 이번 일에 대해 사과하며 무사 귀국을 기원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여기서 일본 항공사의 우수한 점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물론 고바야시가 한 일은 회사의 매뉴얼에 입각한 당연한 일이고 그녀는 그 일을 순서대로 잘 처리한 것 밖에는 없다.   그리고 캐나다에 오래 살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일본인의 약간은 오버하는듯한 서비스 정신을 오랜만에 접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짐이 안 나와 당황하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순간에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준 태도에는 분명 일본의 ‘오모테나시’ 정신이 깃들여 있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유치를 위한 막판 프레젠테이션에서 한 여자 임원이 손동작을 섞어서 한 음 한 음 표현한 이 오. 모. 테. 나. 시는 세계인의 운동회를 치를 유치국의 태도를 한 단어로 집약한 것이었다.   오모테나시는 대접이나 환대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일본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 보았을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   


요즘 한일 관계는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고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그들의 미연한 대응 태도에 화가 나지만, 일본 국민들의 세심한 서비스 마인드를 생각해 볼 때면 세계 어느나라도 따라가기 힘든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손님이 왕’이라는 말이 있다면 일본에는 ‘손님은 신’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은 말뿐이 아니라 정말 신을 모시는 것같이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에 일종의 종교처럼 새겨져 있다.   대형 슈퍼의 카운터 직원에서부터 사람들이 몇 안 사는 한적한 시골의 조그마한 매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접객은 내 상상을 항상 앞선다.


캐나다에 돌아온 나는 델타항공의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우리에게 발생한 일들을 얘기했다.   물론 그것이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하고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다만 ANA 항공사로부터 받은 과분한 친절이 도리어 델타 항공사에 향하는 분노로 바뀌었고 고객센터의 직원은 나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일본인들의 과도한 (?) 친절을 볼 때면 마음에도 없이 하는 척하는 거 아닌가 하고 약간 닭살 돋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고, 뭐니 뭐니 해도 우리나라가 내세우는 ‘정’으로 통하는 관계가 자연스럽고 속이 깊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도 어쩌다 보니 서비스 업에 오랜 시간 종사하면서 느끼게 된 점이 있다.   손님을 대하는 기본 소양은 나의 인간성이나 성격, 혹은 상대와 나누는 정의 깊이로  가늠되어서는 안 된다.   서비스 정신이란 철저한 규칙과 매뉴얼을 숙지하고 실천하고 반복하는 가운데에서만 비로소 싹이 튼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나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는 언뜻 좋아 보일 수 있겠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거나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대처할 수 없다.   행복하여 웃음을 짓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웃는 훈련을 통해 어느 상황에서나 행복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고바야시의 행동이  ANA 항공사를 대변할 수 없고 ANA 항공사가 일본 전체의 서비스 정신을 대변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 국민들 저변에 깔려 있는 오모테나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그들의 무기임을 깨닫게 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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