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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Feb 25. 2019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

오!!! 느을!!!


#지금 #여기 #오늘


이민을 결정하면서 마음먹은 여러 가지 생각 들 중 가장 우선순위에 둔 것은 ‘앞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만 하기’였다.   캐나다라는 나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분명 내 개성이 녹아들기 적합한 사회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할 때였다.   사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항상 남들과 차별화되는 나를 도모하며 살아왔었다.   일을 하는 패턴에서부터 가정을 꾸미는 태도, 주말을 보내는 방법까지… 내가 생각하는 신선함을 총동원시켰다.   일 관계로 만나는 사람들 에겐 나를 기억시키는 독특한 방법들을 생각했었고 친구들과 만나는 장소를 정할 때에도 내 개성을 맘껏 발휘했었다.   회사에 멋지게 사표를 던졌을 때도 내 지인들은 다들 나를 부러워했다.   나에게서 여러 가지 독특함을 보아 온 친구들은 앞으로의 나의 삶을 궁금해했고 가족과 친지들까지도 내가 내린 결정에 ‘언젠가는 그렇게 할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울타리 안에서 나만이 뛰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은 맞지만 그 울타리 넘어의 세상은 두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가닥이 잡히질 않았다.   그것도 그런 것이, 돌이켜 보니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 본 경험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익숙해져 버린 줄 서기와 따라가기가 존재할 뿐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은 마치 내게 없는 것을 만드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고민 끝에 우선 싫어하는 일이 무얼까를 먼저 생각해 보았다.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나와 맞지 않는 회사 상사나 직원들, 그냥 이유 없이 싫은 각종 사회 인맥들과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어떠한 형태의 직장 생활에서도 도사리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면 내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다음 싫은 것은 남들이 다 아는 상식적인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100원짜리 과자를 사다가 120원에 파는 그런 장사이다.   소위 종합상사에서 일해왔던 나는 모든 유통과정의 중간 역할만 해왔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준다는 중요하다면 중요한 일이지만 만들어진 제품이나 사용하는 소비자는 항상 일정하고 상식적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싫어하는 일 이란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일들의 전부였던 것이다.

결론은  장사를 한다는 가정하에  내가 만들기를 좋아하는 물건을 내 물건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함께 일하는 사람들 눈치 볼 필요 없이 판매하면서 수익구조를 만들어 가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물건을 파는 일 이외에도 갖가지 크리에이티브한 일 들이 많기는 하다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레코드를 모으고 악기를 연주하고 패션잡지를 뒤적이고 맛 집을 찾아다니고 ….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할 수는 있었지만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그것을 생계로 연결하기엔 그 지식의 수준이 너무 옅고 얕았다.  


캐나다로의 이삿날은 다가오고 짐을 챙기고 보내는 일에 집중하다가 어느새 나와 우리 가족은 태어나서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땅에 도착하고 말았다.    물론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은 없었고 처음 일 년은 적응 기간으로 삼으라는 이민 선배들의 어드바이스를 위안 삼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은 잠시 유보하기로 했다.   집을 마련하고 차를 사고 한국에서 부친 이삿짐이 도착하고 은행을 열고 주민등록을 하고... 기본적인 행정업무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그리고 캐나다에 도착한 지 반년도 안되어 식당을 오픈했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그리고 내가 자신 있어하는 일을 찾아서는 아니었다.    그저 몇 가지 우연과 약간의 인연이 요식업이라는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어릴 때부터 음식 만들기를 좋아했고 외국에서 혼자 살던 시간이 길어지며 생활 밀착형으로 자연스레 무언가를 만들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친구들이 찾아오거나 하면 간단한 안줏거리를 만들어 내면서 즐거운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내가 만든 나만의 아이템을 내 주위의 눈치 볼 것 없이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반은 성공한 셈이라고 나를 합리화했다.


그렇게 ‘싫어하는 일 하지 않기’에 성공(?) 한 나에게 실패와 좌절의 그림자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처음인 일을 아무런 연고가 없는 타국에서 해 나가면서 내가 지금까지 유지해온 생활기반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의 오리지널리티를 듬뿍 담은 제품을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이 판매하는 일은 상상했던 것처럼 녹록하지 않았다.   생각만큼 손님이 찾아 주지 않았고 공과금과 세금은 꼬박꼬박 내 은행 잔고를 줄여나갔다.   그리고 식당이라는 특수성은 아침부터 밤까지 그 좁은 공간에 나를 몰아넣고 좀처럼 빠져나와 숨을 쉴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나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때에는 적어도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있었고 내 사생활을 보장해준 주말이나 휴가 기간이 있었고 같은 사무실 안에는 좋든 싫든 회사 선배들이 존재하여 내 미래를 어렴풋이 조명해 볼 수 있었다.   그 모든 안전장치를 풀어 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든 내가 감수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이미 그 수위를 벗어나고 있었다.   이민을 오기 전까지의 나의 삶은 인생의 매 마디마디마다 골인 지점이 있었다.  가시화된 목표는 그 골인 지점을 향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안주하고 버틸 수 있는 사회의 준거집단이 있었다.    그 안에 속해있던 나는 그것이 만들어 주는 보호막을 느끼지 못했고 그 안락함을 알지 못했다.    처음 내 장사를 시작하면서 부딪친 벽은 나에게 동기를 부여할 골인 지점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내 아내와 아이들을 태운 자동차를 어디로 몰고 가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이 지속되었다.   어둡고 무서웠던 나는 그저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앞으로만 앞으로만 달려가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이라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 무시되었다.  손에 넣기 힘든 목표를 원망하는 날들이 많았고 나를 얽어 놓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이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목표를 향해 방향 전환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 시간이 늘어갔다.


 18년 가깝게 장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이렇다 할 성공은커녕 아직도 불안정한 생활이 지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알게 된 중요한 진리가 하나 있다.   그동안 경험과 실패와 좌절과 깨달음이 중첩되면서 얻게 된 생각은 전에는 없었던 삶의 시야를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안목이 앞으로의 나의 인생을 의미 있게 영위하게 해 줄 키워드가 될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골인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나는 내가 속한 사회가 정해놓은 코스를 밟았다.   그 길은 내 또래의 누구나가 원하는 안전한 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런 길들은 인생의 어느 시기에 건 존재하여 방향을 제시해 주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길이 있어 그 길을 따라 걷기 쉬울 수는 있지만 그 길이 안내하는 목적지는 그곳에 없다.   내게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오늘’ ‘지금’ ‘여기’이다.   


가게에서 영업 준비를 한다.   모든 재료는 나의 올바른 루틴에 의해 자리 잡는다.    주방의 모든 장비와 도구 역시도 내 안테나 가 바르게 작동할 때 비로소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한다.   손님들의 주문과 함께 내 손을 거치는 음식들이 조리되고 담기고 서브된다.   손님들이 입으로 가져가며 짓는 표정을 살핀다.   사실 이 순간이 내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지금’이고 ‘오늘’이다.   가게를 나서는 손님들과 주고받는 가벼운 인사는 덤이다.   테이블을 치우고 접시를 닦고 모든 장비들을 제자리에 옮긴다.   오랜 시간 수없이 반복해 오는 일이지만 나 이외의 대역이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가게에서 개최하는 음악 이벤트도 마찬가지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이벤트에 참여하는 뮤지션들도 늘고 더불어 음악과 음식을 즐기기 위해 찾아주는 손님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벤트를 통해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골인 지점이나 목표 같은 것은 없다.    물론 이벤트의 호스트로서 이런저런 책임이 주어지기는 하지만 나 역시 내 스테이지에서 내 음악을 연주하는 순간을 만끽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수단이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내 삶 그 자체이다.   이 일은 나 자신이 그만두면 그 자체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물론 같은 메뉴를 같은 레시피로 전달할 수 있겠지만 내 지금의 삶이 담긴 모든 과정을 소화해 낼 대역 배우는 없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는 내게 유일하게 존재하는 지금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그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매 순간을 내가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으로 채우며 오직 지금 이곳에 나의 에너지를 쓸 수 있기를 기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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