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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May 29. 2019

그들의 하루

1

그 남자의 주중 아침은 언제나 똑같다.   집에서 5분 거리에 버스의 중간 교류장이 있고 양방향의 버스가 도착 하지만 결국 종착역은 전철역 한 정거장 차이가 날 뿐이다.   그다지 서두를 필요가 없는 남자는 어떤 방향이던 먼저 오는 버스에 오른다.   가능하면 언제나 장애인석으로부터 두 칸 떨어진 좌석을 선호한다.   오전 9시가 넘은 시간이라 버스는 언제나 텅 비어 있어 웬만한 경우가 아니고는 거의 지정석이다.   버스는 이동수단 일뿐 좌석에 앉기가 무섭게 이어폰을 끼고 최근에 다운로드한 음악을 재생시키며 구글 플레이에 쌓여있는 ebook을 연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음악 감상과 독서 라기보다는 유일하게 잘 읽히고 잘 들리는 적절한 시간대의 적절한 공간이다.   그것은 전철로 갈아타고 다운타운에 도착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차이나타운보다 한 정거장 앞에 내려 걸어가는 것 역시 그 남자의 오래된 습관이다.    빼곡히 들어선 이 도시의 건물들은 ‘플러스 15’이라고 하는 통로로 이어져 있어 영하 20도를 밑도는 날씨에도 빌딩 안을 걸어서 차이나타운까지 걸어갈 수 있다.   6월이라 날씨가 좋을 때면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걷기도 적당한 계절이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내리는 비로 전철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곧바로 건물 입구로 향했다.   빌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스타박스의 늘어진 줄, 서류가방을 옆에 끼고 어디론가 분주히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빌딩 통로에서 아침부터 기타를 치며 정체불명의 노래를 부르는 버스커, 전혀 할 일이 없이 이리저리 어슬렁 거리는 머리를 짧게 자른 건장한 체구의 시큐리티들, 가게 셧터를 여는 점원들과 오픈과 함께 들이닥치는 손님들, 아침부터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입에 넣으며 단말기에 눈을 고정시키는 사람, 커피를 내리고 야채를 썰고 카운터를 정리하는 푸드코트 알바들… 그 남자는 빌딩 안의 변함없이 바쁜 세상을 시야에 넣으며 차이나타운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니 … 저 사람은… 

누군가에게 서프라이즈를 안기기 위한 꽃들이 빼곡하게 픽업을 기다리고 있는 꽃가게 앞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은 브라이언이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는지 회사를 그만두었는지 … 요즘 거의 일 년 가깝게 보이지 않아 궁금하던 참이었다.   단골들도 여러 종류가 있다.   가족이 외식을 할 때 일 순위로 꼽아 찾아주는 사람들, 거래처와의 약속을 잡을 때면 의례히 예약을 해오는 사람들,  점심이던 저녁이던 혼자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그중에서 브라이언은 단골의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인물이다.   일 관계로 약속이 잡힐 때는 함께 오는 손님들에게 그 남자의 가게의 특성과 메뉴에 대해 확신을 주어 같이 온 사람들이 메뉴판을 열 필요도 없게 만든다.   또한 어떤 시간대이던 불쑥 혼자 들어와 묵묵히 접시를 비울 때도 있다.    무엇 보다도 그들 부부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어김없이 그 남자의 가게가 이용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공과 사를 막론하는 쓰임새이다 보니 일주일이 멀다 하고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발길이 끊겼던 것이다.   처음 몇 달간은 회사일로 장기 출장이라도 떠났나 보다 생각하던 그 남자는 그 이후로는 혹시 자신의 음식에 문제라도 있었나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거진 일 년 정도는 못 본듯한 느낌이 든다.     

그 남자는 말을 걸기가 좀 그랬다.   아니 그보다 약간의 이질감이 들었다.   이 도시에 아직 살고 있으면서 매정하게 발길을 끊어버린 그 이기에 배신감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브라이언이 제 아무리 단골이라도 결국 가게와 손님의 관계이다.   가게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조그마한 실수가 단골의 발길을 끊을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게를 책임지는 그 남자 역시 가게를 배제하고는 단골들과의 친분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시선을 무시하기엔 애매한 공간이었지만 그 남자는 애써 반대쪽의 안경점으로 눈을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하이! ”

그 남자의 난처한 발걸음을 브라이언이 멈추게 했다.   그때서야 그 남자는 브라이언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었다.   190에 다다르는 훤칠한 키, 곱슬한 은발머리, 회색 니트와 검은색 진… 평상시 캐주얼 차림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브라이언의 모습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오늘은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맞은 비인지 그의 어깨는 흠뻑 젖어 있었고 아무리 일 년 정도 못 보았다지만 그의 얼굴엔 어색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그때 브라이언의 얼굴에서 무언가 확실하게 어두운 그늘을 읽어 내었다.   


2

“여보… 우리 25년… 고맙고 축하해!”   캐씨가 건네는 한마디에 브라이언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평소 자신의 의사표현은 고사하고 가게에서 옷을 고를 때는 물론이고 슈퍼에서 오이 하나를 집을 때도 한참을 망설이는 그녀였다.   “당신한테 이런 말을 다 듣다니… 갑자기 가슴이 뛰는 걸!”   캐씨의 손을 자기 가슴에 가져오며 브라이언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함께할 25년도 잘 부탁해!”   브라이언의 감싸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브라이언은 지난 몇 년 간 하필 이맘때면 해외출장 일이 잡혀 전화나 텍스트로 결혼기념일 메시지를 전하기가 고작이었다.   “저녁 7시에 거기서 봐!   예약은 일부러 안 했어… 오늘은 오이스터가 당기는 걸!”   오랜만에 기념일 저녁을 함께 보내게 된다는 생각 만으로 브라이언은 연애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캐씨는 오늘 야외 현장학습이 있는 날이다.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를 뒤 업고 화창하게 개인 아침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성적표를 작성하느라 신경을 썼던 캐씨는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탁 트인 계곡에서 공기를 마실수 있는 생각 만으로 아이들처럼 들떠있었다.    아이가 없는 브라이언과 캐씨 부부는 서로의 일과 취미들에 대해 어느 부부들 보다도 많은 배려를 해왔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들어가게 된 오일 컴퍼니는 브라이언의 평생직장이었다.   다른 어떤 산업 보다도 경기지수와 맞물려 돌아가는 석유 관련 회사이지만 브라이언은 비교적 운이 좋게 20여 년을 한 회사에서 버틸 수 있었다.   최근 몇 년간 급속도로 경기가 안 좋아졌지만 이미 정년을 바라보는 브라이언 으로서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골프와 낚시라는 지극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취미를 가진 브라이언이지만 캐씨로부터 단 한 번도 불평을 들어본 일이 없었다.   캐씨가 몸담고 있는 초등학교 역시 그녀의 평생직장이다.   그녀가 중학생 일 때 그녀의 가족은 중국을 떠나 이곳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이민 1.5세대 로서 경험한 여러 가지가 그녀를 영어교육학과에 진학하게 했고 졸업 후 곧바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동창으로 만나 결혼으로 까지 이어진 브라이언은 언제나 야외활동을 좋아했지만 캐씨는 학교생활 이외에는 대부분을 집에서 그녀의 유일한 취미인 피아노를 연습하는 것에 모든 시간을 썼다.

평소 같으면 별생각 없이 골랐을 햄버거와 감자튀김과 PEPSI 였으나 오늘따라 무언가 조금은 헬씨 한 선택이 하고 싶었던 브라이언은 지난주에 새로 오픈한 아시안 점포에서 참치 포키 보울을 집었다.   각자 주문한 음식들을 들고 사람들이 테이블에 모였다.   “브라이언! 오늘 무슨 날이야?”   평소 같으면 허겁지겁 캐쳡봉지부터 뜯었을 브라이언이 오늘은 우아하게 나무젓가락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본 회사 동료들이 신기해했다.   브라이언 에게는 자신의 오래된 습관을 별다른 노력 없이 바꾸는 능력이 있었다.   10년 전쯤 끊은 담배도 어느 날 주머니에 남아있던 담뱃갑과 라이터를 쓰레기통에 넣은 후 단번에 20년 넘게 이어온 흡연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맥주보다는 와인이 몸에 잘 받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 어느 날 인가부터는 와인 이외의 술은 입에 가져가지 않은 것도 그렇다.    신선해 보이는 참치 샐러드에 소스를 뿌리며 이 참에 맥도널드와도 인연을 끊을까 하고 잠시 생각하던 참에 브라이언의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 캐씨 … 남편분 이시죠?.... 캐씨가… 캐씨가…”


3

삶의 각도는 눈 깜빡할 사이에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그 바뀐 방향은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제시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은 사고였다.   계곡 위의 산길에서 몇 센티만 안쪽으로 디뎠어도, 캐씨 반 아이가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넘어지는 아이를 순간적으로 잡으려 옆으로 몸을 틀지만 않았어도, 일기예보대로 비가 와서 현장학습이 중단됐었어도, 발생할 이유가 없는 사고였다.   저녁에 만나면 주려고 픽업한 튤립을 테이블 위에 놓는 순간 브라이언은 혼자가 되었다.   결국 ‘결혼 25주년 고맙고 축하해’라는 캐씨의 말은 브라이언이 그녀에게서 받은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결혼 25주년의 날을 시작으로 브라이언의 삶은 사실상 끝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방향으로도 생활을 지속할 의미가 없어졌다.   장례를 치르고 회사에 사표를 냈다.   회사로서는 사표를 수리하는 대신 장기휴가로 배려했지만 사실상 브라이언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녀를 잃은 것은 브라이언의 삶 속에 묻어있던 그녀의 부분이 도려내 진 것이 아니라 브라이언의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맥박을 끊어 버렸다.  

그렇게 그녀가 없는 일 년이 흘렀다.   옷장에는 그녀의 옷들이 그대로 있었고 밤마다 그녀가 펼쳐보곤 하던 잡지도 침대 옆 테이블 위에 그대로 펼쳐 놓여 있다.   그녀의 흔적은 신발장에도 찬장에도 책상 서랍에도 화장실 수납장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브라이언에게 있어서 그녀의 물건들과 자취는 그녀의 유품이 아니라 브라이언을 숨 쉬게 하는 필수품이었다.   회사에 복귀를 하고 아침운동을 시작하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회사 업무 이외에는 일체의 사회생활을 중단했다.    그를 위로하려던 친척들과 친구들도 브라이언의 끈질긴 거부로 다들  그와의 접촉이 끊겨 버렸다.   결혼기념일 이자 1주기인 오늘 브라이언은 무심코 일 년 전 꽃을 샀던 그 가게 앞에 서서 튤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아침의 설렘과 그날의 계획들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바쁜 걸음을 옮기는 그 남자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 년 전 사고만 아니었으면 그 남자의 가게에서 튤립을 건네고 와인과 함께 오이스터를 주문했을 것이다.   


4

“하이 브라이언!”   그동안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그 남자는 갑자기 가게에 발길을 끊은  브라이언에게 아주 형식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물론 캐씨의 안부도 물으면서… 브라이언은 대답 대신 저녁에 가게로 들리겠다고 했다.   가게로 발길을 옮기며 그 남자는 생각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야… 하지만 그 일이라는 것은 가게와 음식, 혹은 서비스와 관련된 것은 아닌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가게는 일련의 단골들로 인해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손님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일상 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소비나 사치 중의 하나로 어떤 특정한 가게를 떠올릴 뿐이다.   가게로 봐서는 그들을 끌고 그들에게 매력을 풍기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지만 그 노력들이 손님들의 기억 속에 아주 조그마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넘쳐나는 성공일 것이다.   역시 결론은 특별한 서비스보다는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 그 음식이, 같은 맛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한다… 아침부터 이런저런 뜬금없는 영업철학을 생각하며 그 남자는 가게문을 열고 들어간다.   지금의 가게 자리에서 영업을 한지도 10년이 넘었다.   그 남자의 아침 준비는 언제나 똑같다.   그날 쓸 분량의 고기와 생선들을 해동하고 야채를 다듬고 밥을 안치고 튀김기의 기름을 간다.   주방에서 그 남자가 움직이는 동선 하나하나에 한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언제나 익숙하고 언제나 번함 없다.   바쁜 손놀림이 갑자기 멈춘다.   무언가 이상하다.   냉동고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평소와는 다르다.   재빠르게 온도를 체크한다.   아직은 적정온도를 유지하고는 있다.   직원들이 출근을 하고 어느새 오픈 사인이 켜진다.   하나 둘 손님들이 들어오고 어느새 홀은 점심 인파로 넘쳐난다.   한 시간 남짓 계속되는 점심시간은 그 남자에게는 언제나 전쟁이다.   오늘따라 예약 없이 들어온 손님들이 많아 아침에 준비한 재료들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어떻게든 치러 내야 하는 상황이라 급하게 냉동고에서 추가 재료를 꺼내 해동을 한다.   무의식적으로 바라본 온도에 그 남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온도는 영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컴프레서에 문제가 있는 듯했고 만약 그렇다면 고치는 대만 $1,000 이 넘어간다.   가게를 꾸려간다는 것은 수많은 사고들의 연속이다.   아무리 영업매출이 올라도 예상치 못한 비용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오랜 경험으로 웬만한 일에는 놀랄 일도 아니지만 어렵게 어렵게 버는 돈이 너무나 쉽게 나가는 현실은 언제나 괴롭다.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냉장고 전문 수리공인 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이런저런 기구들을 가지고 와서 진단을 한 톰은 “컴프레서는 아직 괜찮아!”라고 했다.   아… 이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컴프레서의 목숨이 살아 있다면 다른 곳은 몇십 불이면 고칠 수 있다.   그 순간 그 남자 눈에 비친 톰은 세상에 둘도 없는 수호천사이다.   비용 걱정으로 잔뜩 긴장하던 그 남자는 모든 상황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은 물론이고, 일손을 돕는 직원들, 여러 가지 재료를 담당하는 공급업자들, 그리고 비록 오래되었지만 어떻게든 움직이고 있는 냉장고, 냉동고, 그 밖의 주방기기들… 모두에게 다 감사했다.   저녁에 찾아올 브라이언 역시 그 남자의 가게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5

브라이언이 가게로 들어온 것은 8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손님들도 거의 다 빠지고 뒷정리를 하던 그 남자는 튤립 꽃다발을 들고 들어오는 브라이언을 반겼다.   캐씨가 올 거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했다.   캐씨와 올 때면 항상 앉던 구석 창가 테이블에 앉은 브라이언은 테이블 건너편에 가지고 온 꽃을 놓았다.   와인과 오이스터를 주문한 브라이언은 물끄러미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저런 농담을 건네었을 브라이언이지만 그 남자가 와인병을 따고 있는 동안 그의 시선은 창문 밖 가로수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남자는 무슨 말이던 건네야 할 것 같았지만 왠지 그냥 혼자 있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브라이언은 오이스터를 주문하고 와인 잔을 입에 대며 그 남자에게 살짝 웃어 보였다.  그 남자 역시 가벼운 목례로 대신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문한 음식을 준비하며 줄곧 브라이언의 시선을 확인하던 그 남자는 와인 잔을 쥔 브라이언의 손과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분명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이라 확신한 그 남자는 주문한 오이스터와 소스를 그의 앞에 놓으며 옆 테이블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 남자는 일 년 전 사고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테이블 반대 편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튤립을 보며 브라이언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게를 하다 보면 유난히 잘 어울리는 부부나 커플을 보게 된다.   브라이언과 캐씨가 함께하는 테이블은 언제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빛이 드리웠었다.   천천히 하지만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던 부부의 모습이 그 남자의 기억을 스쳐갔다.   브라이언은 일 년 동안 억누르던 감정을 토해내고 있었다.   브라이언의 말들에 어떤 말들을 섞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그 남자는 그저 브라이언의 빈 잔을 채워주고 있었다.    그 남자는 옆 테이블 의자에서 일어나 브라이언을 마주 보고 앉았다.   얘기 도중에 몇 번씩 브라이언의 감정이 북 바쳐 오르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남겨진 사람은 많이 약해져 있었다.   브라이언이 풍겨왔던 그 모든 자신감과 건강함이 어디에 기인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애피타이저 접시를 치우고 메인 접시를 가지고 왔을 때에는 이미 와인 한 병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 남자는 술을 좀 더 권하려다가 따뜻한 차를 내어왔다.    접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브라이언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아무 말 없이 접시의 내용물을 입으로 가져갔다.   순식간에 접시는 티끌 하나 남김없이 비워졌고 스푼을 내려놓으며 어설프게나마 그 남자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추켜올리며 감사를 표했다.   아내에 대한 얘기와 앞으로의 얘기가 더 남아 있었겠지만 더 이상 브라이언은 말을 잇지 않았다.   그 남자 역시 그런 브라이언을 재촉하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나가 가게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브라이언을 그 남자는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다.   한 손으로 거머 줬던 튤립을 가슴에 보듬고 걷는 브라이언의 뒷모습을 보고 그 남자는 안심하고 테이블을 치울 수 있었다.   밤새 내릴 것 같던 비는 그치고 어느덧 빌딩 사이로 비치는 초승달이 유난히 크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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