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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Aug 05. 2018

개구리의 자식은 개구리

단편소설


                              1
원하지 않는 일은 우연히 일어난다.   그리고 미리 걱정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은 운동회 날이고 난 어제부터 비가 올까 걱정을 했다.   쉴 새 없이 걱정한 보람이 있었는지 하늘은 화창했다.  
 “민영아, 엄마가 오늘 중요한 모임이 있어 조금 늦을지도 몰라.   그래도 민영이가 뛰는 릴레이는 놓치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파이팅!"   
"늦으면 안 돼 엄마!   릴레이는 점심시간 다음에 바로 시작이야!”
작년 운동회 때 릴레이가 기억난다.   우리 백팀은 10미터 이상 앞서 있었고 나는 바통을 이어받았다.   내 임무는 청팀과의 거리를 그대로 유지하며 앵커(마지막 주자)인 상수형에게 바통을 전해주는 것이었다.   백팀의 승리를 확신하며 달리던 나는 상수의 손에 쥐여주어야 할 바통이 마술처럼 미끄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몇 초가 흘렀을까… 넘어졌던 나는 나를 애타게 부르는 선생님과 뒷짐진 상수형의 손을 보며 다시 일어나 달렸다.   나 때문에 아주 근소한 막판 레이스가 되었지만 결국 우리가 이겼고 난 넘어져 깨진 무릎의 통증도 잊은 채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운동회 시작을 알리는 1학년 아이들의 선수 선서와 준비체조가 끝났다.    아침부터 확성기에서 울려 퍼지는 클론의 노래는 제법 기분을 고조시켰다.   올해도 나는 백팀으로 하얀 머리띠를 동여매는 것으로 이미 전사의 기분이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친구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웃음이 나온다.   공 굴리기나 콩주머니 넣기 등은 실제 경기보다 준비 시간이 훨씬 길었다.   빠른 진행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선생님들의 무분별한 호루라기 소리들과 저학년 아이들의 멍한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어느덧 오전 경기는 줄다리기 만을 남겨 두고 있었고 우리 백팀은 10점 차이로 지고 있었다.   나는 줄을 당기는지 줄에 매달리는지 모르는 애매한 긴장감으로 표정만은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줄다리기에서도 패배하여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릴레이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도시락을 챙겨 혹시나 하고 엄마를 찾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내 친구 기호는 아침부터 응원 나온 가족들 사이에서 벌써 도시락을 열고 있었다.   난 슬그머니 기호 가족 옆으로 가서 내 도시락을 펼친다.   평소에 게임부터 시작하여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도 비슷한 우리는 조금 전에 펼쳐진 2인 3각에서도 훌륭한 팀을 이루었다.   이제부터 시작될 릴레이 얘기를 하며 우연히 기호 부모님의 불안한 눈빛을 보았다.   내게 사이다를 권하며 건네 오는 기호 엄마의 손이 약간 떨리고 있다고 느꼈지만 난 일부로 씩씩하게 감사함을 표하고 친구와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확성기에서는 릴레이를 알리는 안내와 함께 만약에 백팀이 이기면 역전 우승이 된다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설명이 뒤따랐다.   작년에 바통을 놓친 오른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달리기도 전에 다리도 아니고 손이 떨리다니…  평소에 100미터 달리기와 같은 단거리 육상엔 자신이 있었던 나는 승자의 여유로움과 함께 테이프를 끊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렇다.   올해는 내가 앵커의 자리에 섰다.   백팀의 마지막 주자.   역전승의 주인공이 될 수도, 비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난 크게 심호흡을 하며 바지에 손을 비볐다.   엄마가 도착했을까 궁금했지만 둘러보지는 않았다.   혹시 엄마 얼굴을 보면 약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수백 번도 더 연습한 바통 받기이고 오늘은 잘 받아서 계속 잡고만 뛰면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연신 손바닥의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드디어 릴레이의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1학년 아이들의 달리기가 시작된다.   불과 5년 전에 나도 저랬을 텐데 난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아이들의 달리는 모습이 마냥 귀엽다.   그나저나 어디서부터 인가 우리 백팀이 점점 뒤처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꽤 많은 차이로 벌어진 채 내가 받을 바통을 쥔 친구가 있는 힘을 다해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드디어 바통은 내 오른손에 들어왔고 나는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앞서가는 청팀을 의식하기보다 100미터 최고 기록을 내 본다는 기분으로 뛰었다.   그러던 중 나는 결승점을  5미터쯤 남겨두고 선두로 나섰고 결국 내 가슴에 결승 테이프가 감기는 느낌을 받았다.
백팀의 역전 우승이 결정되고 친구들의 환호가 이어진다.   내 생일에 닌텐도 게임기를 받았을 때 보다 백배는 더 기쁜 최고의 순간이다.   그런데 이즈음에 내 앞에 나타나야 할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여느 때 같으면 벌써 카메라를 들이대며 나를 안아 빙빙 돌았을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안온 것이다.   결승 테이프를 끊는 내 승리의 포즈를 놓친 것이다.   정리 체조가 끝나고 운동회가 마무리될 무렵 담임 선생님과 몇 명의 낯선 사람들이 내게 다가온다.   

“정민영, 이분들은 경찰서에서 나오셨다”   긴장된 모습의 선생님은 내게 그들을 소개했다.
“엄마가 아직 안 오셨는데요?”   뭔지는 모르지만 겁이 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난 무언가 사고를 친 일은 없었다.    자세한 얘기는 가면서 들려주겠다며 나를 차에 태웠다.   차창 밖으로 선생님들과 어른들의 모습이 보이고 다들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무표정한 얼굴들이 이어진다.
이런저런 얘기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경찰 아저씨의 한마디 말이 나를 릴레이에서 맛보았던 내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부터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져 버렸다.    기나긴  1998년 10월 4일  하루는 내 인생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엄마 아빠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2
1998년 7월 25일 S 시에서 있은 여름축제 행사에 제공된 어묵에 독극물이 섞여 들어간 사건이 발생했다.   어묵 국물을 마신 57명의 주민이 복통과 구토를 유발해 병원에 실려갔고  어린아이를 포함해 5명이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당초에는 식중독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토사물 등을 이용한 경찰의 1차 감식 결과  청산가리 중독에 의한 것으로 판단.   그 이후 청산가리 중독과는 일치하지 않는 증상이 지적되면서 과학경찰연구소에서 재조사에 들어가 독극물질인 ‘비소’가 함유된 것으로 판명됐다.

                                 3
민주 누나와 나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동보육원이라는 곳에 보내졌다.   원래 말이 없는 누나는 줄곧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이제 어쩌지…. 어떡해…”를 반복하고 있다.   
“오늘부터 너네들 하고 함께 지낼 정민영이야.   서로 돕고 친하게 지내라.”
내가 배정받은 방에는 내 또래의 남자아이들 세명이 무표정하게 앉아있었다.   보육원 선생님의 간략한 소개와 함께 난 배정받은 침대에 짐을 내려놓았다.    난 어떻게 해서든 태연한 척 침대에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나의 눈길을 뚫어지게 응시하던 룸메이트 아이들 중 하나가 내게 다가온다.
“뭐야 넌?   어디서 굴러온 놈이야?”   언뜻 보아도 나보다 10센티는 커 보이고 머리는 밀다시피 하고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험상궂은 인상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 하나가 묻는다.
“………”   나 역시 내가 어쩌다 이리로 굴러왔는지 알고 싶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말 안 들리냐며 내 머리를 건드리는 아이에게 난 그저      “나도 몰라… 미안해…”를 연발하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나도 모른다.
보육원의 선생님들은 친절했다.   편안하게 생활하고 무엇이든 물어 보라며 환하게들 웃는다.   “저는 언제 집에 돌아가나요?”   내가 궁금한 건 단지 이것뿐이었다.   엄마 아빠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그저 처음부터 무언가 잘못된 것이야.   운동회 날 아침에 엄마와 나는 심지어 바통 터치 연습까지 함께 했는데…    엄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카메라를 챙기며 필름을 갈아 끼우고 있었는데… 이 모든 건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이제 곧 오해가 풀리고 엄마 아빠가 데리로 올 거라 믿으며 하루를 견뎌본다.     민주 누나는 “이제 우린 다 끝났어…” 하며 날이 지나며 슬퍼 보였던 눈은 증오의 눈으로 바뀌고 있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지만 아이들은 아무도 내게 접근해오지 않았다.   나를 보는 눈빛들이 달라져 있음은 매 순간 느낄 수 있었지만 난 그저 “조금만 참자… 모든 건 오해다… “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견뎌낸다.   그럭저럭 보육원 생활도 두 달 정도 지나갔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올 거라는 기대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4
1998년 10월 4일 경찰은 보험 사기 사건의 용의자로 김영주 와 그녀의 남편 정성주를 입건.   같은 해 12월에 김영주는 독극물 어묵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재 입건된 후, S 시 지방경찰청에 의해 살인과 살인 미수죄로 기소되었다.   김영주의 범행에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으나, 축제 당일의 주민들의 알리바이를 상세하게 추적하고 목격자의 증언 등을 토대로 김영주 이외에는 용의자로 추정될만한 사람이 없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이후 김영주는 계속 묵비권을 행사했으며 변호인 측도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2002년 12월, 범행 동기는 밝혀내지 못하지만 ‘비소’를 투입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피고인 이외에는 없다고 판단, 김영주에게는 사형이 구형된다.
 
                               5
교실에 들어와 앉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살인마의 자식

빨간색 매직으로 선명하게 쓰여 있는 글귀는 몇 번인가 휴지로 닦아내어 보았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서 어느 순간부터 투명인간이었다.   단 한 명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나 역시 단 한 명과도 마주 볼 수 없었다.   몇 달 전에 내 친구 기호에게 “우리 엄마는 범인이 아니야!!!”라고 말했고 난감한 표정의 기호는 슬그머니 내 눈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로 나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다.   어느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선생님들조차 나를 피했다.   학교는 그저 하루에 몇 시간 나를 은둔시키는 공간이었고 보육원 역시 다르지 않았다.   
교과서를 펴서 책상 위 낙서를 감추고 앉아있는데 어딘가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난 그 웃음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눈을 둘 수 있는 곳은 교과서뿐이었고 어느새 종이는 눈물로 번진다.     몇 달 전만 해도 난 아이들의 부러움을 받아왔었다.   최신형 게임보이와 포켓 스테이션은 출시가 되자마자 내 손에 들어왔다.   내 방의 오디오에는 최신 핑클과 S.E.S의 앨범이 들어가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LG 트윈스 경기를 보러 갈 때면 항상 선수들과 손이 닿을 듯 가까운 맨 앞줄에 앉았다.
감옥에 있는 엄마의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평소 엄마는 화려한 의상을 즐겨 입어 난 그 알록달록한 원피스가 이상하고 창피했었다.   응접실에는 언젠가 엄마가 사들인 수족관이 있었고 그 안에는 연어보다 큰 금붕어 한 마리가 어슬렁 거렸었다.   엄마의 취미로 꾸며진 벽지 색깔과  그림 액자는 어린 내가 보아도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지금 엄마는 단색의 죄수복을 입고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방 안에서 경찰들의 감시를 받으며 앉아 있는 것일까?   난 지금껏 엄마의 얼굴에서 근심 걱정을 읽어낸 기억이 없었다.   동네에서 제일 큰 평수를 자랑하는 우리 집에는 항상 동네 아주머니들로 붐볐다.   엄마가 가지고 있던 보석함은 그때마다 열리고 여자들은 보물섬에라도 온 듯 주렁주렁한 목걸이 나 팔찌를 시착했었고,  엄마가 낮술에 기분이 고조될 때면 여자들에게 자기 액세서리를 나눠주기도 했다.   
민주 누나에게 엄마 면회를 가자고 얘기했으나 싫다고 했다.   이제 다시는 엄마 얼굴을 보기 싫다고 했다.   누나는 이제 나하고의 관계도 끊을 생각이라고 했다.   난 이제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다.   엄마를 만나야 한다.   만나서 따져야 한다.    엄마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보다 나를 팽개친 것이 더 무서웠다.   보육원 원장 선생님과 우연히 얘기가 된 어느 날 나는 드디어 면회를 갈 수 있었다.
 
                                6
2005년 6월에 진행된 김영주 피고의 공소 심은 기각 되었다.   묵비권을 행사하던 피고는 이제 자신의 목소리로 무죄를 주장했으나 고등재판소는 그녀의 진술을 무시했다.   어묵이 만들어진 차고에 마지막으로 있었던 사람은 김영주 이외에 없었고, 하얀 종이컵을 들고 어묵 냄비 주변을 배회했다는 목격자의 진술은 그것을 입증했다.     같은 해 3건의 보험금 사기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김영주의 남편 정성주는  형기 만료로 출소했다.
남편 정성주는 김영주와 결혼 전 조그마한 방역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주로 목재 건물에 피해를 주는 흰개미 방역이 전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기혼자였던 정성주는 대학생이던 김영주에게 접근, 외제 승용차와 호화스러운 선물 등으로 관심을 끌어 결국 둘은 결혼하게 된다.    결혼 후 정성주는 사업에 실패, 두 사람은 어려운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업으로 다시 일어나리라 꿈꾸며 하루하루 술 로만 시간을 보내던 남편을 보조하며 김영주는 식당 종업원부터 화장품 외판원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 당시 김영주의 모친은 그 지역에서 보험계약 영업일을 하고 있었고 김영주 역시 어머니의 소개로 보험영업을 시작하였다.      민주와 민영이가 태어난 것도 그 당시의 일이다.   
그 이후 이들 가족은  의문의 행보를 걷게 된다.   1995년 5월 김영주의 모친 이 급성 백혈병에 의한 뇌출혈로 사망, 김영주는 보험금 14억 원을 손에 넣게 된다.   같은 해 10월 그들은 7억 원을 들여 120평짜리 주택을 구입하게 된다.    그 이후로 남편에게는 희귀한 병이 발생,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되고 그때마다 남편 이름으로 가입한 보험금이 상당 액수 들어오게 된다.   그 이후 그들은 최고급 승용차를 굴리고 주변 도시에서 건설하는 최고급 리조트 콘도의 펜트하우스를 구입하는 등 불과 몇 년 전의 신혼생활과는 완전히 판이한 인생이 펼쳐진다.
 
                                7
엄마는 하얀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유리창 속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내 안부를 묻는다.   엄마는 누나와 함께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물었으나 차마 누나가 오기를 거부했다는 말을 전할 수 없었다.   엄마는 교도소 음식이 너무 맛있고 교도관들도 너무 멋있다고 했다.   나 역시 보육원의 침대도 좋고 친구들이나 선생님들도 친절하다고 했다.   엄마는 운동회 때 못 가서 미안하다고 했고 난 릴레이 결승선을 향해 달려오던 기억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면회시간은 끝이 나고 말았다.
애써 울음을 참으려 급하게 뒤돌아서 나가는 나를 향해 엄마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엄마는 사람을 안 죽였다!!!

뒤돌아서 다시 묻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고 그렇게 엄마와의 첫 만남은 끝이 났다.    ‘엄마는 사람을 안 죽였다.  ‘   엄마의 말은 의심할 수 없는 진실로 내 가슴에 파고들었다.   우리 동네에서 발생한 이 무서운 사건과 우리 엄마에게 씌워진 이 무서운 형벌은 내게는 별개의 비극으로 자리 잡았다.   
보육원에 돌아온 나는 곧바로 침대로 향했다.   언젠가부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   그곳에는 유일하게 나를 세상으로부터 차단하는 공간이 존재한다.   그 암흑의 공간은 나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한다.   이불속의 어두움에서 비로소 나는 눈을 뜬다.   어느새 나는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 줄을 서고 있고 멀찌감치 솜사탕을 든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깊은 터널을 정신없이 통과한 열차는 수직의 각도로 나를 떨어뜨린다.   무서워 소리 지르며 안전대를 부여잡는 손에  땀이 맺힌다.   이제 곧 각도는 완만해질 것이고 엄마가 기다리는 지점에 도착하리라.   하지만 열차의 속도는 점점 빨라만 진다.   나도 모르게 엄마를 외치며 꿈에서 깬 나는 온몸이 땀에 젖어있다.   
 
                              8
정성주 김영주 부부의 보험금 사기의 전말이 드러났다.   정성주가 운영하던 흰개미 방역 회사에는 여러 가지 독극물들이 사용되었다.   정성주는 지인으로부터 ‘비소’라는 물질은 독극물이지만 아주 소량을 입에 넣으면 몸 안에 면역 성분이 생겨 강해진다는 얘기를 듣는다.   호기심에 ‘비소’를 입에 살짝 댄 정성주는 심한 구토와 발열과 함께 병원으로 실려간다.   차마 ‘비소’라는 물질을 먹었다는 말을 못 한 정성주에게는 특이 알레르기 질환이라는 명목으로 당시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던 덕분에 상당액의 보험금이 지급되었다.     정성주가 수차례에 걸친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는 동안 여러 종류의 건강보험금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치의 거액이 이 부부 앞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발생한 어묵 독극물 사건에 ‘비소’가 사용된 강력한 물증과 목격자의 증언 등을 토대로 보험 사기죄는 살인죄로 발전해 김영주에게는 사형이 구형된다.   
하지만 김영주의 변호인 측으로부터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되었다.
첫째, 범행에 사용된 비소는 사건 당일 정성주 김영주의 자택 차고 앞에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놓여 있었다.   즉 그곳을 지나는 사람이었다면 누구든 비소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문제의 어묵이 놓여있던 곳에서 하얀 티셔츠를 입은 여자가 혼자서 주변을 맴도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의 증언에 대해서도, 마을축제의 먹거리를 담당했던 주민들의 한 사람으로 어묵을 포함한 여러 음식물이 놓여있는 곳에 있었으나 줄곧 딸아이와 함께였다.   그날 그곳에서 김영주와 교대한 주민대표의 증언에서도 그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목격자가 지적한 하얀 티셔츠에 대해서도 사실 김영주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셋째, 보험 사기 사건으로 이미 기소되어있는 상태이고, 범행에 사용된 비소가 결정적인 단서이나, 범행 동기를 알아낼 수 없고, 사실 사건이 발생한 수개월 전부터 같은 마을에서는 이미 개와 가축들이 죽음을 당하는  의문의 사건들이 발생되고 있었다.
하지만, 변호인들의 반론은 기각되었고 김영주는 원심대로 사형이 구형된다.
 
                                9
보육원 생활도 이제 몇 년이 지났다.   그리고 난 여전히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어느새 그들이 부르는 내 이름은 “포이즌”.   엄마를 둘러싼 사건이 온 세상에 알려진 지금, 아이들이 보는 ‘나’는 대량 살상을 가능케 하는 독극물이었다.   나와는 말만 섞어도 독이 옮는듯한 표정을 한 아이들은 나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인가는 나는 원내 식당에서 나온 국을 마시고 심한 구토로 병원에 실려갔다.   나중에 원인이 밝혀진 것은 ‘실리카겔’ 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도 아이들의 공공연한 집단 따돌림은 계속되었고 난 나를 세상과 차단시키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었다.
형기를 마치고 나온 아빠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옛날에 아빠는 내게 있어 그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항상 술에 취해 있었고 엄마와 늘 싸웠고 가끔씩 상상하기 힘든 돈뭉치를 내게 건네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지금 나를 둘러싼 이 상황들을 하소연할 곳은 아빠뿐이었기에 아빠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가 만난 아빠는 내 얘기를 들어줄 만한 상태의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어느새 누군가의 방화로 인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무시무시한 사건의 중심에 있는 우리 가족은 그렇게 뿌리가 뽑히고 있었다.   출소한 아빠는 곧바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고 얼마 전 보육원을 떠난 누나는 행방을 감추었다.
엄마와의 면회는 일 년에 한 번 정도였다.   엄마는 여전히 웃고 있었고 목소리에도 힘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는 엄마의 모습은 많이 약해 있었다.   지난달 면회 때 나는 엄마의 이가 빠져있는 모습을 보았다.   뭐라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여전히 희망적이다.  
“곧 나가게 될 거다.   조금만 참아.”   
난 뒤돌아 보지 않았다.

                               10       
김영주의 첫 공판에는 5000명이 넘는 방청 희망자가 모였다.   이것은 역대 살인사건 공판 중 가장 많은 관심이 집중된 재판이 되었다.   이 사건에 관련된 방송은 연일 계속되었고 이제 ‘어묵 독극물 사건’과 ‘김영주’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희대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었다.
지역주민에 대한 무차별 살인을 벌린 어떠한 동기도 없다는 변호인단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최고재판소는 ‘동기가 해명되지 않은 것이 피고인이 범인인 것을 인정하는 것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2002년 사형이 판결된 이후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인들에 의해 공소와 상고가 이어졌다.   2010년 4월 최고재판소는 ‘감정 결과 와 상황 증거로 피고가 범인인 것이 증명되었다’는 판결과 함께 김영주에게 사형이 확정되었다.
변호인단의 끈질긴 조사와 감식으로 사건 당시 어묵에서 검출된 비소 물질과 김영주의 자택에서 보관되던 비소와는 성분이 다르다는 증거까지도 확보되었으나 2017년 현재까지 모든 상고는 기각된 채로 사형 집행 날짜만 기다리는 상태가 되었다.

                             11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는 보육원을 나오게 되었다.   지난 몇 년간 보육원과 학교에서의 나는 접촉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었다.   ‘개구리의 자식은 개구리’   누군가 내 노트에 갈겨놓은 낙서처럼 난 언젠가부터 살인마의 자식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어느새 누군가의 방화로 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다.   병원에 누워 있는 아빠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3년 전 보육원을 떠난 누나는 행방을 감추고 말았다.   가방 속에 간직해온 가족사진, 몇 년 전 인가 놀이공원 앞에서 찍은 그 사진 속의 인물들은 이미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는 없다.   엄마나 아빠의 정신 나간 행동이 불러온 일이든 누군가의 모함에 의한 비극이든 이미 우리는 숨을 쉬고는 있으나 헐떡이고 있었고 살아 있으나 이미 매장된 상태였다.
일을 하고 살아야 한 나에게 가족 이력은 치명적이었다.    어떤 회사이든 나의 성실함이나 근면성 따위는 고려해볼 틈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일하게 된 지금의 운송업체에서 나는 내 모든 힘과 열정을 바치고 있다.   내 모든 가족사를 이해하고도 나와의 교제를 허락한 여자 친구도 생겼다.   물론 만약 미래의 설계나 결혼에 대한 얘기는 난 꺼낼 수 없고 그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 년에 한 번꼴로 찾아 간 엄마는 어쩌면 내게 유일한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다.   ‘엄마는 절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엄마가 내게 전하는 목소리와 표정, 그 눈빛이 전하는 무언가가 내가 오늘 살아가는 이유이다.   언젠가 엄마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 사람들 기억 속에 희미해진 사건이지만 엄마와 그 사건은 하나의 기정사실이 된 공식이 되어있다.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통념이 되어있다.   

하지만 오늘도 감옥에 누워있는 엄마는 나를 깨우고 죽음을 앞두고 있을 엄마는 나를 살게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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