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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Mar 22. 2021

멀리 있는 당신을 위해
내 오늘을 글로 씁니다

2021년 3월 21일


1.

글을 쓰려고 앉아 날짜를 세어보니 딱 한 달이 지났더군요. 왜인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만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주기를 정해놓고 글을 쓰지는 않지만 한동안 어떤 형태로든 글을 남기지 않았다 보니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한 것 같아요. 그렇기에 뭐라도 이렇게 써야겠습니다. 마침 당신한테 소식을 전한지도 좀 되었고요.


2.

어느덧 봄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주 전부터 집 앞의 매화꽃이 눈길을 끌었고, 지난주에는 봄기운을 듬뿍 받고 왔습니다. 그런데 어제 하루 종일 흐리더니 오늘은 날이 상당히 추웠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도 봄을 찾아나가게 되었어요. 화사하게 빛나지만 너무나도 짧은 시간 스쳐가는 봄이 벌써 아쉬워서 나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볼 일도 볼 겸 아내와 데이트할 때 종종 가던 대전의 한밭수목원에 들렀습니다. 산수유에 목련에 매화, 수선화 등등 봄꽃들이 온기를 맞아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뜨렸고 나무는 파릇하고 촉촉한 어린잎들을 내밀었습니다. 바람이 차서 너무 오래 걷거나 풀밭에 잠시 누워있기는 어려웠지만, 햇볕은 역시 봄이었던 것이죠. 당신에게 소식을 전하지 못한 한 달 동안 뭐가 어떻게 지나갔나 싶었어도 계절은 흐르고 봄이 왔습니다. 당신도 내가 오기를 기다려주세요. 조만간 봄을 전할게요.


3.

참, 어디 가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답답한 시국에 꼭 어디로 떠나는게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우리 둘이 조용한 곳에서 잠시 바람 정도 쐬는 건 어떨까요. 저는 요새 부쩍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떠나는 것과 당신을 만나는 것 둘 중에 어떤 것을 더 바라는지가 조금 헷갈릴 때도 있지만 당신과 떠나는 것이 아주 큰 기분전환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해요. 늘 좋은 기억이었잖아요. 이번에는 당신이 뭘 좋아할지 깊게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짜릿한 액티비티를 좋아할지,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싶어 할지, 혹은 내가 그렇듯이 산 능선에 올라 바람을 쐬고 싶어 할지. 결혼을 하게 되니 나와 함께 하는 사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가족, 그리고 동료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항상 붙어있는 반려자가 생긴 일은 나의 존중과 배려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해줍니다.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그렇다고 제가 먹고 싶은 끼니들까지 모두 전적으로 양보하지는 못하니까요. 말이 길어지는 것 같은데 우선 함께 떠나시죠. 연락 주세요. 혹은 제가 먼저 연락하겠습니다. 여정에 오르면 봄도 함께 드릴게요.


4.

요새 약간 흔들립니다. 봄바람 탓일까요. 모든 원인을 봄으로 돌릴 만큼 영향력 있는 봄의 시간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작년 이맘때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거든요. 무슨 고민인지는 대충 아실 수도 있어요. 저를 잘 알고 계시니까요. 풍류도 좋아하고 여유를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지만 인생의 거의 모든 순간이 목표지향적이었다는 것을 잘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심지어, 딱 들어맞는 사례는 아니지만 작년에는 결혼이라는 목표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또 그런게 없습니다. 목표와 그에 대한 성취까지 가는 길에 오늘 불안보다 목표가 없다는 불안이 더 큰 것은 모두에게 해당될까요. 아, 물론 직장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이유로 너무 안 좋게 보지는 말아주세요. 직장 내의 임무 하나하나를 목표로 생각하고 몰입하는 것은 잘 되지도 않을뿐더러 개인의 목표와는 별개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무튼 올해는 지나가는 봄바람으로 치부하지만은 않아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봄바람에 휘날리던 벚꽃이라도 손에 스칠지 모르니까요.


5.

당신은 어떤 봄을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내드린 매화 사진 속에서 향기를 느끼고 바깥이라도 잠시 걸으셨을까요. 아니면 아직 추위를 못 이기고 방에 계신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봄인 줄 알면서도 봄이 느껴지지는 않으신가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곧 당신에게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올 겁니다.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말씀해주세요. 봄은 요원하더라도, 저는 늘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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