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계는 역이다. 많은 역의 이름은 그 동네의 이름이나 가장 잘 알려진 장소의 이름을 따온다. 역삼역, 창동역, 고속터미널역처럼 참 많다. 석계역은 이들과 다르다. 석계는 태생적으로 역의 이름이다. 석관과 월계라는 동네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다가 새로 들어서는 역에 이름을 붙였다. 석관동은 성북구, 월계동은 노원구에 위치한다. 석계라는 이름에 걸맞게 역은 두 행정구역의 경계에 발을 하나씩 걸치고 있다. 일종의 경계 역할도 하고 있는 셈이다.
석계는 역이자 경계이다. 어떤 경계를 오갈 때면 괜히 신기한 느낌을 받는다. 사람, 건물, 공기마저 낯설고 분위기가 어색해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한 공간에서 다른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경험은 기대되면서도 괜히 긴장하게 되어서 떨린다. 석계역 위로 높게 솟은 북부간선로 고가도로 교각과 그 아래 역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본 동네를 괜히 대수롭게 여긴 적도 있었다. 게다가 수많은 낯선 이들이 수많은 낯선 지명이 적힌 교통편을 타고 사방을 오가는 곳이다. 석계역은 신경이 곤두서는 곳이다.
노원구로, 성북구로, 심지어는 중랑구나 강북구, 동대문구로 뻗은 버스 노선들이 쉬지 않고 고가도로 아래로 들락날락 거리며 낯선 이들을 데려오고 다시 데려다 놓는다. 지상으로는 1호선이, 지하로는 6호선이 낯선 이들을 데려오고 다시 데려다 놓는다. 석계역 인근을 지나는 모두는 서로가 낯설며 스스로 낯선 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흘러와 어딘론가 가다 보니 석계역을 스치고 있다. 그래서 석계역을 지날 때면 종종 나도 이곳의 낯선 한 명임을 자각하고 인정한다. 차라리 한 명의 낯선 이가 되어버리고 나면, 그 나름의 정취가 재미있다.
회색빛 굴다리와 고가도로, 낯선 사람들을 낯선 공간으로 실어 나르는 전철과 버스를 보고 있으면 회색빛 삶들이 보인다. 은행사거리 학원가로 향하는 학생들, 출근을 위해 전철로 갈아타는 직장인들, 짐을 잔뜩 들고 시장을 가는 할머니들은 저마다 석계역 위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향한다.
해가 저물 때면 다시 석계역 위로 삶들이 모여든다. 해가 저물어 갈 때 즈음이면 석계역을 둘러싼 포차들에 불이 들어온다.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역전 포차들의 밝은 빛 아래, 길을 지나던 학생도 직장인도 동네 어르신도 잠시 회색빛을 씻어낸다. 천막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플라스틱 탁자와 떡튀순 한 그릇, 곱창 한 접시, 소주 한 잔에 넋 놓고 지나가던 삶들의 발걸음이 멈춰 선다. 굴다리와 포차 뒤로 무수히 펼쳐진 술집과 카페에도 무수한 삶들이 저마다의 회색빛을 씻는다.
운신의 폭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20대 초중반. 괜히 낭만을 좇던 나이였지만 알맹이는 없었고, 나는 수시로 아래로 침잠했다. 그 끝에 종종 이끌린 곳이 늘 석계였다. 술 취한 사람들의 높은 언성으로 시끄러운 포차와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음식 냄새 사이를 걷다 어느 한 곳엔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때 그 수준에 맞는 철학에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취하고 또 취했다. 내 삶도 치열한 회색빛인 듯이, 헤아릴 수 없는 20대의 문장들을 쏟아내며 맑고 영롱한 빛을 찾아 열심히 씻어내려 치열했다.
이제 석계는 그저 역이다. 흔들리던 20대는 지났고, 이젠 눈앞에 없으니 회색빛 공간과 삶의 모습들은 멀게 느껴진다. 우연하게라도 지날 일이 없는 곳이 된 석계는 이제 내겐 그저 역이다. 낯선 이들이 어디선가 흘러와 어디론가 가는 곳. 나는 석계로 흘러가 지금 선 이곳으로 흘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