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혈육에 대하여
방금 꿈속에서 엄마에게 들었던 말입니다. 저희 엄마가 애비라고 지칭하는 인간은 단 한 사람뿐입니다. 바로 제 생물학적인 친부이지요. 원래 나이로 32살인 저는 오늘 꿈을 꾸고 나서야 제 진짜 가족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이제 더 이상 혈육에 묶이는 일은 없습니다. 오늘은 가족과 혈육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그동안 저는 가족의 개념에 대해서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계부와 친부 사이, 의붓 오빠와 친오빠 사이를 많이 갈등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걸 이제 깨달았네요. 아무리 제가 성본을 바꿔도, 제 안의 DNA를 갈아엎으려고 노력을 해도 피는 물보다 진해서 좌절했습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았지요. 저는 이걸 해내야만 했거든요.
오늘 제 꿈에서 '저희 엄마와 친부가 이혼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보여주었습니다. 진작에 엄마와 친부는 별거를 하면서 살고 있었고, 친부는 당연하게 첩의 첩까지 두는 이상한 가족 형태를 만들고 있더군요. 덕분에 제 친오빠와 저는 배다른 형제가 갓난아기까지 2~3명이 더 있었습니다. 정말 끔찍했습니다.
공장을 이어받기 위해 어떻게든 버티고 있던 제 친오빠는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가정이 무너질까 봐 기러기 아빠를 자처하는 모습에 충격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열받아, 친부가 살고 있는 집에 찾아가 저주를 퍼부으면서, 내 어릴 적 사진을 불태웠다면 진짜 죽여버릴 거라고 협박을 하고 있더군요. 그리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언젠가 그냥 기분 나쁜 날이 있을 거야. 그날이 내가 그쪽을 살인청부하는 날일 거야. 그렇게 되면 며칠 내로 죽겠지. 꼭 그때까지 열심히 씨를 뿌리고, 유병장수하길 바라. 내가 꼭 죽여줄게." 이 말을 내뱉고는 저는 방금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보다 더 끔찍한 악몽이 있을까요. 아마도 제 안의 뉴런들이 이제 그만 혈육들을 놓아주라는 의미에서 가상이자,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차라리 가위눌리는 게 나을 정도로 정말 끔찍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저주를 퍼붓는 제 자신을 보면서 저의 썩은 영혼을 목도했습니다. 지금 제 현실이 잘 된 일이라고 안심할 만큼 정말 끔찍했습니다.
막장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장면들을 꿈속에서 직접 경험하니 더없이 괴로웠습니다. 친족을 죽이겠다는 고통은 제가 여태껏 살아왔던 고통 중에 가장 깊은 고통이었습니다. 친족을 죽이고 감옥에 간 범죄자들이 이런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이런 고통조차 잊고 살아가는 걸까요. 어느 쪽이 됐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야 제 가족을 선택했습니다. 제 새아버지가 그렇고요. 제 의붓 오빠가 그렇습니다. 제 가족은 이들입니다. 남들이 어떻게 욕하든 상관없습니다. 그들만큼 가족의 정을 알려줬던 사람들은 없습니다. 세상은 잔인하게도 부모를 선택할 권리를 주지 않지요. 그런데 제가 믿는 천주 성부는 제게 그런 선택권을 주신 것 같습니다. 제 현실은 가장 나쁜 경우의 수라고 인식했는데, 그 틀이 깨졌습니다.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가족을 선택하는 권리야말로 가장 큰 선물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제 제 혈육과 가족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으려 합니다. 혈육의 재산을 뺏어오는 건 정말 당연한 일입니다. 그건 제 엄마와 외가의 피와 땀이니까요. 누구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건 제가 해야 할 숙명입니다. 누구도 건들 수 없어요. 혈육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저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요. 맞는 말입니다. 여태껏 제가 그 말 때문에 고통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이 말대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목격하고 나니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피를 갈아엎어야 하는 때도 있다는 걸요. 저는 과감히 말할 수 있어요. 전 제 유전자를 바꿨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외탁이었고요. 이제 깊숙한 제 내면에서마저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물이 피보다 진하다."라고요.
이제 저는 안정감을 찾았습니다. 며칠 내로 제 아버지의 본거지인 경기도로 이사 올 예정입니다. 5년 넘게 살았던 제 고향을 다시 떠나게 돼서 걱정이 많았지만, 정말 떠나야 합니다. 전 그 고향에서 많은 절망감을 느꼈으니까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사사로운 고민들은 언젠가 해결될 겁니다. 잘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세상은 이제, 아니 제가 믿고 있는 신은 제 편을 들어줄 것입니다.
설령 제가 믿는 신이 제 편을 들어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는 이제 스스로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제가 믿는 신이 저를 지켜만 봐도 괜찮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저는 제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왔으니까요. 앞으로도 개척해 나갈 겁니다. 저는 강하니까요. 그 먼 옛날 조상 중에, 장군이 계십니다. 저는 그 용맹함을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어떤 외압과 권력 싸움 속에서도 부러지지 않는 유연한 나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두렵지도 않고, 제 가족을 선택해야 하는 고통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 혈육에게 무의식에 깔려있던 죄책감마저도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제 성벽 안에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추방자입니다. 저는 더 이상 가족 때문에 고통받을 일이 없습니다. 저는 드디어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도움을 받아 트라우마를 벗어나게 됐습니다. 제 가정사는 저의 무한한 가능성을 꺾을 수 없습니다.
제 가정사는 한낱 과거일 뿐,
제게 더 이상 트라우마가 아닙니다.
저는 혈육을 버린 게 아니라, 가족을 선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