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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Apr 21. 2024

당신은 친구가 있습니까?

(24년 지기 소꿉친구를 위한) 우정에 대하여


"내 소울 메이트이자, 자매는 너야.

우리 결혼을 하든, 안 하든 한적한 빌라 하나 사서 같은 동의 옆집에 살자.

혼자 살면 독거노인은 되지 말아야지.

그리고 둘 중에 누가 애를 낳으면 애도 봐줘야 되잖아."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대신, 애정 표현을 최대치로   있다면 위와 같은 표현이 아닐까요.  소꿉친구이자, 자매 같은 24 지기 친구와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저런 레퍼토리로 서로에게 말해줍니다. 물론 취중진담이지만요.  말만큼 든든한 말이 없습니다.


이 험난한 세상에 또 다른 내 편이 있다는 건, 제 내면의 흙에 영양제를 주는 것과 똑같습니다. 24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저는 이 친구에게 해준 것이 없습니다. 늘 이 친구에게 받기만 했지요. 오늘은 저의 불안정한 감정을 시간이 날 때마다 받아주던 이 친구를 위해, 미안함을 담아 우정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남는 건 가족뿐이라고요. 물론 맞습니다. 가족만큼 강력한 집단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생이 아무리 고통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그 고통을 혼자서 짊어질 수는 없습니다. 물론 혈육으로 결속된 가족들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지요.


하지만 친구는 다릅니다. 친구는 DNA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생판 남이기 때문이지요. 진실된 친구는 절망과 고통, 그리고 기쁨과 환희의 순간을 함께 합니다. 저는 이걸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이 친구와의 '우정'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친구의 사랑은 숭고합니다. 저는 오늘 가족의 위대함이 아니라, 제 친구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태껏 많은 친구들을 새로 사귀고, 이별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솔직한 태도로 의지할 친구 딱 한 명만 있으면, 그 친구를 바라보며 인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요. 저는 이미 그런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누구보다 K-장녀입니다. 저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제게 언니 같은 존재이지요. 오죽하면 제 친구는 제가 길거리에서 싸움이 붙을 때마다 늘 앞에서 말려주던 친구이니까요. 가족보다 더 진한 사이입니다.


제 친구는 사회 초년생 시절, 일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장녀라는 책임감 때문인지 정말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때 저는 미취업 상태인 백수였지요. 그때 직장생활을 같이 하고 있었더라면, 그 친구에게 많은 힘을 줬을 거라고 이따금씩 후회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라면서, 친구의 SOS 요청을 알아차리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에 남습니다.




정말 절망스러운 순간에 저는 제 친구를 생각합니다. 반대로 기쁜 순간에도 제 친구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요. 부모님이 들으시면 섭섭해하시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24년이란 세월을 같이 견딘 전우이자, 가족이기 때문이지요. 제게 이런 친구가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친구는 저를 정말 많이 생각합니다. 본인이 화가 나는 순간에도 저를 생각해서 말을 하지요.


저는 반대로 화가 나면, 이 친구에게 말 그대로 폭주기관차처럼 화를 냅니다. 자주 싸우지는 않지만, 연례행사처럼 1년에 한 번씩은 싸우는 것 같은데요. 그때마다 저는 이 친구에게 늘 미안합니다. 말로만 미안하다면서 제가 이 친구에게 선을 넘은 언행을 많이 했거든요. 이제는 이 친구에게 더이상 빚을 지면 안될 것 같아 그만두려고 합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도 있다지만 이 친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제 소중한 보물입니다. 심지어 제 가족들마저도 친구는 아무 쓸데없다고 하지만, 제 친구는 예외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만큼 저는 이 친구에 대한 신뢰감이 무척 깊고 넓습니다. 그 친구도 마찬가지겠지요. 다만, 제 친구의 마음이 저와 달라도 상관없습니다. 이제 돌려주면 되니까요.


저희는 꽤나 절절한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전학을 갔었는데요. 이 친구는 저와 갑작스레 연락이 끊겨서 무척 당황하고 허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 친구는 그때 이후로 절대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저한테 연락이 올까 봐서요.




그렇게 기다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저를 우연히 병원에서 마주쳤습니다. 제 친구는 정말 놀란 토끼눈으로, 병원이 떠나가라 제 이름을 외쳤던 그 순간이 기억납니다. 꼭 연락하라며, 기다리고 있겠다고 신신당부한 친구의 말에, 저는 감히 그러겠다고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전화번호를 바꾸고 연락을 끊어버려 친구에게 고통을 준 게 너무 미안했으니까요.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이 친구의 전화번호는 늘 기억했지만, 그때의 저는 친구에게 연락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이 친구와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친구의 집 근처에 아지트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요. 그곳엔 난방기도 있고, TV도 있고, 무엇보다 두꺼운 이불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 저희는 밤새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기도 하고, 깨어나서 떡볶이와 치즈 케이크를 먹으며, 또 수다 삼매경에 빠졌지요. 이 친구와의 시간은 늘 소중하지만, 잠깐의 그 시간들을 더 소중히 느낍니다.




제가 절망한 순간들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 있다면 단언컨대 제 소꿉친구입니다. 때로는 감정적인 위로를, 때로는 현실적인 조언을, 때로는 따끔하게 정신 차리라고 말해줬던 친구입니다. 술을 마시면 인사불성이 되는 제가 유일하게 말을 따르는 사람은 제 친구뿐입니다. 부모님도 아니고 친구라니 희한하죠?


그만큼 제 친구는 제 일부분이자, 가족입니다. 친구의 부모님께서도 어릴 때부터 저를 딸처럼 대해주시지요. 아직도 명절 때마다 친구의 부모님을 챙겨드립니다. 친구에게 부모님 선물을 손에 쥐어주며, "네가 다 x먹지 말고, 꼭 부모님 드려. 네 것 아니다."라고 신신당부하면서요. 제가 유일하게 명절 때마다 항상 챙기는 가족입니다. 그만큼 제 친구와 친구의 가족 분들도 모두 사랑이 넘치는 분들입니다.




감히 우정을 말한다면 저는 제 소꿉친구와 같은 관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끔은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는 마음 반과 가까이 살면 더 챙겨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반인 것 같습니다. 형제애보다 깊은 감정이라 말하고 싶네요. '과연 내 배우자가 이 친구만큼 희생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해, 저희 둘은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딱 너 같은 남자를 만나야 되는데 말이야. 그런 남자가 없다. 우린 이래서 가까이 살아야 해."라고요. 실제로 5년 뒤에 제가 독립할 때쯤에, 이 친구가 사는 지역으로 이사 가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친구를 통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제 친구도 저에게 그런 에너지를 얻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저의 욕심이겠지요. 저희는 어쩌면 남녀가 의지하는 것보다 더욱 끈끈하게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친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 평안이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에 친구 한 명쯤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다들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면, 맨 정신으로 고맙다고 연락 한 번 해보면 어떨까요?

연락받은 친구들은 오글거려하면서도 분명히 감동받을 겁니다.

오늘 유난히 제 친구가 많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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