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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Jul 31. 2024

당신은 공감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까?

공감에 관하여


"T들은 공감을 할 줄 몰라."



흔히 MBTI에 빗대서 말하는 편견이죠. 다소 이성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T들은 '로봇 같다.', '공감을 할 줄 모른다.'라는 질타를 받습니다. MBTI가 신경과학계나 심리학계에서 그렇게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걸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T들에 대한 편견을 부수고자, 여러 가지 공감에 대한 뜻과 종류를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공감을 폄하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회적 현상에 비추어 봤을 때의 공감이란, '내 감정을 왜 들어주지 않아? 내 감정이 우선시돼야 해.'라는 쪽에 가깝습니다. 공감이 아니라 이기주의이지요. 우리는 미디어나 폭력이 난무한 뉴스를 보며 이렇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 바쁜 현실에서 공감이 사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공감은 우리 인간이라는 종족을 살아남게   원동력이자, 근본이라고   있죠. 공감을 제외한다면 인간은 무용지물입니다. 인간이 하는 공감이란 다른 동물에 비해 조금  고차원적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공감이란 무엇일까요? MBTI 빗대어 F(Feeling)들의 공감법은 무엇이고, T(Thinking)들의 공감법은 무엇일까요?




공감은 사전적인 의미로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다소 편협한 정의인데요. 사실 공감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근무 중인 자밀 자키라는 심리학 교수가 쓴 《공감은 지능이다》라는 책에서 납득될 만한 사례들과 동시에 공감의 종류를 설명해 줍니다.


이 책에서는 공감에도 타인과 분리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아래의 내용입니다.

심리학자들도 이와 유사하게 '공감으로 인한 괴로움'과 '공감으로 인한 염려'를 구분한다. 괴로움은 정서적 공감에서 생기는 한 가지 결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떠안음으로써 그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반면 염려는 누군가의 감정을 함께 느끼고 그들의 안녕이 향상되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깊은 괴로움을 경험하는 사람이 반드시 깊이 염려하는 것은 아니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쉽게 괴로움에 빠지는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회피한다. 예컨대 자신을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에 빠뜨릴 자원봉사 기회를 거부하는 것이다. 괴로워하기보다 염려하는 편인 사람은 그러지 않는다.

자밀 자키, 《공감은 지능이다》 중 p.243 발췌




흔히 F(Feeling)들은 당사자의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타인이 같은 감정을 느끼길 원하지요. 위에 내용을 토대로 이것을 '공감으로 인한 괴로움'이라고 합니다. 이런 태도가 위 내용과 같이 괴로움을 유발할 수 있는데요. 특히 이런 상태를 과도하게 느끼면 '공감 피로'를 느낄 수 있다네요. 이렇게 되면 막상 정말 공감해야 할 상황에서 회피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과연 감정적인 공감이 답일까요?


흔히 T(Thinking)들은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지요. 본인이 관심이 있거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걸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고통받는 원인을 없애주거나, 멀리하게 해 줌으로써 고통을 덜 받게 해주는 방식인 거지요. 위에 내용을 토대로 이것을 '공감으로 인한 염려'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상황이 나아지길 걱정하는 것이죠.




어쩌면 2030 세대들의 공감법은 매우 1차원적이고, 원시적인 공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감정 쓰레기통', '감정 해우소'라는 말이 생겨났을까요? 자신의 감정을 좀 더 섬세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사회심리 현상들은 어쩌면 사회 구조가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약점이 되기에 페르소나가 필요하지요.


저는 페르소나라는 말이 참 무섭게 느껴집니다. 우리의 자아는 여러 개일 수도 있지만, 결국 한 사람인데 말이죠. 다른 사람을 연기한다는 것은 공감을 배제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친절함이 배척되는 시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을까요?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나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듣는 사람의 감정, 나의 감정을 분리시켜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공감하는 법이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고요. 공감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마치 아이가 엄마에게 떼쓰는 것과 같습니다. 성인이라면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저는 MBTI를 빗대서 공감을 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치고 싶습니다. 공감하는 법을 다시 배우십시오. 이 책의 이름처럼 공감도 지능이라고 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공감을 잘하고 친절을 베푸는 데에 익숙한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하네요.




우리는 모두 가면 뒤에서 나와, 자신의 감정을 좀 더 세밀하고 객관적으로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자기 연민에 빠져 감정을 그때그때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 정리한 후에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요. 물론 다시 그 감정을 들춰냄으로써 고통스러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들춰내지 않으면 그 안에서 곪아버리지요.



그 무엇도 공감하는 방법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다름을 이야기하고 서로 배워야 합니다.

공감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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