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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Aug 30. 2024

당신은 사실 후진 사람입니다.

자만심에 대하여


"쟤가 하는 행동과 말이 자꾸 거슬리네.

내가 꼰대인가?"



흔히 신경전이라고 하죠. 살면서 한 번쯤은 어떤 사람을 보고 이유 없이 싫어해 본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그 사람을 더 싫어하도록 나 자신을 부추긴 경험도 있으실 텐데요. 이 모든 이유들을 그 사람과 환경에서 찾습니다. 사실 그 사람의 모습이 내 모습 중에서 싫어한 모습일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오늘은 자만심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요새 제 신경을 묘하게 거슬리게 하는 26살짜리 여성 분이 계시는데요. 여러 사람들과 대화할 때마다 주제를 뜬금없이 정의한다던가, 어떤 사상과 관념을 함부로 퍼트리더군요. 예, 제가 봤을 때 이 친구는 커뮤니티에 찌들어 사는 친구 같습니다.


이 어리고 어리석은 친구를 보면서, 제 자신에게 '너는 그 나이 먹어서도 커뮤니티에 손을 떼고 아날로그로 돌아가서 다행이야.'라는 위안을 삼습니다. 이런 상황들로 봤을 때, 저는 그리 성숙한 사람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빗대어 저에게 위안을 삼으니까요.




제가   친구는 무언가 강력한 결핍에 휩싸여 있고, 분노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피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지요. 그런데  주장이 어떤 사람 관점에서는 옳지 않은 주장입니다. 입에 담을  없는 음담패설이라던가, 혹은 잘못된 여성우월주의에 젖은 의견을 말하기도 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이 친구는 대학에 가지 않고, 한 직종에 오래 근무한 경험도 없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이제라도 정신 차려 자신의 전문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친구를 둘러싼 환경과 인물들이 단단히 잘못된 것 같습니다. (물론 제 판단이지만요.)




오해가 있을까 봐 덧붙입니다. 여기서 그 친구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여성우월주의와 페미니즘은 명백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요새 어린 친구들이 어렸을 때부터 온갖 커뮤니티에 올라온 마구잡이식의 의견을 보고 페미니즘이라고 하더군요.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동시에 평등주의인 사회운동입니다. 트위터나 온갖 커뮤니티에 올라온 여성과 관련된 의견들을 보면, 급진적인 페미니즘을 넘어 매우 극단적인 여성우월주의에 심취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네요. 저는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 친구를 관찰했을 때, 제 심중에 상당히 거슬렸습니다. 저는 엄청난 젊은 꼰대이거든요. 이 친구에게 기분이 거슬리도록 한 마디 할까 싶다가도, 제 나이를 생각해서 멈췄습니다. 그 친구의 성향 상으로도 수용하지 않고, 저에게 기어오를 것 같았거든요. 제 최근 글 중에 인간관계의 권력을 다룬 글이 있습니다. 더 솔직하고 분명하게 말하자면, 제 경험 상 이런 친구는 저한테 피라미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 친구가 계속해서 이런 언행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골몰히 생각해 봤습니다. 무언가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어떤 사상을 빌려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혹은 내 주장이 맞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지요. 저는 이 친구의 언행을 보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죠. 제가 이 친구의 언행이 거슬렸던 지점은 제가 20대 때 죽도록 분노해 오고, 싫어했던 지점이거든요.




뭉뚱그려진 생각을 구체화해 보니, 저는 그 친구에게서 저를 봤던 겁니다. 분노했던 저를, 철 없이 부모님에게 이게 맞다고 우기는 철없던 제 20대 때의 모습을 봤던 거죠.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 친구의 성향과 언행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 친구에게 한 마디 해줄까 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뭐라고 그 친구에게 잔소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마음으로 저를 봐왔을 많은 어른들이 생각납니다. 물론 그 어른들도 잘못하지 않은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지만, 정신적인 성숙도라고 하지요. 20대 때의 저는 어린애 수준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새삼스레 이제야 부모님과 대화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요새 저희 부모님은 저에게 대화가 돼서, 마음을 알아줘서 좋다고 하십니다. 아이러니하죠?




저는 참 후진 사람입니다. 덜 후지도록 노력을 해왔다고 하지만, 제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는 이유로 감정을 소모하고 있었다는 자체가 후지다는 걸 증명합니다.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해야 덜 후져질까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이 후지다는 걸 모르거나, 혹은 너무 후지다고 생각해서 땅굴을 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극과 극이라, 제 스스로도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운 마당에, 사람들 틈에서 균형을 맞추리란 더 쉽지 않네요. 세상은 참 어렵습니다.


한 때는 멍청한 사람들이 신념을 가지면 자신의 환경을 후손에게 대물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오만하죠? 저는 자만심에 찌들어 있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부끄러워서 귀가 빨개지네요. 제 경험들이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께 어떤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 심기를 건드리는 어린 친구는 어쩔 거냐고요? 그냥 내버려 두려고 합니다. 꼭 제가 아니어도 되니 스스로 깨닫는 기회가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후졌습니다.

우리는 덜 후지고, 폼을 조금이라도 챙기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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