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더베이킹랩 이성규
Aug 24. 2020
빵집에 오신 손님 중 유독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다. 빵집의 첫 번째 회원이 되어주신 슈아님, 이사 갔지만 주말이면 잊지 않고 찾아오시던 유진님, 점심 때면 프레첼을 후식으로 맛나게 드시던 직장인 두 분, 맛있는 빵 좀 구워보라며 매번 충고해 주시던 택배회사 사장님 부부, 아침 출근길 매일같이 뤼스틱 한 덩이를 사 가시던 근처 오피스에 근무하시는 사장님, 건강한 빵을 좋아하신다며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매번 달달하고 폭신한 빵을 사 가시던 정비소 사장님...
많은 손님들 중 볼 때마다 맘이 훈훈해지는 커플이 있었다. 아버지와 딸이다. 딸은 항상 나이 지긋하신 아버지의 팔짱을 낀 채로 빵집에 들어왔다. 빵집에 들어서면 아버지의 눈은 항상 부드럽고 달달한 빵에 고정되어 있었고 딸의 눈은 네모난 호밀빵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손이 달달한 빵으로 향할라치면 딸은 아버지는 그런 빵 드시면 안 되라고 애 나무라듯이 하며 호밀빵을 집어 내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눈은 얼른 계산하고 빵을 싸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부지런히 손을 놀려 빵을 일정한 두께로 잘라 봉투에 가지런히 담고 서둘러 계산을 했다. 빵 봉투를 건네받은 딸에게 끌려 빵집 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눈길은 여전히 달달한 빵에 가 있었다.
가끔은 아버지 혼자 빵집을 찾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엔 달달한 빵이 수북하게 쌓인 쟁반을 계산대 위에 올리셨다. 빵 봉지를 가슴에 안고 나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만으로도 행복해하시는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어느 날, 우연히 아버지의 왼쪽 손을 보게 되었다. 네 개의 손가락이 있는 손. 당뇨 합병증으로 손가락 하나를 잃으셨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딸은 당뇨병이 있는 아버지를 위해 호밀빵을 사 갔던 것이다. 딸의 그런 의도를 모르지 않을 아버지이지만 때때로 입에서 당기는 달달한 맛을 포기할 순 없으셨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