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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un 21. 2019

소니는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했던 거다

스튜디오 모니터링 이어폰 IER-M9, IER-M7 리뷰

음질 장인 소니의 2018년 후반기 신제품 라인업은 오디오 마니아들의 호평을 받기 충분했는데, 그중에서 관심도는 조금 낮긴 해도 퀄리티가 상당한 이어폰이 있었다. 바로 모니터링 이어폰인 IER-M9과 IER-M7이다. 소니가 작정하고 좋은 소리를 위한 제품을 만들면 역시 다르다는 걸 알게 한 제품들. 무선 이어폰이 범람하는 시대에도 음질 하나로 눈부시게 빛나는 그런 이어폰이다.

 

모니터링 이어폰은 프로를 위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와 같은 환경에서 온전한 사운드를 들어야 할 때, 그리고 창작자의 의도대로 가장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들을 때 필요한 이어폰이기 때문이다. 이어폰 제조사들이 만든 모니터링 이어폰들의 특징은 높은 차음성, 안정적인 착용감, 그리고 평범한 듯 무던한 느낌의 음색이다. 그래야만 격정적인 무대에서도 여러 소리들을 제대로 모니터할 수 있고, 왜곡되지 않은 온전한 음질을 들을 수 있으니까. 그러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기술력이 필요한 건 물론, 그에 따라 가격도 올라가는 것도 당연한 이치. 소니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이 모니터링 이어폰의 가격은 IER-M9이 1백49만9천원, IER-M7이 79만9천원이다. 와우……

 

소니의 IER-M9과 IER-M7의 차이는 우선 드라이버의 개수다. 상위 제품인 IER-M9에는 슈퍼 트위터를 포함한 5개의 BA(밸런스드 아마추어)가 탑재됐고 IER-M7에는 BA 4개가 들어있다. 두 번째로는 하우징의 재질. 디자인은 유사하지만 재질이 완전히 다르다. IER-M9에는 마그네슘과 카본이 혼합되어 있고, IER-M7은 알루미늄이 조합된 수지 하우징이다. IER-M7에서 심플한 멋이 느껴지긴 하는데, 나에겐 카본이 사용된 IER-M9이 디자인적으로 더 멋지게 다가왔다. 무광 처리 덕분인지 훨씬 고급스럽기도 하다. 손으로 만질 때 살짝 까끌까끌한 촉감도 그렇고. 

 

우선 IER-M9을 살펴보자. 패키지와 구성이 감동적이다. 마치 예물을 넣어 놓는 보관함처럼 만들어진 케이스를 여는 순간 탄성이 나온다. 다양한 사이즈의 이어 팁, 그리고 케이블도 3.5mm와 4.4mm의 두 가지 버전으로 들어있다. 풍성한 구성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비싼 만큼 제대로 신경 쓴 것 같다. 

 

자석의 힘이 살짝 느껴지는 하드 케이스와 케이블 홀더 덕분에 이어폰 정리도 깔끔하게 할 수 있다. 한 마리의 나비처럼 사뿐히 정리되는 이 아름다운 광경. 내가 정말 음악적으로 프로가 된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트리플 콤포트 이어버드다. 내/외부가 서로 다른 재질의 실리콘이 혼합된 형태로, 매우 독특한 팁이다. 몰캉하면서도 폭신한 촉감이 재미있다. 두께와 모양은 실리콘 팁과 비슷하면서 폼팁 특유의 차음성과 착용감을 전해준다. 저음역을 살짝 보강하는 동시에, 폼팁 답지 않게 중고음역을 절대 방해하지 않는 점도 인상적이다. 아마도 폼팁 페티쉬가 있는 이들에게 최상의 청취 경험을 느끼게 하는 이어 팁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한편 실리콘 팁은 확실히 저음역보다 중고음역을 더 강조해주는데, 나한테는 약간 과하게 쏘는 듯했다. 

 

착용감도 우수하다. 하우징 자체도 가벼운 편이고 오래 들어도 귀를 심하게 압박하는 느낌은 없었다. 차음성도 인이어 이어폰 중에서 손꼽을 만큼 높은 편이었다. 케이블은 실크와 실리콘 재질로 마감되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휘어지며 동시에 질기고 탄탄하다. 외유내강 스타일. 마찬가지로 유연하게 움직이지만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는 이어 행거도 귀에 안정적으로 걸쳐진다. 

 

모니터링을 위한 이어폰이라, 음악을 들어보기 전까지는 특색 없이 다소 밋밋한 느낌의 음색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IER-M9의 음색에는 소니 하면 생각나는 다이내믹한 강조점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소니 특유의 막강한 저음과 시큼새큼한 고음이 없다.  반면에 잔잔한 호수처럼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저음과 입체적으로 상쾌하게 형성되는 고음역이 조화롭다. 자기만의 깊은 영역에서 조용히 뿜어져 나오는 극저음의 부스트가 감탄스럽다. 분리도와 해상력도 매우 높아 공간감이 넓게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모든 음역을 충실히 고르게 표현하는 모범생 같으면서도,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인싸의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진다. 

 

나의 음감용 기기인 V20에 저항 잭을 물려 Hi-Fi 전문가 모드를 활성화한 뒤 들어본 노래들은 전보다 훨씬 환상적이었다. 황홀하다. 바로 이 맛에 음감하는 거지! 사운드에 양념을 조금 쳐서 듣는 내 성향상 처음엔 살짝 삼삼하게 들렸지만 이내 확 트이는 표현력에 젖어 들었다. 아무리 시끄러운 노래(사운드 정보가 많은)라도 소리가 겹쳐 뭉개지거나 공간이 생략되지 않는다. 악기와 목소리가 전부 고른 음압으로 밸런스가 맞춰져 귀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고급스럽게 음악을 들려준다. 한 마디로 레퍼런스 사운드를 듣기 위한 모니터링용으로는 물론이고 고음질 음악 감상용으로도 손색이 없는, 아니 차고 넘치는 이어폰이다.

 

그럼 이제 IER-M7도 살짝 볼까. 케이블과 각종 이어 팁들, 케이스… 구성은 IER-M9의 그것과 같다. 캐링 케이스의 재질이 약간 다르지만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IER-M9과 IER-M7,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두 가지 이어폰의 음색 차이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 두 이어폰의 가격이 2배 정도 차이가 나긴 하지만, 가격에 따라 음질 수준이 다른 라인업이라기보단 재질이나 드라이버의 구성, 설계의 차이에서 오는 거겠지.

주파수 응답 그래프 수치상으로 보자면 6~7kHz 부근의 고음역에서 IER-M7이 IER-M9과 비교해 5dB 정도 살짝 낮은데, 그 때문인지 아주 집중해서 들어보면 미세한 차이로 IER-M9의 소리가 좀 더 반짝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내 귀로 듣기에는 크게 유의미한 차이가 있진 않았지만.  

 

오롯이 소니의 기술력으로 완성된 레퍼런스 모니터 이어폰, 여유가 된다면 당연히 IER-M9을 택하는 게 좋겠지만 굳이 그게 아니라 IER-M7을 선택해도 충분할 것 같다는 게 결론이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음향 제품은 가격이 높을수록 절대적인 음질 수준이 높다기보다는 소리를 얼마나 깨끗하게 귀로 잘 전달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기술력의 결과물로 값어치가 결정되는 것 같다.

소니의 이 모니터링 이어폰들도 마찬가지로 브랜드 기술력이 제대로 발휘된 제품이라 생각된다. 소니는 못 했던 게 아니라 굳이 안 했었던 것, 마음먹고 제대로 하면 역시 사운드 장인의 포스가 철철 넘쳐 흐른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던 그런 이어폰이었다. 

 


장점  

믿고 들을 수 있는 소니 기술력의 신선한 음질

풍성한 구성품

우수한 착용감


단점  

이걸 사는 순간 DAC, 앰프, 플레이어 등의 각종 음향 장비로 지름이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비싸서 엄두가 안 나도, 일단 들인다면 아주 오랫동안 만족할 수 있는 이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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