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후배 하나는 별명이 '감자'다. 학교 다닐 적에 그 아이를 감자라고 불러본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감자는 군 복무를 위해 학교를 떠난 이후에 그 별명을 얻은 게 분명하다. 별명의 유래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설명은, 감자가 경찰이 되고 처음 근무하게 된 곳이 바로 강원도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원도는 전국 감자 생산량 1위, 한 해 전체 생산량의 무려 35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는 지역이니까. 물론 감자가 둥글둥글하니 귀여운 인상이었다는 점도 그 별명이 붙게 된 데에 한몫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감자를 유순하고 무던한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기에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그 아이의 소식은 뜻밖이었다. “누나, 감자 걔가 그렇게 칼 같은 줄 누가 알았겠어요?” 글쎄, 감자가 바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 위반 제1호 사건의 관련인이라지 뭔가. 못 미더워하는 내 표정을 본 후배는 휴대전화를 꺼내 '청탁금지법 전국 1호'라고 검색하더니 기사를 하나 띄워 보여주었다. 그래, 나도 이 사건 알지. 여기 나오는 ‘수사관 A 씨’가 감자라고? “그렇다니깐요.”
청탁금지법 시행 첫날인 2016년 9월 28일, 민원인 ㄱ씨는 가게를 운영하는 자신을 배려해 늦은 시간에 조사 일정을 잡아준 감자한테 고마움을 표현하는 의미에서 떡 한 상자를 경찰서로 보냈는데. 떡을 전해 받은 감자는 그걸 도로 ㄱ씨에게 반환하고서 일의 전말을 문서로 만들어 경찰서 청문감사관실에 신고했단다. 청문감사관실에서는 ㄱ씨에 대한 ‘청탁금지법 위반 과태료 부과 의뢰’를 지방법원에 접수했고, ㄱ씨는 떡값 사만 오천 원의 두 배인 구만 원의 과태료를 내게 되었다고.
감자는 동료들한테 쑥스러운 표정으로 "떡 하나 드세요. 제 민원인이 고맙다고 가져왔네요." 하며 뿌듯해할 기회를 흘려보낸 것이 아쉽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을 리가 있나. 초보 수사관이 민원인한테서 감사 인사를 받는 게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데. 떡을 돌려보내고 ㄱ씨를 신고하는 문서를 작성하는 일도 즐거이 하지는 않았겠지. 그러나 감자는 쌀쌀맞고 인정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착하고 정직한 아이라, 그 내키지 않는 일을 감내했으리라 생각한다.
'제가 당신을 배려한 일에는 답례가 필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공정함과 청렴함은 아주 섬세하고 다루기 어려운 것이랍니다. 존재를 의심받기도 쉽고요. 그러니 아직 여물어지지 않은 저의 마음을 지켜주세요.' 그리고 감자의 진의는 잘 전해진 것 같다. 과태료를 납부한 이후에 이루어진 뉴스 인터뷰 영상에서 ㄱ씨는 여전히 감자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린 친구들로부터 삐뚤빼뚤 그려낸 그림 편지를 받거나 “경찰 이모 예뻐요”(!) 같은 거짓 없는 칭찬을 듣는 일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값진 경험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며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기에 점점 박해진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진심이 담긴 “고맙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다. - 그러니까 고마움을 느낄 때는 그냥 고맙다고만 해 주시면 돼요. (떡 상자 같은 건 곤란해요.) 그렇게만 해서는 부족하다 싶으면, 고맙다는 말 뒤에 차라리 “얼굴에 복이 많아 보이시네요” 같은 이야기를 덧붙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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