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에 강도살인 사건이 일어났어. 2인조 강도가 주점 여주인을 칼로 찔러 죽이고 금고를 털어 도망갔던 거야. 형사들은 범인 중 한 명이 A라는 여자랑 연락하며 도피자금을 받아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그래서 A의 신병을 확보했어. 범인도피죄로다가 말이야. 그런데 일당을 체포하려면 A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잖아. 그래서 나한테 SOS가 왔어. 피의자가 여자니까, 신체수색이랑 용변 감시 등의 이유로 여자 경찰관이 필요했던 거지. 그리고 얼마 안 지나 범인들이 J 시에 출몰했다는 첩보가 들어왔어. 내가 A를 데리고 형사들이랑 J 시에 내려간 데에는 그런 사정이 있었어.
J 시에 도착해서는 범인들의 위치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장소를 관할하는 지구대에 임시 수사본부를 꾸렸어. 그리고 수색을 시작했지. 수색으로 말하자면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서울 가서 김 서방 찾기나 마찬가지인 고단한 일이야. 휴대전화 위치 추적 값을 가지고 찾으려도 범위가 얼마나 넓은데, 하물며 “어디서 봤다더라” 하는 이야기로는 말할 것도 없지. 출장 간 우리 형사들, 그리고 J 경찰서의 형사랑 지역경찰들이 전부 나서서 사람이 잠깐 몸 누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문을 두드리고 다녔어.
그런데 A는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더라고. 아니, 천진했다고 하는 게 더 맞을까. 범인들이 A에게 연락을 해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범인들을 발견하는 것 중 무엇이 먼저일지 가늠하며 A의 휴대전화를 앞에 두고 회의실에 앉아 있던 때였어. 따분해하던 A가 나한테 “어쩌다 경찰이 되었는지”, “언제 일을 시작했는지”, “사격을 잘 하는지” 따위를 물어왔어. 직원들은 밖에서 뺑이치고(어려운 일로 고생하고) 있는데 소갈머리 없이 사사로운 이야기를 하기가 내키지 않아 적당히 대꾸해주었는데, A가 느닷없이 자기의 기구한 인생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거야.
첨엔 나보고 “형사님”이랬어.
- 형사님, 제가 있죠, 원래 고향은 OO라는 동네에요. 못 들어보셨죠? 거기가 그렇게 골짜기에요. 거기서 쭉 살다가 커가지고야 도시에 나왔어요.
그리고 좀 지나서 A는 나를 “저기요”라고 불렀어.
- 저기요, 그이는 사실 호스트바 같은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니에요. 거기서 일 안 했으면 나랑도 인연이 안 되긴 했겠지만. 아무튼 이번 일도 분명히, 같이 저지른 그 형님이란 새끼가 꼬셔서 그랬을 거예요. 안 그랬음 이런 일 벌일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진짜, 절대로 아니에요.
어느새 A는 나한테 “언니”라고 했어.
- 언니, 우리 아기들 예쁘죠? 왼쪽 얘가 여섯 살, 오른쪽이 네 살. 집에다가는 친구들이랑 여행 간다 하고 나왔는데 밥 잘 챙겨 먹였으려나 모르겠네.
형사들은 진즉에 나한테 A가 “내연녀”라고 귀띔해주었었어. 그땐 별생각 없이 그냥, 아 그래요, 하고 말았지. 그런데 지금 들어보니 가정이 있는 건 A 쪽이었던 거야. 어휴, 이게 무슨 노릇이냐. 마음 주고, 돈 주고, 범죄까지 저지르게 되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쯧쯧 차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괜스레 회의실을 한 바퀴 돌고,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고, 안테나를 잡고 무전기를 빙빙 돌리는 손장난을 하며 시간을 죽였어.
밤새 계속될 것 같던 수색도 끝나기는 하더라. 계단참에서 형사 하나가 손짓을 해 나를 부르더니 "잡았대요." 하는 소식을 전했어. 나는 A에게 다가가서 범인들이 잡혔으니 이제 집으로 갈 준비를 하자고 했지. 나, 그때 깜짝 놀랐잖아.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처럼, A가 웃는 채로 우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어쨌냐면, 양쪽 입꼬리는 약간 위로 잡아당겨 흐리게 미소 지은 입술을 옴짝달싹하면서, 양쪽 눈썹은 코를 향해 잔뜩 찌그린 채로 왼쪽 눈에서만 눈물을 한줄기 흘리더라니까. 비련의 여주인공인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있던 A가 안도감인지 아쉬움인지 비통함인(척 연기하는건)지 모를 표정으로 이야기했어.
"그 사람, 착한 사람이에요. 너무 심하게 하지 마세요..."
세상에 어느 착한 사람이 강도살인 사건을... 저지르냐고요. 그건 대체 어느 세상의 '착함'이냐고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을란다. 말한다고 들어먹히겠니. 안 하고 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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