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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나 Aug 02. 2019

사람도 리싸이클이 되나요

지금 사는 아파트 지하 2층에 쓰레기 수거장이 있다. 한 주 걸러 한 번씩 종량제 봉투와 재활용품 수납 상자를 들고 내려간다. 수거장 정리를 담당하시는 할아버지를 마주친 적이 몇 번 있는데, 놀랄 만큼 유쾌하고 성실한 분이었다. 하지만 유쾌한 사람이 성실하게 일하는 것과는 별개로 지하 2층은 언제나 불쾌한 냄새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물건들이 가득 차있다. 왜 아니겠는가, 쓰레기 수거장인데. 모르긴 몰라도 내가 아흐레 한 번씩 하는 당직 근무도 할아버지가 하시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찰청 대변인실은 일 년 삼백육십오일, 하루 이십사 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모니터링 전종요원은 주간-야간-비번-휴무 주기로 4교대 근무를 하고, 일반 직원은 아홉 명이서 번갈아가며 전종요원과 함께 하룻밤을 지샌다. 전국 각지의 사건사고 소식을 취합하고,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경우에는 기사를 수정할 수 있도록 기자에게 담당 부서를 연결해주고, 속보나 중요 사건의 수사 진행 상황을 전파하는 일을 하다 보면 밤이 길고도 짧다.


당직 근무를 하며 우리 아파트 쓰레기 수거장을 떠올리는 이유는, 한밤 내내 구린내 나는 사건을 접하며 인간의 추한 면면을 목격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나를 꼽아보자면 최근에 당직하면서 보았던 이런 사건이 있겠다. 경기 안산에서 평화의 소녀상에 침을 뱉고 모욕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던, 나눔의 집 할머니들께 사죄를 하고 고소취소되었던 피의자(범인) 네 명에 대한 사건.


인터넷과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오기 이전에 나는 이미 그 사건이 이슈가 되리라는 사실을 예감했다. 피의자들이 무슨 짓을 했으며 어떤 내용의 112신고가 접수되어서 경찰이 피의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수사를 했는지, 이미 당직실에서 보고서를 받아보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안산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읽는 동안 속된 말로 '빡쳐'서 혼잣말로 육악담을 뇌까렸다. 시발, ㅈ같네, 천하의 ... 같은 것들,이라고. (물론 주어는 다.)


경찰수사사건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경찰청 훈령 제917호) 제6조 제3항에는 "수사사건등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는 때에는 공보책임자가 사건 담당자로 하여금 언론사의 취재에 응하도록 할 수 있다"고 정해져 있다. 한동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될 이 사건의 담당자가 누구인지 궁금해 보고서 끄트머리를 보니 낯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잘 지내시죠?"로 시작하는 안부 메시지를 적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를 확인한 N 팀장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어어, 김 반장. 잘 지내? 이게 몇 년만이야. 아, 그럼. 나도 잘 지내지. 언제 그리로 옮긴 거야?  참 세상 좁아. 많이 바쁘지? 역시, 그럴 것 같아. 그래, 그런 일이 생겼다니까. 이제 거진 마무리됐어. 응. 확인했어. 잡았다는 내용으로 후속 보도 나갈 거야. 그러게나 말이야. 언제 한 번 넘어와, 소주 한 잔 하게. 그래그래. 특별한 거 있으면 다시 알려줄게. 그래, 고마워. 잘 지내고." N 팀장님과 나는 '쓰레기'가 여러 번 언급되는 짧은 대화를 나누고 통화를 마쳤다.


대변인실에 발령받아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누군가가 "여기 있다보면 가끔 자괴감이 들어요. 몇 명 죽는 것쯤이야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워낙 사건사고를 많이 보니까요. 둔감해지더라고요." 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걸 실감하게 되기까지는 나도 반 년이 채 안 걸렸다. 남들의 관심을 끌고 왜곡된 자아를 충족하기 위해 인간이 하는 행동 중에 터무니없고 몰지각하며 도리를 어긋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날마다 신물나게 보고 있다. '인간 쓰레기'라는 표현은 심한 욕이지만, 그런 말이 어울릴만큼, 참을 수 없는 악취를 내는 사람이 정말 있다.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건물 2층에 대변인실이 있다. 대변인실 직원들은 9일 주기로 번갈아가며 신문기사를 읽고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밤을 보낸다. 직원들은 모두 유쾌하고 성실하다. 하지만 유쾌한 사람들이 성실하게 일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무실에는 언제나 불쾌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건사고 소식이 공기중에 가득 떠다닌다. 왜 아니겠는가, 경찰청 대변인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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