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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나 Jan 06. 2019

경찰관의 드레스코드

모 걸그룹의 멤버가 ‘인간 샤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애당초 브랜드명 ‘샤넬’이 창립자 코코 샤넬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으니 조금 이상한 표현이지만 뉘앙스는 이해가 된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인간 링클프리’쯤은 되겠다.


회사원이 되고서 차림새 때문에 지적받은 적이 세 번 있다. 제일 오래된 일은 지구대에서 일할 때 같은 팀 직원이 내가 차고 있던 은팔찌를 보고 “경찰이 무슨 그런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있느냐?”고 했던 것. ‘엄마가 그러는데 편두통 있는 사람은 몸에 은붙이를 가지고 있으면 좋대요’하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기도 뭣해서 가만히 팔찌를 풀어 주머니에 넣었다.


두 번째는 경찰서에 치마레깅스를 입고 출근했다가 팀장님한테 된통 혼났던 일. 당시에는 치마레깅스가 아주 힙하고 핫한 아이템이었다. 팀장님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너 그따위 옷을 입고 어떻게 감히 출근할 생각을 했냐?”고 하셨다. 당황하고 민망해서 종일 자리를 떠나지 않았었다.


세 번째는 비비크림을 바르고 눈썹만 그리고 출근한 날 “너 화장 정말 못한다. 볼터치도 좀 칠해봐.” 하는 이야길 들은 일. ‘십 년쯤 화장을 하다 보면 화장을 해야 할 날과 안 해도 좋은 날, 하고 싶은 날과 안 하고 싶은 날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하고 대꾸는 차마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대체 경찰공무원 복무규정 제5조의 “경찰공무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 단정한 용모와 복장”이란 뭘까? 은팔찌와 치마레깅스와 색조 화장 안 한 얼굴이 경찰공무원으로서의 품위를 해한다면, 금목걸이와 버뮤다 팬츠와 가부키 화장은 어떤가? 플래티늄 반지와 뷔스티에 원피스와 눈썹 문신은? 답이 없는 고민이 끝이 없기까지 하다.


그러나 내 배포라고 해 봤자 쥐똥만하고 콩알만큼밖에 안 되기에, 옷장 앞에서 고민할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그럴싸한 ‘출근용 옷’을 사 모으게 되었다. 링클 프리 기술은 대단해… 바쁜(게으른) 직장인들에게 내리는 신의 은총이 아닐까. 우리 집에는 링클 프리 셔츠와 링클 프리 팬츠가 같은 디자인에 색만 다른 것이 줄줄이 걸려 있다. 그리고 사무실 내 라커에는 ‘작업복’으로 명명한 플리스 집업과 검정색 테일러드 재킷이 계절 없이 걸려 있다.


벌써 올해도 반쯤 지났다. 시간이 흘러 작년 이맘때의 계절이 또 올 즈음이면 나는 온갖 SPA 브랜드의 세일기간을 손꼽아 기다리겠지. 그리고 때가 되면 사무실 단체 채팅방에 “세일이요, 세일!”하고 속보를 전하겠지. 그리고 직원들은 줄줄이 링클 프리 셔츠에 링클 프리 팬츠를 입고 나타나겠지. 이 정도면 SPA 브랜드 하나쯤은 “영예로운 링클프리 상” 같은 거 만들어줄 만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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