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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나 Dec 18. 2018

구두를 닦으며

경찰서에 구두를 닦아주러 오시는 구둣방 사장님이 있다. 사장님은 매 주 화, 금요일 오전 아홉 시 반부터 열시까지 본관 샛문 앞에 좌대를 놓는다. 한 번 구두를 닦는 값은 삼천원이지만 주 두 번씩 한달을 맡기면 만팔천 원이다. 좌대에 구두를 가져다 드리고 가지고 와야 하는 일이 번거롭다면 번거로울 일이겠으나, 부러 구둣방을 찾아가는 일을 생각하면 그럴 것도 아니다. 나는 가진 신발의 팔 할이 운동화라 돈 주고 닦을 구두는 몇켤레 없어서 이곳에서 일한 지 일년만에야 처음으로 구두를 맡겼다. 나가면서 사무실로 가져다주겠다시는데 별관 2층까지 일부러 올라오시게 하기도 뭣해서 옆에서 지켜보며 기다렸다.
  
사장님은 당신이 구두 기술 배울 때는 "망치질 한 번에 구두를 한 달 더 신으니, 망치 한 번 때릴 때마다 신중해야 한다"고 배웠다셨다. 1985년도에는 구두 한 켤레 만드는 데에 육천 원을 받았고, 한 달동안 일하면 사십오십만 원짜리 칼라 테레비 두 대를 살 수 있었다고 했다. 명동시내를 다니면 양복 입은 멋쟁이는 다 구두 만드는 사람이었다고, 당신도 한 번 입고 주름 생긴 바지는 두 번 다시 안 입고 세탁소에 맡겼다고 했다. (사장님이 둘도없는 기술자였던 게 아니면 조금 과장이 섞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나는 사장님에게서 닦은 구두를 받아들며 '세월이 무상하네요...' 했지만 기실, 내가 그 시절과 그 시절에 만들어진 구두와 그 시절 구두장이의 삶에 대해 뭘 알겠는가. 나는 문득 1985년에 사장님이 만든 구두를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계절 신고나면 코가 벗겨지고 뒷축이 닳아빠지는 요즘 흔한 구두랑은 뭔가 조금 다르지 않을까. 망치질 한 번에도 공을 들인 구두라면 그래야겠지. 


내가 정년을 맞으려면 아직 삼십 년쯤 더 일해야 한다. 그 때에 돌이켜보는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려나, 내가 요즘 하는 일은 삼십 년 뒤에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려나. 세상살이는 좀 덜 겁나게 되려나. 내 직업은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되지 않고 건재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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