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을 때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회의가 늦게 끝나. 미안"
"30분 더 걸릴 것 같은데 그냥 다음에 만날까?"
"근데 나 1시에 미팅 있어서 금방 먹고 들어와야 해"
"잠깐만 나 메일 하나만 보고"
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되었고
'회사에서 주는 돈만큼 내 시간과 노력을 주고 스트레스를 받는 거지'라고 생각했던 날들이 사라진 시간이었다.
알탕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메뉴에서 이미 여전히 직장인스럽다.)
스냅샷 찍듯이 친구 얼굴을 보면서 주변의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는 찰나의 순간이 있었다.
친구 뒤 액자 속 그림의 색감
지금의 온도와 날아다니는 먼지 그리고 내 친구의 얼굴. 넌 눈이 이렇고 코가 이렇구나.
이렇게 생겼네라고.
환경이 달라지면 마음이 달라지고 몸이 달라진다를 느낀 순간.
얼굴 진짜 좋아 보인다는 친구의 말은
불과 이틀 만에 정말 얼굴이 좋아졌겠냐만은 표정이 바뀌었음에 대한 의미로 해석하고.
회사로 들어가는 친구에게 "열심히 일해라 노예야!"를 외쳐주고.
집으로 올 때 지하철에서 일찍 내려 30분을 걸었다.
가을 하면 항상 노란색, 갈색, 빨간색만 떠올렸는데
파란색, 하늘색, 초록색, 보라색, 회색 등 일 년의 색이 가을에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림을 놓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색에 대한 감각도 없어졌지만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산책.
집 근처에 왔을 때 길 건너 교회 앞에 어른 두 명이 대나무로 만든 긴 장대로 감나무에서 감을 따고 있었다.
'아직도 감은 저렇게 따나? 분명 더 나은 발전된 기술이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고 있으니
언니들과 항상 가을에 감 땄던 것이 생각났다.
어릴 때는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장난으로 가득 찼는데 어른이 되어하는 단어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진지 한 나날들이었네 싶었다.
"쓸데없는 소리 해보고 싶어.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너무 진지해"
라고 지인들에게 종종 이야기했는데.
뒷모습을 보면서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고
키 차이가 이 정도구나 생각했으며
언제 이렇게 커버렸나, 곧 징그러워지겠네 라는 생각을 했다.
앞모습을 보면서
무표정은 저렇구나 웃는 얼굴은 저렇구나 눈썹은 왜 찡그렸을까라고 생각했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 먹어도 아기처럼 보인다더니.
아기 일 때는 부모가 입혀주는 대로 잘 입어서 사진 찍을 맛이 있더니
자아가 생기고 발전해 가니 고집이란 친구도 데려와서
매일 본인이 입고 싶은 것만 골라 입어(그런데 그게 높은 확률로 까마귀 패션) 사진 찍을 맛도 없다.
"엄마 이거 새 거야?" 신상 좋아하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더라.
하교하면서 읍천리에 들러 버블티를 사서 나눠 먹고
저녁에 뭐 먹을지 이야기를 하고 또 다른 학원에 밀어 넣고 오니.
이런 삶도 좋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을 했다.
중고등 학교 때는 주로 식당 설거지, 치킨집 전단지 돌리기, 갈비탕집 서빙 등을 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미술관 안내 알바, 과외 등을 했다.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고 길다면 긴 직장생활을 하고 나니
내 몸은 쉬길 원하는데 일하던 관성으로 뇌는 생각을 멈추지 않더라. 쉬어도 불안하고 잠자면서도 미래를 고민한다.
불안하다.
그래도 매일을 잘 살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