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제발 씻자

— 편애하던 딸에게, 인생의 마지막 목욕을 맡기신 이유

by 다온홍쌤

미운 엄마를 모시고 살게 된 날

작년 10월,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다.

짐이라고는 낡은 가방 하나. 그 안에 구겨진 옷 몇 벌과, 2년 치 서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예뻐하던 막내아들 집에서 엄마는 환영받지 못했다. 본인 명의의 집인데도 며느리 눈치를 보며 2년을 살았고, 연금도 복지 혜택도 하나씩 손에서 빠져나갔다. 오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충격으로 기억을 잃어버린 엄마는, 가장 사랑했던 아들 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엄마를 데려왔다.

솔직히 말하면,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적어도 처음엔.


엄마는 늘 오빠만 좋아했다

나는 엄마에게 서운한 딸이었다.

유독 막내아들만 편애하던 엄마. 딸인 나보다 내 두 딸을 더 애지중지 키워주셨지만, 나는 늘 한 발짝 바깥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엄마의 눈이 향하는 곳엔 항상 오빠가 있었고, 나는 그 시선이 한 번쯤 내게 오기를 오래도록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른 채, 세월이 흘렀다.

오빠는 갑자기 떠났고, 엄마는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셨다. 기억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총명하던 엄마가, 어제 한 말을 오늘 또 하시고, 낯익은 얼굴 앞에서 낯선 눈빛을 하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오랫동안 미운 마음이 먼저였다. 그게 솔직한 나였다.


내가 제일 많이 하는 말

지금 내가 엄마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거다.

"엄마, 제발 씻자."

예전의 엄마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항상 단정하고 야무지던 분이. 딸들에게 깔끔함을 그렇게 강조하던 분이. 그 엄마가 지금은 씻는 것도 잊으신다.

처음엔 속이 터졌다. 그다음엔 이상하게 코끝이 시큰해졌다. 지금은 그냥, 손을 이끌어 드린다.

아침이 되면 밥을 차린다. 주간보호센터에 가시는 엄마 등 뒤에 대고 "엄마, 오늘도 잘 지내다 와"라고 인사한다. 저녁에 돌아오시면 뭐 드셨냐고 묻는다. 이 짧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자꾸 인생을 느낀다.


30년을 돌아보다

나는 전공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다.

30년을 피부관리사로 살았다. 처음엔 그게 그냥 밥벌이였고, 나중엔 워킹맘으로 버티는 수단이었다.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묻지 않고, 그냥 걸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백세운동강사에서 시작해 웰에이징 기업교육강사가 되었고, 암환우를 위한 힐링프로그램을 강의하고 있다. 몸을 돌보는 일, 나이 드는 것을 아름답게 맞이하는 일, 아픔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찾는 일.

그 모든 것이, 나의 30년과 맞닿아 있다.

피부관리사로 수만 개의 손을 만지며 배운 것들이. 워킹맘으로 지쳐가면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시간들이. 그리고 지금, 씻기를 거부하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배우는 것들이.

순간순간, 깨닫는다.

아, 이래서였구나.


엄마가 열어주신 길

하나님은, 혹은 인생은, 참 먼 길로 돌아가게 한다.

30년을 전공과 무관하게 살게 하고. 엄마에게 치매를 허락하고. 미운 마음 한 가득인 딸이 그 엄마를 모시게 하고.

그렇게 해서 나를 이 자리에 세웠다.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강사로.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 않도록 곁에 서는 사람으로. 편애받지 못한 딸이, 엄마의 마지막 계절을 가장 가까이서 함께하는 사람으로.

엄마는 아마 기억 못 하실 거다. 내가 매일 아침밥을 챙기고, 손을 잡아 욕실로 이끌고, 등 뒤에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는 것들을.

그래도 괜찮다.

나는 이제 안다. 엄마가 딸을 편애하지 않았던 것도, 딸을 가장 독하게 키운 것도, 치매에 걸려 내 곁으로 오신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엄마는, 나를 통해 웰에이징을 세상에 전하려 하셨는지도 모른다.


이 연재는 엄마와 함께 사는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입니다. 나이 드는 것, 돌보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것들에 대해 — 천천히, 함께 써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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