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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맥락 사회 저맥락 인간으로 살아가기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제법 오래했다. 편의점에서 담배랑 삼각김밥도 많이 팔았고, 식당 개방형 주방에서  요리 주문을 받아 바로 조리해 주기도 했고, 극장이나 공항처럼 용건 급한 사람이 많은 카페에서 부랴부랴 주문을 받아 음료나 빵을 준비해 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오래하기도 했고, 그나마 가장 잘하기도 하는  화장품 관련 응대를 하고 제품을 파는 일이었다. 나는 사실 화장도 제법 잘하고 관련 공부도 독학이지만 오래해서, 지금처럼 화장을 전혀  하는 삶이   가끔은  아깝기도 하지만 ,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으니까 이대로 좋다.​


아무튼 서비스 업계에서 오래 있으면서 가장 발달한 건 눈치로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따로 말하지 않아도 빠릿빠릿하게 필요한 것을 가져다 주는 능력이 아니었을까 한다. 특히 한국 서비스 업계는 노동자의 감정 노동 수준과 품질이 턱없이 높은데, 다들 이걸 기본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니 계속 현상 유지가 되는 것 같다. 그에 비하면 런던(특히 도심)의 서비스는 친절은커녕 불친절에 가까운 편인데, 다른 건 몰라도 피로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감정 노동하지 않으면서도 친절한 이들은 종종 있었으니까.​


런던에서 인천으로 돌아와 하나 결심한 게 있었다. 더는 눈치 보지 말고, 감정 노동이라면 내가 하지도 말고 남에게 시키는 상황도 만들지 말아야지. 그렇게 편안한 가운데 원한다면 친절을 베풀자.


전 외교부 장관 강경화 씨는, 내가 인생에서도, 또 탁월한 언어 구사를 하는 분이라는 점에서도 역할 모델로 삼고 있는 분인데(뭐, 누군들 안 그러겠느냐만은) 특히 위 캡처 사진의 이야기를 접하고 오래오래 마음에 깊이 새겨 두고 있다.​


언어를 다루는 일을 하게 되면서, 텍스트 바깥에 있는 맥락을 얼마만큼 (번역) 텍스트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고민할 때 번역문에 번역자의 삶의 방식과 태도가 드러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래서 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좀 더 확고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더는 상대가 말로 표현하지 않는 의중을 더 빠르게 알아차리려고 아둥바둥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알고 있더라도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그냥 넘길 때가 더 많아졌다. 필요하다면 직접 말로 표현하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나도 진짜 필요한 부분만 말로 부탁하거나 요구하는 연습을 계속 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 책 모임 하면서, 다른 모임원분들에게 “모든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진지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캐릭터를 얻어서 어쩐지 조금 묘한 반발심(?)이 들기도 했는데(내게도 유머와 코미디는 매우 중요한 삶의 반려 가치니까), 뭐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지 않을까 싶다.​


매순간 재밌는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진지해서 대화하기에 왠지 부담되는 사람이 되는 것도 뭐, 괜찮다. 상대를 헷갈리게 하거나 눈치 보지 않게 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아주 가끔, 한 사람쯤 나를 잠시나마 재밌는 사람이라고 느껴 준다면, 그거면 다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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