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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리 Nov 13. 2022

직장 내 괴롭힘 사건

feat. 환승요금 600원

직장 내 괴롭힘으로 6개월 간 시달리다 결국 '해고'당한 분의 진정 사건을 맡았다.


진정인(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으므로 '진정인'이라고 부른다)은 3차례에 걸쳐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사회생활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역으로 질타당했다. 이런 걸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던데...


임원 중 한 명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직후 과거 지각 사실에 대한 시말서 작성을 요구했다. 진정인이 이의를 제기하자 시말서 작성 명령은 '거두어' 주는 대신 업무적응기간을 주겠다는 구실로 대신 보직해제를 명했다. 1~2개월 정도 업무수행능력을 가늠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진정인은 그 후 원래 업무가 아닌 경영지원, 연구지원 업무를 수행했다. 처음 해보는 홈페이지 수정, 각종 논문 번역, 사내교육 등 생소한 업무를 해왔다.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시킬 수 있는 일은 실로 잡다했고, 1~2개월 정도일 거라는 업무적응기간은 6개월이 됐다. 그러면서도 업무능력은 폄하당했다. 예를 들어 논문 번역을 구글 번역기 수준으로 했다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비난이었는데, 영어권 국가에서 3년 간 유학해 영어에 능통한 진정인임에도 집단적인 비난에 대응하지 못했다. 같은 기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직원들을 포섭하여 진정인을 따돌리길 지속했다. 진정인에게 6개월은 아마도 생지옥이었으리라.


진정인이 코로나19에 확진되어 한 주간 회사에 출근하지 못했던 때, 회사는 진정인을 해고하기로 결정(모의)했다. 격리가 끝나 출근한 진정인을 임원 중 한명이 업무 시작도 전에 호출했다. 임원은 진정인에게 회사에서 해고할 것이니, 그전에 사직서를 제출하여 깔끔하게 근로관계를 종료하길 요구했다(회사만 깔끔하겠지).


2주일 뒤, 이번에는 회사 대표가 진정인에게 권고사직을 요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해고한다고 했다. 진정인은 차라리 해고하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그리곤 얼마 후 대표에게 해고통보서를 건네받았다. 해고통보서의 사유에는 '직장 내 위화감 조성'이 기재되어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한 진정인은 어느새 직장 내 위화감을 조성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진정인은 해고에 대한 사안과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안, 두 가지 사건을 의뢰했다. 해고 사건은 사무실 다른 동료가 수행했고, 사건에서 이겼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노동청 출석 전의 결과라 내 사건에 득이 됐다. 노동청 출석 당일, 조사를 마치고 진정서를 제출하고 나오는 진정인은 조금 후련해보였다(진정인은 제출할 진정서를 확인하면서 옛 기억이 나 읽기 힘들다며 몇 번인가 전화를 했었다).


이번 사건은 집에서 먼 노동청까지 갔다. 아침 10시에 출발해 조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저녁 6시가 되어있었다. 긴 하루였다. 지하철 개찰구 LED에는 추가 환승요금 600원이 찍혔다. 개찰구에 찍힌 600원은 괜히 진정인이 괴롭힘 당했던 6개월을 떠올리게 했다. 오늘 같은 지친 하루가 6개월이나 지속됐을 진정인에게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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