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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나라 May 17. 2024

영암에서 잠시 살아보기... 어떨까?

전남 영암 일주일 살기 프로젝트


어느날 갑자기 내 눈에 들어온 '남도 한달살기 프로젝트'.

전라남도의 많은 도시와 군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로 일주일에서 한 달까지 다양한 기간으로 여행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은 바로 이름도 예쁜 '영암'이다.

영암은 나에게 '무뚝뚝한 따스함이 깊이 배어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정말 오래전, 20대 때의 일이다. 정말 철 없었고 겁 없었던 나와 비슷한 친구 두 명과 함께 남도 답사를 떠났다. 그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읽고 첫 장 남도 답사 일번지에 나오는 곳들을 가보고 싶어서였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는 전남 영암 월출산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셋은 월출산 아래 민박집에 들어 저녁을 해 먹고 깔깔웃으며 다음 날 있을 월줄산 산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민박집 주인 아저씨가 자꾸 우리 주의를 맴돌며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아저씨의 눈길이 몹시 불편했던 우리는 왜 그러시냐, 할 말이 있으시냐고 물었다. 주인 아저씨는 내일 월출산 올라가냐고 물으셨다. 그렇다는 우리 대답에 걱정스런 얼굴로 그럼 저 배낭을 메고는 오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도 그럴것이 그당시 우리 배낭에는 부르스타와 쌀과 각종 부식들...이 가득 들어있어 꽤, 아니 많이 무거웠다. 등산에 '등'자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아저씨는 배낭을 메고는 도저히 오를 수 없으니 우리는 거의 맨몸으로 올라가고 우리들의 배낭은 아저씨가 차에 싣어 영암 터미널 매점에 있는 친구에게 맡겨놓으시겠다고 하셨다. 의심이 많던 우리는 긴급 회의를 열었다. 배낭을 메고 오를 수 있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아저씨를 믿고 우리의 배낭을 맡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오랜 논의 끝에 일단 밑기기로 했다. 사실 호의는 아저씨가 베푸신 건데 우리가 받을 지 말지 의논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이었다. 또한 아저씨는 1.5리터 페트병에 얼음무를 세 걔 얼려 놓을테니 내일 새벽에 하나씩 들고 가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건 또 사양했다. 원래 물을 많이 마시지 않으니 그렇게나 많이는 필요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주인 아저씨는 단호하게 이 물도 금방 떨어질테니 아껴먹으로라고 하셨다. 우리는 반 강제로 물을 떠맡게 된 것이다.


때는 8월 초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울 때였다.새벽에 길을 나섰는데도 몇 발자국 걸으니 땀이 나고 목이 말랐다.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얼은 물을 무게도 줄일 겸 야금야금 마시기 시작했다. 월출산의 등산은 등산이 아니었다. 암벽 등반이었다. 등산도 많이 해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암벽 코스를 접한 느낌이었다. 그나마 있던 저질체력도 한시간 조금넘게 암벽 등반을 하고나니 다 소진되었다. 월출산 등반이 얼마나 덥고 힘들었는지는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아저씨가 챙겨준 그 돌덩이 같던 물을 순식간에 다 마셔버리고 극한의 목마름 속에서 천황봉을 거쳐 도갑사로 내려왔다. 도갑사에 내려와 대웅전 앞에 있었더 물을 마시는데 정말 꿀맛같았다. 이때 부터 슬슬 우리의 배낭이 걱정되어 서둘러 영암 터미널로 향했다. 작은 버스털의 매점은 더할 나위 없이 작았고 그 매점안을 우리 셋의 배낭이 차지하고 매점 주인 아저씨는 땡볕에 나와 부채질을 하며 앉아계셨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그 간의 의심을 품었던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무언가 마음 한켠에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배낭과 얼음 물까지 챙겨주시고 걱정해주셨던 민박집 주인 아저씨와 친구의 부탁으로 무거운 배낭 세개를 매점을 다 차지해가며 지켜주신 아저씨.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꼭 월출산을 다시 찾고 싶었다.


일주일 살기 프로젝트에 당선되어 영암 땅을 다시 밟았다. 멀리서보는 월출산의 모습은 다른 여타의 산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불끈 불끈 솟아 오른 암석들이 멋진 모습을 빚어내고 있었고 쭉 펼쳐진 산세 아래 영암읍내가 자리잡고 있다. 월출산이 끌어안은 영암읍은 무지하게 평안하고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아, 드디어 왔구나! 무언가 엄청난 힐링이 기다리는 듯 했고 걱정과 긴장, 스트레스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여유로움이 감돌고 있었다. 일단은...너무 좋았다!


@ 마을에 있는 보호수. 200년 되었고 둘레는 4미터라는....수종은 왕버들


급하게 얻은 숙소는 또 어떤가. 월출산이 정말 코 앞에 있어 소파에 누워도 산봉우리까지 보이고, 월출산에서 내려오는 그 신선한고 초록초록한 공기들이 예고편도 없이 코 속으로 밀어 닥쳤다. 신선한 공기란 이런거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막 도착했는데 내가 머무는 시간이 일주일 밖에 안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기대와 설렘이 팡팡 터지는 영암에서 일주일간 살아보기 프로젝트는 오자마자 성공한 듯 보인다. ㅎㅎ

앞으로 영암을 잘 알아가기 위해 여기저기 다녀봐야겠다. 기대만땅:)


언제봐도 멋진 월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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