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타 이소자키와 시간의 건축
2025년 5월, 오사카 유메시마. 나는 55년 만에 다시 열린 엑스포의 ‘그랜드 링(Grand Ring)’ 위를 걷고 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지붕은 미래의 낙관을 상징하듯 하늘을 덮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인공섬이 20년 넘게 방치된 땅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70년의 엑스포는 오사카 센리의 구릉지에서 열렸고, 오카모토 타로의 ‘태양의 탑’은 여전히 그곳에 서 있다. 하지만 2025년, 일본은 같은 땅의 재현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1990년대 올림픽 유치 실패 후 컨테이너 부두로만 쓰이다 잊힌 섬, 유메시마—‘꿈의 섬’을 무대로 삼았다.
그때 떠오른 한 문장. “나는 폐허로부터 시작했다.”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의 이 말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시간 위에 짓는 행위에 대한 선언이었다. 유메시마는 더 이상 꿈의 섬이 아니라, 좌절한 유토피아가 다시 꿈을 꾸려는 폐허였다.
아라타 이소자키(Arata Isozaki, 磯崎新, 1931–2022) 일본의 건축가이자 사상가. 2019년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Prize) 수상자로, “동서양의 사유를 잇는 건축 언어의 번역자”로 평가받았다. 대표작으로 츠쿠바 센터 빌딩,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 구마모토 현대미술관 등이 있으며, 건축을 ‘형태의 완성’이 아닌 ‘시간의 실험’으로 확장한 인물이다.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전쟁의 잿더미에서 25년 만에 일본은 “인류의 진보와 조화”를 외치며 세계를 초대했다. 기술과 문명이 새로운 구원의 언어처럼 제시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히로시마 출신의 젊은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磯崎新)의 눈에는 여전히 폐허가 보였다. 그는 스승 단게 겐조의 영향권에서 출발했지만, 메타볼리즘(Metabolism)의 낙관주의와는 일찍이 거리를 두었다.
메타볼리즘은 도시를 생물처럼 사고했다. 증식하고 해체하며 다시 자라는 유기체. 완성 대신 순환, 영속 대신 변화. 하지만 이소자키는 그 속에서 ‘부재(Absence)’의 의미를 보았다.
1960년대 그의〈신주쿠 프로젝트 — 공중도시〉는 거대한 공중 구조물 위에 주거 캡슐이 교체되며 살아가는 도시의 상상이었다. 그러나 그 본질은 미래의 낙관이 아니라, 사라진 토대 위에서 무엇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히로시마의 폐허는 그에게 결핍의 상징이자, 시간의 구멍이었다.
메타볼리즘의 이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소자키는 붕괴의 감각을 실제 건축으로 옮겼다. 츠쿠바 센터 빌딩(1983)은 마치 ‘미리 붕괴된’ 듯 보인다.
로마 신전을 인용하면서도 완전히 재현하지 않고, 파편적 형태만 남겼다. 공공건물이면서 완결을 거부하는 구조—그것은 포스트모던의 유희를 넘어, 시간이 쌓이고 부식되는 과정을 드러내는 건축적 실험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1990년에 완공된〈Art Tower Mito〉는 시간의 수직축을 조형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이소자키는 루마니아 조각가 브랑쿠시의 Endless Column (1938)에서 영감을 받아, 56개의 삼각 패널이 회전하며 상승하는 거대한 나선을 세웠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금속의 표면은 하루에도 수십 번 표정을 바꾸며, 도시의 시간과 기억을 반사한다. 그에게 이 타워는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지속’과 ‘순환’의 상징이었다. 즉, 폐허를 넘어선 시간의 조형이며, 완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성의 상태로서의 건축이었다.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 1986)에서는 동서양의 건축 언어가 교차한다. 붉은 사암의 질감과 대칭적 구도 속에서, 그는 시간의 흐름을 설계했다. 폐허는 더 이상 폭격의 결과가 아닌, 완성된 형태 속에서 끊임없이 침식되는 시간의 균열이었다.
이소자키의 건축을 이해하려면,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지속(durée)’ 개념을 떠올려야 한다. 베르그송에게 시간은 측정 가능한 점들의 연속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스며드는 질적 변화였다.
즉, 시계의 시간은 멈출 수 있지만, 의식의 시간은 흐르고 중첩된다. 츠쿠바의 파편화된 기둥들을 다시 보라. 로마의 기억은 현재의 벽 속에서 침전되어 있고, 현재의 구조는 이미 과거의 흔적을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속의 시간이다. 건축은 완성의 순간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를 관통하며 생성되는 시간의 흐름이다.
일본 전통 미학의 ‘間(ma)’—비어 있음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여백의 미학—역시 여기에 닿는다. 이소자키의 건축은 베르그송의 ‘지속’과 동양의 ‘間’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있음과 없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간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유메시마를 걷던 그날, 나는 느꼈다. 오사카 센리에서 유메시마로의 이동은 단순한 지리적 변환이 아니다. 그것은 일본이 완성된 과거를 복제하는 대신, 방치된 시간 위에 새로운 꿈을 세우려는 선택이었다.
20년간 컨테이너와 파도가 오가던 그 땅 위에, 목조 링이 세워졌다. 이것은 이소자키가 말한 ‘폐허로부터의 건축’을 다시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건축은 백지 위의 설계가 아니라, 기억과 시간의 침전물 위에 새겨지는 흔적이다. 이소자키는 기능과 합리의 미학에 맞서, 건축을 시간의 예술로 되돌려놓았다.
그의 유산은 양식이 아니라 태도다. 건축의 불완전함을 긍정하고, 완성의 순간을 의심함으로써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폐허 위에서, 당신은 무엇을 다시 짓겠는가?”
우리가 짓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 흔적 속에서만, 건축은 비로소 인간적인 언어를 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