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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 이후의 인간은 더 자유로울까

《수확자》로 읽는 기술의 약속과 윤리의 딜레마

by Jwook

기술적 유토피아의 청사진: 커즈와일의 약속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는 2005년 출간 당시부터 지금까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영창피아노와 기술 제휴를 맺었던 그가 개발한 커즈와일 디지털 피아노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음악가이자 발명가인 그는 2025년 현재 77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자신의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살고 있다. 하루 100알의 영양제를 복용하며 2045년 특이점까지 생존하겠다는 집념으로 건강관리에 매진하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자신의 이론에 대한 확신을 보여준다.


그의 저서는 '수확 가속의 법칙'이라는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기술은 직선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한다.


왜 그럴까? 컴퓨터가 더 나은 컴퓨터를 설계하고, AI가 더 나은 AI를 만드는 순환 구조 때문이다. 커즈와일은 이 순환이 어느 순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속도에 도달한다고 본다. 그 순간이 바로 '특이점(Singularity)'이다.


그가 그리는 미래에서 질병과 노화는 기술적 오류일 뿐이며, 나노봇과 생명공학 덕분에 인간은 유한성이라는 숙명에서 해방된다. 커즈와일이 약속하는 포스트휴먼 시대는 죽음이 사라지고, 지능이 무한히 확장되는 사회다.

〈특이점이 온다〉 &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 예측 20년 업데이트 세트. AI·기술·인류 진화의 미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두 권의 대표작

완벽한 세계의 초대: 《수확자》의 배경


나는 지금 밀리의 서재에서 닐 셔스터먼의 《수확자》 1권을 거의 다 읽어간다. 커즈와일이 그린 유토피아가 실현된 세계를 만나는 순간, 이 두 책을 연결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20년 전 출간된 책이 약속했던 미래가 소설 속에서 완성된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통치하는 AI '선더(Thunderhead)'는 전쟁, 질병, 빈곤을 완벽하게 해결했다. 소설 속 한 장면이 인상적이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의료 시설 '부활소(revival center)'에서 되살아나는 과정이 마치 스마트폰을 수리하듯 묘사된다.


죽음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니라 일시적 고장에 불과하다. 한 청소년이 스카이다이빙 사고로 죽었다가 며칠 뒤 멀쩡히 학교에 등교하는 장면은, 이 세계에서 죽음이 얼마나 가벼워졌는지를 보여준다.


인류는 영생을 얻었고, 기술적 유토피아가 탄생했다. 그러나 영생이 일상화되자 인구는 끝없이 증가하고, 지속 가능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수확자(Scythe)'다. 이들은 인간의 생명을 거두어 균형을 맞춘다. 이 세계에서 진짜 죽음은 오직 수확자의 손에서만 가능하다. 오류 없는 AI가 통치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손에 남겨진 권한이다.

〈수확자〉 3부작 세트, 니얼 슈스터먼의 디스토피아 SF 삼부작. 죽음이 사라진 완벽한 세계에서 인간의 생명을 ‘수확’하는 존재들의 윤리와 권력을 그린 시리즈

균열의 근원: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확자》의 세계가 완벽한 유토피아가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 선더는 왜 이 중대한 권한을 인간에게 남겼을까?


선더가 수확자 제도를 만들며 남긴 말이 의미심장하다.

"나는 모든 변수를 계산할 수 있다. 누가 죽으면 사회에 가장 영향이 적을지도 안다. 하지만 나는 완벽하기에, 생명의 가치를 이해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죽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 슬픔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를 나는 계산할 수 없다. 이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고백 속에서 AI의 한계가 드러난다. 고통, 책임, 연민, 희생과 같은 복잡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윤리가 개입되어야 할 영역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기술적 유토피아의 균열이 시작된다.


주인공 시트라는 첫 수확 대상자를 만나는 장면에서 극심한 망설임을 경험한다. 그녀의 멘토인 패러데이 수확자는 피아노를 연주하듯 차분하게 수확을 진행하지만, 시트라의 손은 떨린다.


대상자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가족이 있고, 취미가 있고, 내일 할 일이 있다. 시트라는 그의 손을 잡고 생각한다. '이 사람은 내일 아침 커피를 마시지 못할 것이다. 딸의 생일 파티에 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선택 때문이다.' 정밀한 도구와 명확한 절차가 주어졌지만, 그 떨림은 멈추지 않는다.


반면 같은 수습생인 로완은 타락한 수확자들의 세계를 목격한다. 고다드 수확자는 수확을 쾌락으로 변질시킨다. 그는 파티에서 무작위로 사람들을 수확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나는 신이 되었다"고 외치는 그의 모습은, 영생의 권력을 쥔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락하는지를 보여준다. 최첨단 기술의 도구를 손에 넣었을 뿐, 그들의 마음속 욕망은 여전히 불완전하게 요동친다.


영생의 역설: 불멸이 가져온 무의미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유한성이 사라지자, 삶의 목표와 동기 역시 사라진다. 소설 속 인류는 끝없이 반복되는 삶에 지쳐 정신적인 무감각에 빠진다. 한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200살이 넘었지만,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을 해봤고, 모든 것이 지루하다."


노화나 질병처럼 극복해야 할 도전이 없으니, 노력과 성취의 의미가 퇴색된다. 이는 철학자 하이데거가 강조했던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로서의 인간 본질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유한하기에 의미를 찾고 성숙했던 인간에게, 불멸은 오히려 삶의 진지함을 빼앗고 무의미함이라는 공허만을 남긴다.


커즈와일의 낙관론은 인간의 지능과 육체가 기술적으로 향상되면, 윤리적 수준 역시 자연스레 동반 상승할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한다. 더 똑똑한 인간은 더 도덕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수확자》는 다른 진실을 보여준다. 소설 속 갈등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수확자들 사이의 권력 남용, 인정 욕구, 질투, 부패와 같은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한다. 기술이 모든 물리적 문제를 해결했을 때, 인간은 도덕적 책임이라는 비물리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특이점 이후의 사회는 인간에게 궁극적인 자유를 부여한다. 죽음의 제약에서 벗어났고, 원하는 대로 자신의 육체와 지능을 개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무한한 자유는 곧 무한한 책임을 요구한다.


과거에는 자연이나 신에게 돌릴 수 있었던 '죽음'의 책임을 이제는 인간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 수확자들은 이 거대한 윤리적 짐을 지고 고뇌한다. '어떻게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형이상학적인 질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질문보다 훨씬 무겁고 복잡하다.


기술과 인간성: 대립이 아닌 대화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저주일 뿐일까? 《수확자》를 비관론으로만 읽는다면, 우리는 중요한 가능성을 놓치게 된다.


수확자들의 고뇌 자체가 더 깊은 윤리적 사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시트라가 느끼는 망설임, 로완이 목격하는 부패에 대한 분노는 기술이 완벽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인간성의 증거다. 기술이 생존의 문제를 해결했기에, 인간은 비로소 본질적인 윤리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수확자 공동체는 스스로를 정화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패러데이 수확자는 시트라에게 말한다. "우리는 생명을 거두는 자이기에, 생명의 가치를 가장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는 수확 전 대상자의 삶을 조사하고, 그들과 대화하며, 수확 후에는 그들의 가족을 위로한다.


타락한 수확자를 추방하고, 새로운 윤리 강령을 만들며, 수확의 의미를 끊임없이 성찰한다. 이것은 기술이 인간의 도덕성을 자동으로 향상시키지는 못하지만, 도덕적 선택의 장을 더 명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이미 이 '작은 특이점'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커즈와일이 약속한 기술 유토피아의 초입에 서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속도와 스마트폰 보급률을 자랑한다. ChatGPT를 가장 빨리 도입한 나라 중 하나다.


하지만 동시에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2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배달앱은 5분 안에 음식을 배달하지만, 청년들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카카오톡으로 1초 만에 연락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

기술은 모든 불편을 해결했지만, 삶의 의미는 해결하지 못했다.

더 주목할 것은 우리의 대응 방식이다. 번아웃을 호소하는 청년들에게 우리는 더 나은 앱,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시트라의 떨리는 손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술의 종착점이 아닌, 인간성 탐구의 출발점


《특이점이 온다》가 기술적 여정의 종착점을 보여준다면, 《수확자》는 그 종착점에서 인간성의 여정이 새롭게 시작됨을 선언한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이미 이 여정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ChatGPT가 에세이를 쓰고, 알파고가 바둑을 두는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SF가 아니다. 우리는 매일 이 질문과 마주한다.


《수확자》가 제시하는 답은 명확하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완벽한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윤리적으로 고뇌하는 것이다. 시트라의 떨리는 손, 로완의 분노, 패러데이의 연민, 그것이 바로 인간성의 증거다.


기술의 완벽함과 인간의 불완전함 사이의 균열. 이 균열을 메우려 하지 말고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AI와 공존하는 미래에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자유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상태가 아니라,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도 책임지는 용기에서 온다.


밀리의 서재에서 《수확자》의 1권을 거의 다 읽어가며, 나는 커즈와일의 집착이 조금 이해되었다. 그는 특이점이 도래하는 순간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가 마주할 진짜 질문은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여전히 인간인가"일 것이다.


시트라의 떨리는 손이 그 답의 시작이다. 그리고 나는 2권이 궁금해졌다. 그녀의 손은 계속 떨릴까, 아니면 익숙해질까.


사실 나는 후자가 더 두렵다. 떨림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완벽한 기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괴물이 되는 것이니까. 커즈와일이 꿈꾸는 특이점의 진짜 위험은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처럼 되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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