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혁신'과 '믿음의 심리학'
어릴 적부터 내가 가장 좋아한 미국 스포츠는 야구와 농구였다. 마이크 피아자의 묵직한 스윙, 랜디 존슨의 위압적인 패스트볼. 그리고 마이클 조던의 공중 움직임, 샤킬 오닐의 거대한 존재감. TV 앞에 앉아 그 장면들을 바라보던 어린 나는, 어느 순간 스포츠가 단순한 경기 이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NBA 경기 대부분이 오전에 열린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하이라이트 소비'가 습관이 되었다. 오전에 경기가 끝나면 오후쯤 하이라이트가 올라오고, 나는 퇴근 후 저녁 즈음 운동하면서 그걸 본다.
짧은 클립만으로도 핵심은 보이고, 굵직한 장면으로 경기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 화면 속에서 반복되는 건 늘 같았다. 한 선수가 다른 선수 뒤에 서서 벽이 되어주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슛을 쏘는 장면. 슈퍼스타의 단독 돌파. 뻔하지만 볼 때마다 짜릿한 덩크.
그런데 요즘, 오후에 올라오는 마이애미 히트의 하이라이트를 보면 묘하게 낯설다. 화려함은 줄어든 듯한데, 경기는 계속 이긴다. '뭔가 비어 있는 느낌'과 '승리'가 동시에 느껴지는 이 이상한 감각. 딱 이 지점에서 에릭 스포엘스트라 감독의 실험이 시작된다.
농구에서 가장 기본적인 공격 방법은 '스크린'이다. 공을 가진 선수 앞에 다른 선수가 서서 수비수를 막아주는 것.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공간을 여는 방식이다. 거의 모든 팀이 쓰는, 검증된, 안전한 방법이다.
그런데 마이애미는 지금 이 '벽'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있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정해진 패턴이 아닌 순간의 판단과 유기적 움직임이다.
보통 NBA 공격에서는 가드가 스크린을 돌며 순간의 미스매치를 만든다. 그런데 마이애미는 스크리너 없이 5명이 동시에 움직인다. 한 선수가 대각선으로 달리면, 다른 선수가 반대편 빈 공간을 채운다. 공은 마치 핀볼처럼 세 번, 네 번 튕긴다. 예측 불가능하지만, 결국 골대를 향한다.
마치 악보 없이 연주되는 재즈처럼, 서로의 감각과 타이밍을 믿고 즉흥적으로 흘러간다. 수비는 예측할 틈이 없지만, 공격하는 선수들에게는 엄청난 심리적 부담이 생긴다. 조금만 멈추거나 읽기 실패가 나오면 전체 구조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집단 신뢰다. 내가 움직이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 움직임을 이어줄 것이라는 무조건적 믿음.
이 믿음은 언어 이전의 것이다. 센터 아데바요가 왼쪽으로 몸을 돌 때, 가드 히어로는 이미 오른쪽 코너로 달리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예측'하지 않는다. 마치 오래된 악기가 연주자의 손끝을 기억하듯,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 신뢰가 없으면 누구도 과감하게 컷인하지 못하고, 누구도 첫 스텝을 밟지 못한다. 스포엘스트라는 선수들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심리적 안전부터 구축했다.
"틀려도 된다, 하지만 멈추지는 마라." 실패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시스템의 학습이다. 이 문화가 자리 잡아야 '스크린 없는 농구'라는 무모해 보이는 실험이 가능해진다.
전통적 NBA 공격은 '피라미드 구조'다. 정점에 슈퍼스타, 그 아래로 스크린을 서주는 선수와 공간을 벌려주는 선수들. 위계가 분명하고, 역할이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마이애미는 '모빌 구조'다. 알렉산더 칼더의 조각처럼, 어느 지점에서든 중심이 될 수 있고, 바람이 불면 전체가 함께 흔들린다. 고정된 중심이 없고, 모든 부분이 균형을 이루며 움직인다.
이 구조는 선수들에게 강한 자기 효능감을 제공한다. "나는 단순히 공간을 메우는 사람이 아니라, 이 공격의 중심이다." 일반적인 팀에서는 공을 오래 쥔 슈퍼스타가 모든 판단을 담당한다.
그러나 마이애미에서는 5명 모두가 동시에 패스를 만들고 득점을 노린다.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조연인지의 구분이 흐려진다.
이 감정은 높은 인지 부하—계속된 판단, 끊임없는 움직임, 순간 결정—를 버티는 원동력이 된다. 코트는 이제 건축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되었다.
마이애미의 실험이 시즌 끝까지 유지될지, 플레이오프에서도 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농구가 보여주는 것은 전술의 효율을 넘어,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움직이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일에서도 늘 '스크린'을 찾는다. 실수하지 않기 위한 익숙한 방식, 뒤에 숨을 수 있는 안전장치, 누군가에게 책임을 맡겨두는 구조. 그러나 스크린을 지워버린 코트에서는 누구도 숨을 수 없다. 각자가 움직여야 하고, 서로를 읽어야 하며, 책임이 동시에 흩어져 있다.
그래서 이 실험은 조용히 묻는다.
"스크린 없이도, 우리는 함께 움직일 수 있는가?"
"각자가 주체가 되는 조직은 어떤 힘을 발휘하는가?"
농구는 결국 인간의 서사다. 전술이 아니라 신뢰로, 기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쓰이는.
마이애미는 그 진실을 다시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