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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사유의 온도를 찾아서

사유의 시작, 글의 출발

by Jwook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새벽 두 시, 나는 병원 복도에 앉아 있었다. 일률적인 형광등 아래의 공기는 차갑고, 손끝은 불안으로 떨렸다. 중환자실 문틈 너머, 생명을 측정하는 기계음만이 차갑게 울려 퍼졌다. 아버지가 쓰러진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 순간, "나는 어떤 삶을 짓고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 불쑥 떠올랐다.


삶이 균열을 내며 멈춰 서는 순간이 있다. 일상의 관성이 깨지고, 당연하던 모든 것들이 낯설어지는 그 찰나. 그때 우리는 비로소 '생각'이라는 행위를 시작한다. 나에게 그 시작은 이 차가운 병원 복도였다.


차가운 정답의 세계와 온도의 부재


건축은 내게 늘 정답의 세계였다. 구조는 수학적 계산으로 증명되고, 동선은 효율로 측정되는 차가운 이성의 영역. 그러나 이 완벽하게 계산된 공간(병원)은 아버지의 고통이나 나의 불안을 단 1도도 감싸주지 못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구조와 효율을 넘어, 인간의 사유와 감정을 품는 '따뜻한 온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는 침실, 커피를 마시는 부엌, 걸어가는 거리, 일하는 사무실. 건축가로서 나는 굳건한 벽과 기둥을 세웠지만, 철학은 그 벽이 품고 있는 시간의 무게와 기억의 잔상을 읽어내는 일이었다.


건축이란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생각이 머무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며, 철학이란 추상이 아닌, 우리가 머무는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가장 구체적인 경험이었다.


충격, 사유의 온기를 싹 틔우다


들뢰즈는 말했다. "생각은 충격에서 비롯된다." 삶이 균열을 내는 순간, 익숙함이 낯설어지고, 확실함이 흔들리는 순간. 병원 복도의 차가운 틈새에서 비로소 사유의 온기가 싹튼다.


이 책은 그 틈새의 기록이다. 완벽했던 일상이 무너지는 순간, 확실했던 관계가 흔들리는 순간, 익숙했던 공간이 낯설어지는 순간. 그때 우리는 진짜 질문을 만난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공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아름다움은 왜 불안과 함께 오는가. 반복은 어떻게 의미가 되는가. 기억은 어디에 머무는가. 관계는 왜 거리를 필요로 하는가. 이 모든 질문들이 결국 '공간'이라는 하나의 언어로 수렴되는 것을 발견했다.


공간은 사유의 형태다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발걸음이 닿는 곳, 시선이 머무는 곳, 숨이 쉬어지는 곳—몸과 감정, 공간과 시간이 얽혀 있는 살아 있는 과정이다.


이 책은 공간이 단지 물리적 구조가 아니라 '사유의 형태'임을 이야기하며, 건축과 철학, 일상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 있음'을 느끼는지를 탐색한다.


병원 복도에서 시작된 그 물음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모든 사유의 시작에는 언어로 담을 수 없는 '온도'가 있다. 감정은 일기장 밖으로 넘치고, 말은 뜻을 다 전하지 못하는 침묵 속의 떨림.


이 책은 그 떨림을 붙잡아 공간이라는 형태로, 그리고 다시 삶의 의미로 되돌려놓는 여정이다. 다음 장에서부터, 우리는 완벽한 정답이 아닌,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지탱하는 사유의 온도가 머무는 자리를 찾아 나설 것이다.


우리는 종종 말할 수 없음을 마주한다. 표현되지 않는 감정, 이름 붙일 수 없는 순간, 그 사이의 틈에서 사유는 시작된다. 다음 장에서, 그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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