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 새로 생긴 북카페 사장님의 연락에 올 것이 왔다는 직감을 했다. 사실 얼마 전 아내를 통해 사장님이 카페에서 독서모임을 운영하고픈 계획이 있다는 걸 들었었다.사장님과는 첫째 아이 학부형으로 만나 벌써 10여 년간 깊은 인연을 이어온 사이였다.
카페에 도착하니 사장님과 사장님의 지인이 있었다. 우리는 구석에 앉아 독서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막 문을 연 카페라 정신없이 바쁠 텐데 나오는 말속에서 독서모임에 관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꼭 독서모임을 운영했으면 좋겠단 말에 뒤로 살짝 물러서고픈 마음을 다잡고, 덜컥 알겠다고 답을 했다. 일단 11월, 12월 원데이 독서모임을 진행해 보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구성해 보기로 했다.
11월은 백희성 작가의 '빛이 이끄는 곳으로'란 소설로, 12월은 이옥선 작가의 '즐거운 어른'이란 에세이로 정했다. 기본적인 구성을 마치고 나니 모집이 관건이었다. 독서모임 뉴스레터도 발행하기로 해서 내가 간단히 책 소개글을 쓰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주변에 홍보하기로 했다. 마음이 분주했다. 주말까지 서둘러 책을 읽고, 뉴스레터에 들어갈 내용을 작성했다.
11월 30일 오전 10시부터 12시, 북카페 북앤브루에서 역사적인 독서모임 첫 시작이 열렸다. 참여하는 글쓰기 모임에 소식을 전했더니 다행히 참여하겠다는 분들이 있었다. 장소, 도서, 참여방법 등에 관해서 안내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고 다가올 날만 기다리면 되었다.
독서모임에 참여한 지 벌써 5년이 다 되어가고, 가족 독서모임도 운영한 경험이 있지만, 막상 한다니깐 두렵고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야 했다. 누군가에겐 처음이 될 독서모임이 좋은 경험으로 남길 바랬기 때문이다. 나에게 맞는 독서모임을 찾기 위해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독서모임 당일, 조금 일찍 북앤브루를 방문했다. 이미 회원 몇 분이 와 계셨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중 한 분은 6년 전 글쓰기 수업 때 만났고, 긴 시간이 흐른 후 이렇게 독서모임에서 다시 조우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온라인상에서 서로의 글을 보며 근황은 나눴지만 실제 다시 보게 되니 감동이었다. 다른 회원분들 모두 글쓰기를 통해 만난 소중한 글벗이었다. 글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 확장됨을 깨닫는 요즘이다.
의자를 붙여 독서모임 공간으로 만들고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먼저 백희성 작가에 대해서 소개를 했다. 현직 건축가이면서 작가이기도 한 그의 삶은 대단함을 넘어 경이로웠다. 작가가 기록에 관해 인터뷰한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이미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트를 습관화해 왔다. 이번 책도 자료 수집을 통해 8여 녀간의 기록의 통해 완성한 소설이었다. 회원들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이어진 자기소개 시간에 이번 독서모임이 처음인 회원이 세분이나 있었다. 독서모임에 참여하고픈 열망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그저 마음 한구석에만 놓아두고 있었는데 이런 좋은 기회가 생겨서 참여하게 되었다는데 책임감이 저 아래부터 차올랐다. 부디 오늘이 좋은 시작이 되어야 할 텐데.
미리 준비해 온 발제를 바탕으로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발제 책을 읽은 전반적인 소감 책 속의 가장 인상적인 인물 프랑스와는 아들 피터에게 수수께끼를 낸 이유 소설의 구성에 관해 나누기 집과 관련된 나만의 특별한 기억과 추억 꺼내기
역시 걱정은 기우였다. 책을 읽으며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다른 이야기로 퍼져나가고, 의문을 가졌던 부분에 공감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해 보며 깊고, 넓은 여행을 떠났다. 때론 진지하고, 때론 웃음이 터져 나오며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빠져들었다.
우리가 언제 어색했었나 할 정도로 어느 순간 마음껏 떠오르는 말들을 주고받게 되었다. 미처 깨닫지 못한 점을 다른 사람의 의견 속에서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차이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그가 만든 세계 속에 다가가는 것이 독서모임 본연의 매력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서로가 몹시 가까워짐을 느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말이다.
소감을 마무리도 독서모임이 끝이 났고, 이미 정해놓은 시간이 지났다. 그만큼 모두가 몰입했다. 비치는 눈빛 속에 아쉬움이 스쳤다. 각자 손에 든 책을 내밀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첫 독서모임이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12월에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겉으론 아닌 척했지만 내내 예민하게 주변을 살폈다. 발언권을 고르게 분배하고 회원들의 말을 받아 적절하게 피드백하고 자연스럽게 모임이 이어 가도록 진행도 해야 했다. 회원으로 참여할 때와 리더로서 모임을 이끌어가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그래도 꾸준히 참여한 독서모임이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의 다음 모임은 12월 14일 토요일 10시에 이옥선 작가의 '즐거운 어른'으로 진행된다. 기존 회원과 더불어 관심 있는 새로운 회원도 참여해서 더욱 풍성한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