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추고 돌아보니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막 글을 쓰지 않으면 못 견딜 때가 있었다. 길을 걷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을 때도 불쑥 떠오로는 글감이 있으면 얼른 노트북 앞으로 가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들을 하얀 화면 속에 빼곡히 채워 넣었다. 어떨 땐 내가 아니라 누군가 내 손을 빌어 글을 쓰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글이 하나 둘 쌓이며 어떤 형태든 완결하고픈 욕심이 생겼다. 운명처럼 출간 제의를 받고 모인 글이 책으로 나왔다. 서점 매대에 놓인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책을 바라보며 세상 다 가진 듯 가슴이 벅찼다. 한동안은 주요 서점의 순위를 확인하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차츰 환희는 허무함으로 바뀌었다. 그 뒤엔 자괴감이 차올랐다.
내 책을 펼치는 일조차 수치스러웠다. '이런 글을 책이라고 낸 거야?', '나무에게도 미안하지 않니?', '이제 다시는 책을 내지 않으리라.' 굳건한 다짐과 달리 어찌어찌 책을 연달아 내게 되었다. 어쩌면 삶에서 가장 바쁜 시기에 가장 치열하게 글을 썼다. 글을 쓰고, 책으로 내는 일은 그만큼 괴로운 일상의 보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어느 순간부터 글 쓰는 일이 즐겁지 않고 의무가 되었다. 6년째 매일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제는 그저 해치우듯 짤막한 일상을 기록하고는 숙제를 다했다며 안위한다. 힘든 일은 글에 담아 털어내고, 기쁜 일은 글에 모아 감흥을 증폭했더랬는데. 영혼을 집 안 신발장에 놓고 나와 그저 하루를 무미건조하게 기록한다.
에이 마음에 안 들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평생 글 쓰고 살고픈 다짐마저 뿌리째 흔들린다. 어떻게든 책으로 내려했던 글도 멈췄다. 지금 이 상태로 꾸역꾸역 쓰는 건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참여하고 있는 그룹 기사도 양해를 구하고 쓰지 않고 넘어갔다. 평소 같으면 어떻게든 시간 내서 완성했을 텐데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써야 한다는 부담이 가슴 한구석에 콕하고 박혀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다. 내려놓고 보니 그제야 보였다. 하루쯤 안 쓴다고 큰 일어나는 것도 아니요, 무언가 결과물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예전처럼 쓰는 것 자체로 즐겁고 행복하면 되는 거였다.
오래 길게 쓰고 싶다. 그 속에서 쓰는 행위의 기쁨도 함께 가져가고 싶다. 다행인 건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다시 쓸 용기가 생겼다. 언제나 그랬듯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괜히 폼 잡지 말고 일상의 소소함, 그리고 웃픈 현실을 잔잔히 담아내 보자고. 그러다 쓰기 싫어지면 잠시 멈추기도 하고.
이제 찬찬히 글감을 찾아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