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급한뭉클쟁이 Jan 20. 2023

부지런함으로 누리는 일상의 여유로움

새벽형 인간에게 '미라클 모닝'은 '기적'이 아닙니다.

새벽 네 시, 그 어떤 알람도 울린 적이 없지만 의식이 돌아오고 눈을 뜨게 됩니다. 어두운 천장을 잠시 바라보다 침대 옆 시계 화면을 확인하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지금 깨워내는 걸까.


바쁘지만 알차게 지내며, 몸은 피곤해도 정신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온전하고 건강한 일상을 유지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새해가 되고 유독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는 날이 잦았습니다. 평소에 인지하지 못했지만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던 건지, 나와의 약속을 어기고 잠들기 전까지 계속해서 주시했던 스크린 타임이 문제였던 건지, 매번 오랜 시간 잠들지 못하고 이른 새벽에 깨어지는 자신이 원망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네 시, 가끔씩 좀 더 '늦잠'을 청하게 되는 날은 다섯 시 또는 여섯 시에 눈이 떠지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 본 기사에서는 수면시간이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하는 시기가 서른다섯 살부터라고 했는데 말이죠. 아직은 한참(?) 멀게 느껴지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느새 '아침형 인간'이 아닌 '새벽형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동이 트기도 전에 나 홀로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식빵을 구워내어 하루의 첫 끼니를 준비하면서 말이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혼자 살고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이전에 학교 기숙사에서 지낼 때는 아무리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더라도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어두운 이불속에서 SNS를 확인하고 내가 잠든 시간 동안 세상에서 어떤 재미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확인하는 시간만 더 길게 늘어나곤 했습니다. 하지만 벌써 자취 3년 차를 맞이한 저는 나만의 공간에서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이 공간과 나만의 시간을 즐겨보자!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치 누구도 시키지 않은 자발적 '미라클 모닝'이 시작된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미라클 모닝'이 우리 사회의 큰 화두가 되면서 '챌린지' 형태로 후기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인생을 바꾸는 하루 1분의 기적"이라는 소개글과 함께 일부러 시간을 내어 글을 읽고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습관에 대한 책입니다. "아침을 기적으로 만드는 팁"이 여러 장을 거처 소개되는 구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새벽 기상 후 미라클 모닝을 실천한다"는 루틴으로 본 책을 이해하고 있고, 실제로 이를 습관화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저에게 새벽 기상은 '도전'이 아닌 '규범 (norm)'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제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스스로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네 시든, 다섯 시든, 여섯 시든, 우선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취 1년 차 때는 꽤나 성공적으로 매일 아침 10분이라도 스트레칭을 하곤 했는데 나중에는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소홀해진 루틴이었는데 이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항상 앉아 있는 좌식 생활과 찌뿌둥한 몸을 깨워내기 위해 짧게 투자한 시간이었는데 그 성취감이나 뿌듯함은 유독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아침 식사입니다. 제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끼니가 바로 첫 번째 식사, 즉 아침 식사인데 무엇을 먹을지 가장 설레는 순간입니다.  실제로 저는 잠들기 전부터 (또는 과장을 조금 보태어 하루의 마지막 식사인 저녁 식사 직후부터) 다음날 아침 메뉴를 상상하며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와 냉동고에 얼려진 다양한 빵 종류 간의 조합, 그리고 어떤 티백 또는 드립 커피를 우려내어 식사와 함께 곁들일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어떻게 먹어야 맛있게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물론 아침이라고 항상 빵을 먹거나 시리얼과 같은 간편식을 먹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완연한 한국인으로서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쌀밥이 먹고 싶어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 세팅하며 빵식을 대신할 수 있는 밥 식을 준비하곤 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간계밥 (간장 계란밥)'에 푹 빠져있습니다. 이토록 간단하지만 버터와 간장의 고소하고 짭조름한 조화는 졸린 눈을 비비다가도 그 풍미에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계란이 더해지면서 단백질도 섭취할 수 있으니 아주 훌륭한 메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간단한 시리얼이든 빵식이든, 어떤 조합이 가장 맛있을지 깊게 고민하는 편입니다.
설날엔 집에서 보내주신 만두 덕분에 국물만 호다닥 끓여내어 계란 만두국을 끓여먹었습니다. (점심까지 소화가 안되어 힘들었지만요.)
밥식이든 빵식이든 아침에 유독 더 맛있게 느껴지는 아보카도와 계란의 조합.

식사가 준비되면 좋아하는 드라마 에피소드 또는 구독 중인 유튜브 채널을 선택하고 자리에 앉아 아침을 먹기 시작합니다. '마음 챙김 식사(mindful eating)' 즉 음식과 먹는 행위에 온전히 집중하며 식사하는 것의 중요성이 여러모로 강조되고 있지만 혼자 사는 1인가구 가장으로서 고요한 식사 시간은 고통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식사 시간에라도 좋아하는 콘텐츠를 죄책감 없이 소비하자는 마음으로 여러 종류의 시트콤과 드라마를 섭렵하며 주인공의 세계관에 몰입하고 그 상황과 인물의 감정에 이입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NBC 방송사의 <브루클린 99 (Brooklyn 99)>을 정주행 했고 지금은 2000년대 초반 인기 시리즈물인 '길모어걸즈 (Gilmore Girls)'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사실 콘텐츠 시청과 함께 밥을 먹는 일이 건강에 해롭다는 보고가 있기야 하지만 저는 덕분에(?) 식사 시간이 좀 더 길어지고 여유를 갖게 된 것 같아서 이로운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만... 물론 기회가 된다면 마음 챙김 식사 역시 시도해보고 싶기는 합니다. (이를 위해선 졸업 후 다시 가족과 함께 살거나 결혼 후 동거자를 찾거나(?) 제 삶의 큰 변화가 필요할 것 같지만 말이죠.)

요즘 로리 (Rory)가 결국 누구랑 이어질지(?) 끝까지 조마조마해하며 2000년대 초반 패션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오늘 막 시즌6를 시작했네요.

식사 후에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 좋아하는 티백을 골라 식탁에 다시 앉습니다. 커피가 유독 마시고 싶은 날엔 아껴둔 드립백을 골라 향긋한 커피를 내려주고, 카페인 섭취를 줄여야겠다고 마음먹은 날에는 허브차를 선택하거나 커피보단 카페인 함유량이 낮은 홍차 종류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유튜브 뮤직으로 좋아하는 피아노 플레이리스트 채널 영상을 틀고 (요즘엔 'Loo Piano' 채널에 푹 빠져 있습니다.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조용함은 원하지만 음악을 듣고 싶을 땐 클래식 피아노만 한 선율이 없더군요.) 제 영혼의 베스트 프렌즈인 다이어리를 펼칩니다. 아...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봐도 이토록 뭉클한 시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이어리를 쓰다보면 달달한게 땡기더라구요, 저만 그런가요?
새해에 대전으로 돌아오던 중 귀여운 춘식이 굿즈를 발견하여 데려왔습니다. 귀여운 스티커나 떡 메모지는 다이어리 쓰는 시간을 더 기쁘게 만들어줍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글을 쓰는 편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저는 하루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일기장에 아직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다짐만 가득 적어 내려가는 것은 아니고 어제 있었던 일을 오늘 새벽에 쓴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따끈따끈한 소식과 함께 어떤 일들을 겪으며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기록하고, 일별, 주별, 그리고 월별 이루고 싶은 목표들과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계획하여 알찬 일상을 이어나갑니다. 특별히 외향적인 편은 아니지만 '제 사람'들과의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저는 일적인 바쁨이 지나갈 때마다 친구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그 모든 일정을 계획하여 관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제 다이어리는 비어갈 날이 없는 듯 보입니다. 언제 다시 읽어보려나 싶으면서도 꽤나 자주 (특히나 연말/연초 시즌의 경우 꽤나 자주 이전 다이어리를 들춰보는 편입니다) 이전의 기록들을 살펴보며 스스로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고 제 자신과 대화를 시도하기 때문에 유독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다이어리를 다 쓰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밀려둔 독서를 하거나 지금처럼 브런치에 투고하고픈 글을 쓰거나, 또는 최근에 구독하기 시작한 레터형식의 신문을 읽고 출근 준비를 시작합니다. 독서의 경우 소설과 비소설 사이에서 왔다 갔다 또는 동시에 두 세권 정도를 함께 읽는 독서 습관을 갖고 있는데 예전에는 한 번 손이 닿으면 반드시 완독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스스로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압박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습니다. 브런치 글도 마음이 동하는 날 써야 가장 글이 잘 써지고, 잘 쓴 글이 독자로 하여금 훨씬 더 잘 읽힌다는 평을 받는 듯하고요. 레터형 신문의 경우 이전까지 매일 아침 챙겨보던 JTBC의 아침 뉴스&이 좀 더 가벼운 분위기의 예능형 뉴스 프로그램으로 개편되면서 흥미를 잃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뉴스 시청 대신 글로 관심 있는 기사를 살펴보곤 하는데 오히려 더 궁금한 경우 검색해 보기도 편하고, 다양한 분야에 대해 알고 넘어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들.
일 때문에 새로 장만한 노트북이지만 글을 쓰거나 기사를 읽을 때도 훨씬 편한 것 같아 만족스러운 요즘.

아침에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냈는데 지금 시간이 몇 시냐고요? 바로 아침 7시입니다. 드디어 동이 트고 창 밖이 밝아지기 시작했네요. 겨울인 탓에 해가 유독 늦게 뜨는 바람에 적막한 시간이 더 늘어난 것 같아 아쉽지만 또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강제로(?) 눈이 떠지는 바람에 얻게 된 저의 부지런함은 새벽부터 아침으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의 '기적적인' 시간을 선물해 주었고 이를 통해 저는 일상뿐만 아니라 일적인 여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한참 동안 아침 시간을 즐기고 출근해도 여덟 시 전후가 되었고 일찍 시작한 하루는 저에게 더 많은 시간과 차분함을 충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물론 덕분에 주어진 일과 공부를 더 일찍 마치고 귀가하여 온전한 시간을 보내다가 더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된 것도 장점이죠.

마치 파리에서 구경하고 온 파리지앵의 라이프 스타일이 생각나는 순간입니다. 아침 7시부터 갓 구운 빵을 진열대에 내어놓고 아침 조깅 후 여유를 맞이하는 파리지앵을 위한 커피 한 잔과 크루아상의 매력. 이러한 여유러움은 부지런함 없이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최적화된 업무 시간이 있고 수면 시간이 있겠지만 저의 경우엔 꼭 아침, 무엇보다 새벽 시간이 참 좋습니다. 끝나가는 하루가 아쉽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여 'seize the day!' 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저는 앞으로도 부지런함으로 누릴 수 있는 여유를 진심으로 아껴주며 뭉클한 일상을 살아내려고 합니다.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기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

파리 여행 첫 날 새벽에 동이 트는 모습.
7시부터 문을 연 빵집에서 구매한 크로아상. 알고보니 구글 평점 4.9점이었던 감동의 블랑제리.
그리고 본격적인 아침 식사를 위해 파리의 유명한 카페, 카레트에 다녀왔습니다.
다른 일정 동안에도 주변 마트에서 장을 봐서 가볍게라도 꼭 아침을 챙겨 먹었습니다. 속이 든든해야 하루에 2만-3만 보씩 걸을 수 있다구요
나름 바스티유 광장을 돌아 아침 조깅도 해보고, 새벽을 온전히 즐기기 위한 파리지앵 라이프 스타일에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귀가 길 고소한 향을 내뿜는 블랑제리의 유혹을 지나치지 못했죠. But all worth it!
작가의 이전글 파리로 떠난 대학원생 뭉클쟁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