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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Nov 06. 2019

모두 아기에게 인사한다

커피 사러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

아이를 낳고 나서 새롭게 알게 된 세상과 기분 좋은 변화에 대해 기록하고 소회를 적습니다.




모두 아기에게 인사하고,

대답은 엄마가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이를 낳기 전까지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1명인 줄 알았다. 출퇴근할 때 잠깐, 택배를 가지러 가며 잠깐 인사하는 정도였다. 다섯 세대가 모여 사는 복도식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 사람이랑 인사를 나눈 적도 없었다. 그렇게 무심하고 둔했다.     


아이를 낳고 유모차를 탈 수 있는 개월 수가 되면서 종종 외출을 했다. 오전 10시쯤 커피 한잔 사러 나가니 빗자루로 나뭇잎을 쓸고 있는 아저씨가 계셨다. 새로 온 경비아저씨쯤으로 여기며 지나가는데 아저씨가 ‘204호 사모님 안녕하세요, 애기 안녕!’을 외치며 경쾌하게 인사했다.      


깜짝 놀랐다. 처음 보는 경비아저씨가 내가 사는 호수까지 알고 있다니. '절 아세요?'하고 여쭤보니 그 아저씨는 우리 아파트에 2년 이상 근무하셨다고 했다. 결혼해서 처음 이 아파트에 온 시기까지 알고 계셨다. 부끄러웠다. 2년 넘게 경비아저씨 얼굴도 모르고 살았다니. 택배를 맡아주고 관리실 대신 많은 일들을 처리해주시는데.     


머쓱한 채로 유모차를 끌고 놀이터를 지나가는데 저 멀리서 아까 경비 아저씨와 같은 옷을 입은 분이 뛰어오신다. ‘많이 컸구나!’하며 아이에게 재롱을 부리신다. ‘저희 애기 얼굴을 아세요?’라고 물으니 ‘그럼요. 이 아파트에 애기들이 없어서 얼마나 귀한데요.’라고 하신다.      


단지 내 공원을 지나지 드디어 경비실이 보였다. 경비실에는 내가 ‘경비아저씨’로 생각했던 분이 앉아계셨다.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사러 갔다. 커피를 사러 가는 길, 아파트 방향으로 들어오는 어른들이 아이에게 인사를 했다. ‘아이고, 너무 이쁘구나.’      


아이와 같이 있지 않을 때 누군가 그렇게 말을 걸었다면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의심했을 거다. 의도나 목적 없이 나에게 다가올 이유가 없으니. 대신 아이랑 함께 있으면 모르는 얼굴이 다가와 인사해도 놀랍지 않았다. 인사의 이유와 목적은 '인사' 외에는 없으니.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을 어색하게 지나칠까 하다가 용기를 내어 ‘감사합니다’라고 하기 시작했다. 모두 아이에게 인사를 하는데 당사자가 아닌 엄마가 대답하는 게 좀 우스웠지만, 목적 없는 호의에 응답을 해주고 싶었다. 그랬더니 많은 분들이 아이에게 시선을 거두고 엄마인 나에게 덕담을 건네주셨다.

‘고생 많았네요’, ‘대단하네요’, ‘힘내요’.


사실 아이를 낳고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저런 말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서로 말을 하기엔 상당히 낯 간지러운 말이니. 일면식 없는 남에게 들은 말들은 가슴 깊이 담겼다. 가장 기억에 남은 덕담은 ‘축하해요’다. 아이를 낳은 일도 축하할 일이었지만 하나 더 축하할 일이 있었다.


주변에 무심했던 한 사람이 세상의 호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갖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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