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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Nov 10. 2019

택배 아저씨는 몇 층 살아?

물건보단 사람이 궁금한 마음

아이를 낳고나서 새롭게 알게된 세상과 기분좋은 변화에 대해 기록하고 소회를 적습니다.




어른은 물건을 기다리고

아이는 사람을 기다린다 



 “택배 아저씨 언제와?”

 아침을 먹고 난 아이가 설렌 표정으로 묻는다. 핸드폰을 열어 문자를 확인했다. ‘00택배 오전 10시 방문예정입니다.’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며 아저씨가 곧 올 것임을 알려줬다. 아이는 마치 글씨를 읽는 것처럼 핸드폰을 자기 눈에 가까이 가져가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띵동’ 벨이 울리자마자 아이가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현관으로 뛰어간다. 문이 열리자마자 ‘안녕하세요!’하고 우렁차게 인사하는 아이. 한지를 구겨놓은 듯 얇은 주름이 곳곳에 보이는 아저씨는 이런 환대가 낯선지 꽤 당황하셨다. 어색하게 손을 한번 흔들어 준 아저씨는 크라프트 재질의 상자를 재빨리 내 손에 들려주고 사라졌다.       


“택배 아저씨는 몇 층 살아?”,

“택배 아저씨는 몇 살이야?”,

“아저씨는 파란색 옷을 좋아해?” 

아이는 한 팔에 택배 상자를, 한 손에 칼을 들고 테이프를 뜯는 엄마에게 착 달라붙어 질문을 쏟아낸다. 오로지 택배상자만 보고 있는 엄마와 달리 아이는 아저씨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금세 다시 장난감으로 시선을 옮긴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평생 한번이라도 ‘택배 아저씨’에게 인간적인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었는지 싶었다.      


한 때 택배 아저씨가 내 인생의 활력소였던 시절이 있긴 있었다. 오전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고 하면, 얼굴도 모르는 ‘00택배’에게 문자가 온다. 그 문자를 받은 날은 하루종일 설렘으로 가득한다. 오후 6시가 되면 청계산 청설모처럼 재빠르게 회사를 빠져나가 관리실을 향해 날아갔다. ‘아저씨’는 궁금하지 않았다. 오로지 ‘택배’ 자체가 궁금했으니까.      


 아이의 시선은 달랐다. 아이는 정말 ‘아저씨’를 기다렸다. 종종 또는 자주 아침마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아저씨를 애타게 기다렸다. 엄마와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아이에게 택배아저씨는 집 외에 새로운 세계가 존재함을 알려줬다. 택배아저씨 뿐 아니라 가스검침 해주시는 분, 비데 청소해주는 분들처럼 우리집에 오가는 ‘살아 움직이는 것들’ 자체에 아이는 흥분했다. 물건보다는 사람이 더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임을 아이는 알고 있었다.   

     

 창밖을 보니 아까 우리집에 들렸던 택배아저씨가 끌차로 힙겹게 택배더미를 옮기고 계신다. 땀을 뻘뻘 흘리는 아저씨를 보면서 문득 아이의 질문에 대해 답을 찾고 싶었다. 아저씨는 몇 층에 사는지, 몇 살이신지, 뭘 좋아하는지. 아저씨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냉장고에 있는 홍삼스틱 하나를 꺼냈다.


다음번에 아저씨가 우리집을 방문하시면 전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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