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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Nov 15. 2019

드디어 윗집이 이사간다

불편하기만 했던 그들이 떠난다

아이를 낳고 나서 새롭게 알게 된 세상과 기분 좋은 변화에 대해 기록하고 소회를 적습니다.




어른은 불편한게 사라져야 좋고,

아이는 불편한게 나타나야 좋다



아침부터 베란다 창문을 뚫는 우렁찬 기계음이 들려온다. 또 누군가 이사를 가는구나. 내가 살고 있는 24평 복도식 아파트는 신혼부부나 어린아이 1~2명을 키우는 집이 많아서 30평대인 옆 동보다 유독 이사가 잦다. 먼지가 들어올까봐 창문을 꼭꼭 닫고 잠금장치를 확인하는데,  사다리가 올라오는 방향이 어째 내쪽이다. 덜커덕, 베란다 펜스에 사다리가 걸쳐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소리를 질렀다.

윗집 이사간다!! 만세!!


신혼부부나 어린아이 1~2명을 키우는 집이 많은 우리아파트지만, 우리 윗집에는 어린아이 3명이 산다. 처음 우리가 이사를 왔을 땐 아이가 2명이었다. 퇴근하고 오면 항상 윗집 아이들 뛰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저녁을 먹었다. 어린아이들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남편과 나도 어릴땐 아이었으니. 참을수 없는 부분은 심야였다. 윗집 부부는 심하게 싸웠다. 종종 던지고 깨지는 소리도 들렸다. '가정폭력 아닐까?'하면서 신고를 대신 해줘야하나마나 하고 있던 어느날, 윗집에서 충격적인 소리가 들렸다.

"응애,응애" 바로 신생아 소리.


그렇게 윗집에는 세명의 아이들이 살았다. 아이들이 뭘 배우는지, 뭘 먹는지, 주말에 어딜가는지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알 수 있었다. 이게 아이들 탓일까, 건설사 탓이지하며 1998년에 준공된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우리 팔자를 비관하곤 했다.  (*2004년 아파트 슬라브 규격 개정으로 2006년 이후 사업승인을 받은 아파트는 층간소음이 비교적 적지만 이전 아파트들은 그렇지 못함) 막내 아이까지 걸음마를 하게 될때쯤 층간소음은 극에 달했고, '착한 아랫집'이던 우리도 결국 인터폰을 들었다.


'드그륵, 드그륵' 사다리차에 짐들이 오르내리는 소리에 콧노래가 나왔다. 다음 윗집이 어떤 사람들이 올진 모르지만 애 셋은 아닐테니까. 제발 고등학생을 키우는 집이나 신혼부부가 이사오길 마음 속으로 빌었다. 콧노래를 부르는 엄마를 보며 아이도 흥이 난 것 같았다. 아이는 사다리차에 짐이 오르내리는 걸 보며 "우와! 우와!"를 연신 외쳤다. 꼬마버스 타요에서 나오는 프랭크가 우리집에 찾아왔다며 즐거워했다.


우렁찬 기계음이 잦아들고, 윗집 사람들로 추정되는 가족이 보였다. 중후한 인상의 아빠와 단발머리에 깔끔한 외모를 가진 엄마,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 둘, 아직 많이 어린 아기가 보였다. 그동안 들렸던 광란의 사운드에 비해 상당히 차분한 외모였다. 창밖을 계속 내다보는 엄마가 뭘 보는지 궁금한지 아이가 내 옷자락을 당겼다. 아이를 안고 이사를 가는 그들을 지켜보는데, 단발머리 엄마가 아이 한명의 손을 잡고 갑자기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죄송했어요!"  

하며 꾸벅 인사를 했다. 그동안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아요. 잘가요~"하며 나도 인사했다. 떠나보내는 마당에 안좋은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새로 이사하는 곳은 제발 1층이거나 2008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길 바라며. 적당히 인사를 하고 창문을 닫으려는데, 엄마 손을 잡고 있는 아이가 계속 손을 흔들었다. 우리 아이도 손을 흔드는 아이를 보며 같이 손을 흔들고 웃었다. 빨리 그들을 떠나보내고 싶은 내 맘과 달리 우리 아이는 그들과 오래오래 인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본인들의 SUV차로 향하는 가족을 보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윗집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불편한 존재'가 아닌 그저 사랑스러운 가족이었을텐데. 그동안 뱉어낸 모진 말들이 무색하게끔 세 아이들은 밝고 사랑스러웠다. 다섯 가족이 탄 차가 아파트 정문을 나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면서 내가 '아랫집'임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저 반갑게 손을 흔들던 우리 아이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바라봤다. 건강하고 행복하길.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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